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인] 01 김괜저
첫 번째 가지인은 김괜저 씨다.
괜저 씨는 글, 사진, 디자인을 생산하는 사람이다. 그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게 만든 데는 블로그 역할이 컸다. SNS가 없던 고등학생 시절부터 본진처럼 사용한 블로그를 괜저 씨는 15년째 쓰고 있다. 괜저라는 이름은 블로그 이름 ‘괜스레 저렇게’ 앞글자를 딴 활동명이다. 블로그 위에서 인터넷 망으로 연결된 사람들을 통해 그의 생산 무대는 계속 확장됐다. 나 역시 블로그를 읽고 글에게 글을 청탁했던 사람 중에 하나다. 괜저 씨는 다양한 잡지에 글, 사진, 디자인을 공급했고, 그 일이 또 다른 일로 연결되기도 했다. 작년엔 에세이집 <연애와 술>을 썼다.
괜저 씨는 스타트업에서 5년째 일하는 회사원이기도 하다. 2011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에서 현재 브랜드 에디토리얼 리드를 맡고 있다. 이 전에 두 번의 ‘회사’ 경험을 했다.
최근에 괜저 씨가 완전히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래된 아파트 공간을 리모델링하는 일을 처음 하게 됐다고 했다. 글 쓰고 회사도 다니면서 책도 내고 다른 것도 많이 하는 사람인 그가 새로운 일을 또 벌인다는 데 놀랐다. 그것도 양양에서. 때문에 그는 한동안 거의 매 주말을 양양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주말 출퇴근과 평일 출퇴근을 병행하는 ‘풀타임 워커’의 삶은 떠올리기만 해도 빡센데, 그는 즐기는 것 같았다. SNS로 계속 구경하던 그의 일 이야기가 직접 듣고 싶어 졌다.
'가지인' 기획으로 일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괜저 씨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피곤하고 귀찮을 법도 한데, 일전에 원고 청탁에 응했던 것처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수락했다. 덕분에 마스크를 쓴 얼굴을 마주하고 그의 ‘지금까지의 일들’을 거의 다 들어 보았다. 이야기는 가장 최근의 맡은 양양 프로젝트로 열었다. 인터뷰는 지난 4월에 진행했다.
- 최근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또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아는 분들이 양양에 마련한 별장 리모델링 작업을 맡아서 하게 됐어요. 최근 프로젝트 중에 가장 큰 이슈에요.
- 리모델링 작업이라니, 의외의 일인데요?
저도 어쩌다보니 시작한 일이에요. 작년에 집 인테리어를 할 때 과정을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연재했는데, 그걸 보고 부탁해오셔서 하게 됐고요. 디자인 업체에 맡기지 않고 제가 디렉터를 맡았어요. 직접 해보면서 배울 수 있을 거 같아서요. 나중에 어떻게 될 일인지는 모르지만, 장기 프로젝트로 계획하고 있어요. 이후 공간 운영도 제가 맡기로 했고요. 인테리어 디자인은 살면서 쭉 동경하는 분야였지만 과거엔 일로 한다는 생각을 못해봤거든요.
- 언제부터를 말하는 건가요?
디자인 쪽으로는 고등학교 때부터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부터 관심을 두고 있었어요. 그때 디자인 기술을 포함해서 몇 가지 일을 배웠거든요. 소꿉장난 같지만 다른 동아리에서 요청이 들어오면 마감을 맞춰서 만들어주기도 했고요. 간접적으로 일하는 경험을 하면서 너무 재밌었어요. 이것 저것 다 할 수 있을 거 같더라고요. 할 일이 정말 많아 보였죠. 대학 전공으로도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결국은 무난한 쪽을 택했어요. 당시엔 너무 전문적인 분야라는 생각이 들어서 부담스러웠거든요. 왠지 기반이 필요하고, 경제적으로 부유해야 할 수 있다고 막연히 생각했고요. 관심 있는 게 디자인 말고도 많기도 했고요. 사회과학 쪽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프랑스어와 문예창작 복수 부전공을 했어요.
- 그럼 어떤 맥락에서 일로 시작했나요? 해온 일과도 별로 연결 고리가 없잖아요.
아주 상관 없는 일은 아니에요. 공간을 꾸미는 일은 생활에서 열심히 해왔거든요. 저는 고등학교 이후로 쭉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어요. 미국에서 대학을 다닐 땐 7-8번을 이사할 정도로 주거 변동성이 심했고요. 그래도 집을 언제나 최대로 꾸미고 지냈어요. 텅빈 사무실을 동료들과 직접 만들어 쓴 적도 있고요. 부엌을 만들고, 화장실 문을 고치면서요. 벌써 6년 전 일인데, 지금도 그 회사를 다니고 있네요. 2017년부터는 공유 사무실에 있고요.
- 회사 일과 병행하기 부담스럽지는 않았어요?
체력적으로는 많이 힘들었지만, 충분히 시도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워낙 정보도 많이 공유되고, 누구나 빠르게 배울 수 있는 툴도 있잖아요. 작년에 집 리모델링 맡겨보면서 그 일을 경험해봤고요. 직접 하면 재밌을 거 같아서 막연하게나마 일로 해볼 기회를 기대로 SNS에 과정을 올렸던 거에요. 몸이 진짜 힘들었죠. 현장이 멀고, 시공업체는 거기서 또 거리가 있는 강릉에 몰려 있어서 서울이랑 현장이랑 업체를 삼각형으로 돌면서 일했거든요.
- 지금 다니는 회사는 텀블벅으로 알고 있는데요. 첫 회사인가요?
