"너무 재밌어요!"
그렇게 말하는 신입의 목소리에 나는 일종의 위화감을 느꼈다. 진짜로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그런 연극 대사같은 말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쩐지 현실에서 듣기에는 부자연스러운 말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어색하게 웃으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해주었다. 일이 재밌다니 다행이지 뭐,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위화감을 쓸어넘기면서.
나는 아직 10년을 채우지 못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다. '개발은 즐거운 것'이라거나 '나는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같은 희망찬 구호로 가득한 업계에 있다. 실제로 업계의 평균 연봉은 많이 오르기도 했고, IT 회사의 주가도 코로나 시대를 맞아 희망차게 오르고 있다. 그렇다고 최근에 이런 희망찬 분위기가 생긴 건 아니다. 코딩은 즐거운 것이라는 분위기는 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직업을 선택한 것이라는 의식은 언제나 있었다. 가까운 업계인 게임 업계에서 '게임이 즐거워서 게임 개발자가 되었다'라고 이야기하는 맥락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요즘도 그런 구호를 외치는지 모르겠지만, 실리콘밸리에서 나오는 말 중에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 는 말이 있었다. 드라마 <실리콘밸리>에서도 나온 듯하다. IT 업계의 희망찬 분위기는 그런 구호로도 전해진다. 우리가 하는 일이 의미있고, 또한 즐겁다는 믿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신입이 말했던 "너무 재밌어요!"처럼 그 구호도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프로이자 법적으로 노동자가 된 이상 일이 항상 즐거울 수는 없다. 특히 회사에 소속되어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을 하다보면 일은 일일 뿐일 때도 당연히 있다. 재미만으로 무언가를 극복하기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러다보면 재미는 완전히 잃어버리고 일로만 개발하는 개발자들도 생기고, 가정이 생기다보면 아무래도 직업적 재미보다는 안정성을 원하는 개발자도 생긴다. 물론 운이 좋거나 꾸준한 이직 끝에 직업적 흥미를 잃지 않고 계속해서 재미있게 일하는 개발자도 있다. IT업계는 개발자 대우가 좋은 편이라 다른 업종보다 흥미를 유지하면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이공계 사람이라면 어떤 문제를 '흥미롭다', '재미있다'라고 표현하는 경우를 보았을 것이다. 특히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재미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굉장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느낀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느 정도 그런 표현을 강요당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재미있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 같은 구호 속에서 우리는 어떤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다는 기분에 빠져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항상 즐거울 수는 없는 일을 하면서도 '즐겁지 않다', '결국 이 일도 회사원이다'같은 말을 삼키는 것 같다.
게임 업계 이야기를 다시하자면, '크런치 모드'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게임 런칭을 앞에 두고 미친 듯이 일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과연 그 사람들이 게임을 만드는 것이 즐거울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게임을 만드는 것을 그만두지 못할 만큼 그 일을 사랑할 수는 있지만, 그 일이 즐겁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나 역시도 개발을 완전히 그만두는 것은 어려워도 흥미와 재미만으로는 이 일을 계속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네이버 개발자 중 한 분은 안타까운 선택을 하셨다.
그 기사를 보면서 남의 일 같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역시 사회에서 함께 노동 문제를 겪고 있는 노동자라는 기분이 들었다. 업계의 주식이 올랐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물론이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느니 코딩이 재미있다느니 이런 말들은 더 이상 아무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