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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과 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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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김 Mar 05. 2022

읽지 못한 책이 쌓여만 간다

그래도 괜찮다

책을 읽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런저런 일에 치이다 보면 시간이 없어서 못 읽게 되는 때가 있다. 가끔 회사일이 넘쳐나기도 하고 글쓰기도 해야 하고 집안일도 하다 보면 아무래도 시간이 모자란다. 어쩔 수 없이 손에서 책이 멀어지는 때다. 딱히 몇 권 씩 읽자는 목표는 없으니 부담은 없지만, 쌓아놓은 책을 보면 한숨이 나올 때가 있다. 사놓기만 하고 읽지 못하는 책이 늘어가면 아무래도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듯 마음이 무겁다.


요즘이 딱 그렇다. 읽어야 할 책이 아직 쌓여있는 마당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0권 기념 카탈로그를 선착순으로 준다고 하여 앞 뒤 재지 않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몇 권 사버렸다. 읽어야 할 책 위에 또 새 책을 들여놓은 것이다. 그렇다고 책을 읽을 시간이 더 생긴 것은 아닌데 말이다. 이럴 때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싶으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합리화한다. 


처음에는 이렇게 책이 쌓여있을 때마다 답답하기도 하고 서둘러 읽어야 할 것 같은 강박도 느꼈다. 읽지 않을 거면 뭐하러 샀냐는 내면의 잔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이런 일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 보니 이제는 조금 편해졌다. 읽고 싶은 책이 항상 쌓여있는 것이 당연하게만 느껴진다. 웃기는 일이다. 상황을 극복하기는커녕 적응해버렸다. 그러나 어쩌랴.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더 빠른걸.


책 사는 속도도 속도지만 책이라는 건 한도 끝도 없는 존재다. 아무리 읽어도 독서에 끝이란 건 없다. 세상에 책은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책 쓰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닐 텐데 어디서 그렇게 뛰어난 책을 자꾸 쓰는지 읽을 책은 항상 쏟아진다. 평생 읽어도 다 못 읽고 죽을 만큼 책은 흘러넘친다. 어쩌면 행복한 비명이란 책을 두고 지르는 걸지도 모르겠다. 읽을 수 있는 책이 너무 많아서 지르는 비명, 행복하기도 하면서 부담도 조금은 느끼는 비명 말이다.


그걸 생각하면 책 읽는 속도가 책 사는 속도를 못 따라가는 건 당연하게 느껴진다. 나오는 책을 종종 사다 보면 아무래도 책이 나오는 속도에 영향을 받게 되니, 읽는 속도는 사는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다. 게다가 절판이 될까 봐 급히 책을 사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책 읽는 속도는 어느샌가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집에는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늘어난다. 독서 이외의 생활도 해야 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책이 나오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서 읽지 못한 책들 속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필연적으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니 딱히 지금의 습관을 바꿀 필요를 못 느낀다. 책이 넘치면 넘치는 대로, 읽지 못하면 읽지 못하는 대로 그저 이렇게 살아갈 뿐이다. 책이 늘어나다가 이제 더 이상 놓을 곳이 없으면 책 사는 걸 잠시 참긴 해야겠지만, 그 전에는 굳이 이 습관을 바꿀 필요는 없어 보인다. 어쩌면 책 사는 것에 중독되어서 타락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읽을 책이 넘쳐나는 공간에서 지내는 것도 나름대로 행복하다. 뭐, 출판업계에도 도움이 되고 나 자신도 행복한 일인데 아무려면 어떻겠는가? 


책을 쌓아놓기만 하고 소비하지 못하는 죄책감에 독서를 그만두는 분들도 가끔 계신다. 하지만 책 쌓아놓는 걸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시간이 나면 언제고 읽지 않겠는가. 조급해지지 말자. 책을 쌓아놓는 것만으로도 집 안에 운치도 있고 독서할 의욕도 조금은 돋게 마련이다. 그러니 부담감 갖지 말고 책이 쌓이는 정경을 즐겨보자. 생각보다 많은 독서가들이 이렇게 읽지 않은 책을 쌓아놓으니 말이다.


Photo by Shiromani Kan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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