미국 회사에서 일했었어요. 대학 졸업 전부터 사회학 전공을 살려서 시간제로 연구 분야 일을 시작했는데, 나올 때쯤엔 한 손으로 세기 부족할만큼 많은 역할을 제가 맡고 있었고요. 디자인, 마케팅, 웹/앱 프로그래밍, 퍼블리싱, 카피라이팅, 데이터 분석, 판촉 등등. 정말 작은 신생 회사였거든요. 3년 정도 다니는 동안에 ‘주말사업’으로 직접 스타트업을 창업한 시간도 있고요. 이건 1년 좀 넘게 했어요. 제1직장과 제2직장을 왔다갔다 한 거죠.
- 이미 주말사업이 시작됐었네요. 제1직장은 어떤 곳이었나요?
일종의 컨설팅 회사였어요. 크라우드 맵핑에 관련한 웹, 모바일 솔루션을 제공하고, 동시에 많은 대학면서 배운 게 많았어요. 제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었고요.
- 그런데 왜 그만뒀어요?
애초에 미국에서 가능한 일자리를 구했거든요. 하고 싶은 일보다는요. ‘어떻게 미국 체류 신분을 연장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해결하는 게 일을 구하는 데 1순위였어요. 취업 비자 문제를 해결해줄 학부 전공 관련 회사를 찾았고, 거기에 어느 정도 디지털과 디자인이 접목된 곳이 제1회사였어요. 나중에 하고 싶은 분야에서 일할 수도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겼는데, 막상 비자 신청 직전에 진지하게 생각해보니 아니더라고요. 계속 거기서 일하면 연구원 경력이 연장될 거고, 비자 문제로 계속 종속됐을 거에요. 남으면 적당히 안정을 찾으면서 일하겠지만 하고 싶은 일과 연결될 기회는 더 멀어지는 거죠. 저는 디지털 디자인과 기술이 결합된 형태로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는 데 관심이 많았거든요. 하고 싶은 게 어떤 직업이기보다는 이것저것 다양하게 건드리고 만들고 싶었요. 그런데 제1직장은 그런 미래가 그려지질 않았고요. 결국 비자를 포기하고 회사를 그만뒀어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원하는 일을 하는 방법을 고민하려고요.
- 과감한 선택이었네요.
돌이켜보니 애초에 일을 구하기 위해서 던진 질문이 잘못됐었어요. 위태위태한 체류 신분을 당장 연장하는 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어떻게 장기적인 미국 체류 신분을 확보하는 동시에 디자인, 사회학, 기술, 글쓰기 등 내 관심사가 최대한 많이 반영된 직업을 가질 것인가?’라는 저한테 맞는 질문을 궁극적으로 던져야 했어요. 질문을 바꾸니까 선택지도 더 많아졌고요. 물론 제 상황은 확실히 더 불안해졌어요. 일찍이 시작한 블로그를 통해서 들어오는 일로 돈을 벌고 있었지만 앞으로를 알 수 없으니까요. 한편으론 제2직장에 대한 기대도 있었고, 일을 더 하면서 제대로 디자인을 공부하려는 계획도 세웠어요.
- 제2직장은 어떻게 됐나요?
1년 넘게 일을 만들었는데, 투자를 못 받았어요. 우리가 만들던 건 창작자를 위한 솔루션을 만드는 서비스고, 구체적으로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소개해서 필요한 사람들을 탐색하고 서로 연결되도록 만드는 일이었어요. 주위에 재밌는 일을 하는 친구들이 그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한 데 모아서 연결하고 싶은 관심이 사업으로 이어진 거고요. 아이디어를 좋아해주는 주변 친구들이 있었고, 앱을 출시하려고 친구이자 동료들과 함께 힘을 모으고 일하는 시간 자체가 좋았고요. 점점 진지해지고 투자를 받기 위해서 기회를 엿봤어요. 네트워킹까지 포함해서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하는 강좌에 신청했었는데 우리 팀은 떨어졌어요. 이미 투자를 좀 받은 팀들이 됐더라고요. 포기하지 않고 그 프로그램에 제가 사진사로 조인할 자리를 얻었어요. 계속 사진을 열심히 찍으면서 모든 과정을 간접적으로 다 참여하했는데, 그때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더라고요. 결국 투자를 못 받으면서 사업으로는 접었어요. 대신에 그 작업을 인터뷰 콘텐츠 프로젝트로 전환해서 웹출판을 했어요. 뉴욕에서 재밌는 일을 하는, 또는 하고 싶어하며 버티는 30세 미만 ‘청년’들을 매주 인터뷰하고, 각자가 하는 일을 한 장의 카드에 적어서 공유할 수 있도록요. 그 일로 사람들의 교감을 얻었고, 참여한 사람들과 파티로 마무리 지었어요.
- 제1직장과나 제2직장 모두 기대했던 방향과는 달라졌는데, 멘탈은 괜찮았나요?
한국으로 돌아올 때 자존감이 떨어지고 위축이 됐어요. 좌절감도 있었고요. 비자 문제를 겪으면서 미국에서 공부한 미국 친구들과 내가 서로 다른 위치에 있다는 자각을 처음으로 했고요. 어쩌면 미국에서부터 연결되는 일은 뭐든 닥치는대로 하면서 경력을 만드는 데 집착한 이유가 그 때문일 수도 있어요. 어쨌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제 한국에서 나는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려고 마음을 먹었고요. 실제로 저에게 주어지는 거의 모든 일들을 했어요.
- 괜저 씨가 계속 이것 저것 다 하는 사람이 되는 데는 그런 맥락도 있었네요.
여러 일을 동시에 한다는 것, 계속 새로운 프로젝트를 종종 한다는 건 그 자체로 저에게 안도감을 많이 줘요. 여전히 계속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할 수 있고, 그걸 할 수 있다는 효능감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선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