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 '월간 3학년'이라는 계정을 만들었었다. 30대 생애 이슈를 다루는 저널 <삼>은 초기엔 그 이름이었고, 그때 만들어진 계정을 아이디만 바꿔서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월간 3학년'은 곧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초기의 임시적 이름이었다. 그 임시 이름으로 급히 SNS 계정을 판 이유는 바로 다음 날에 마감하는 청년 지원 사업 모집 공고 지원서에 적어 넣기 위해서였다. 공모전 이야기는 마감 전날 오후에 친구 S의 '빌려보는 책방'에 책 반납을 하러 갔다가 들었다. 오늘이 아닌 내일 마감이니까 한 번 지원해 보라는 S의 말에 동해서 곧장 집으로 가서 노트북 모니터 앞에 앉아 사업 기관의 홈페이지로 들어가 공고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잡지를 만드려면 확실히 돈 계획이 있어야 했고, 공모에서 당선되면 지원금을 받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지원 사업 공모는 처음이었다. 사업 내용을 확인하고, 다운로드 받은 지원서 파일을 후루룩 읽었다. 며칠간 허공에 돌아다니던 <삼> 기획 아이디어를 정리하기도 좋은 기회이기도 해서 차례대로 우선 지원자 정보를 넣었다. 그리고 프로젝트의 내용을 적고 나니, 예산 계획 항목을 채워 넣을 차례가 되었다. 이 부분은 지원하려는 돈을 어디에 쓸 계획인지 밝히는 부분이니 평가 항목에서 아주 중요한 대목이었다. 그런데 이 중요한 대목이 자꾸 자판 위의 손가락을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예산 항목은 사업비, 전문가비, 운영비, 진행비, 홍보비, 이렇게 총 다섯 가지 이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각 항목 내 세부 지침 같은 것들까지 상세하게 정해져 있었다. 다섯 항목의 예산에 대한 구성비는 물론이고, 지급할 수 있는 비용과 지급하면 안 되는 비용까지 세세하게 적혀 있는 방식이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딱히 그렇게 구성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설명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만이 어떤 보편적인 가치를 따르는 방법도 아니었다. 꽤 많은 지원자가 다양한 프로젝트를 들고 올 텐데, 이 경우의 수들이 모두 예산을 구성하고 집행할 계획을 짤 때는 딱 한 가지로 정해진 틀에 맞추어 예산 항목을 채워야 하는 게 나만 이상하게 느껴지는 건가, 싶었다. 억지로 여기에 끼워 맞춘다는 게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가장 납득할 수 없는 규칙은 바로, 지원자에게 직접 비용을 일절 할당할 수 없는 사항이었다. 외부인에게는 책정할 수 있는 '전문가비'라는 이름의 비용 예산 항목은 내부인에게는 책정할 수 없도록 못박고 있었다.
'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생산하는 사람은 그 일에 대한 인건비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거지?' '어떤 의미에서 굳이 일을 외부와 내부로 나누고, 그 중에 어떤 건 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거지?' 같은 의문이 들었다. '내가 지원 사업 공모 문법을 처음 보는 사람이어서 이게 이해가 안 되는 건가?' 알아서 이 질문을 해결해보려고도 했지만, 별 도움이 안됐다. 명색이 청년을 지원하는 사업이라면서 기획과 실행을 주도하는 청년의 활동에만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려 한다니. 이 사업이 지원하려는 청년은 도대체 어떤 청년일까, 싶어졌다.
비슷한 예를 생각해보면 대략 이런 경우 아닐까. 어떤 기관이 기획안 심사를 거쳐 맘에 드는 기획을 낸 신생 팀(에이전시)에 일을 맡기고서, 재료비를 보태주며 뽑아주는 게 어디냐고 축하를 하는 경우 같은 거. 혹은 청년 지원 기관인데 청년의 기획은 상품으로 보지를 않는 눈으로 사업을 위해서 사업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고. 그렇지만 이 프로그램의 수혜로 나온 결과물들은 다시 청년 지원 사업 기관을 홍보할 수 있는 자료가 되기도 하면서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가치가 있는 '상품'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면 지원하지 않거나 사업을 벌이지 않는 게 맞을 것이니까, 사업을 진행하고 지원을 한다면 지금의 방식은 맞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다시 한 번, 내가 첫인상만으로 너무 성급히 오해해버린 걸 수도 있겠다 싶어서 주변에서 이런 지원 사업에 참여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이런 방식의 예산 측정에 관해 물어보았다. 지원사업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그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책정할 수 없는 비용 규칙이 있다고, 이게 말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그랬더니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거 원래 그래."
"원래 그렇다는 말이 무슨 말이야?"
"공무원이 일하기 좋게 짜여 있는 거야. 거기에 맞춰서 써야 해."
거듭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물어본 나도, 답변해주는 사람도 그런 식의 지원서 형식에 내포된 의도를 아예 가늠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걱정' 때문일 거였다. 지원자들이 조금이라도 지원금을 부적절하게 사용할까봐 같은, 편향적이고 적극적인 우려들 말이다. 그와 유사한 사례가 이미 발생한 적도 있었을 수 있다. 그래도 지원자의 활동 가치를 아예 '0'으로 설정하는 일보다는 훨씬 나은, 합리적이고 더 이해하고 싶은 방법이 있었을 게 분명하다. 이를테면 항목에서 구성비를 고정시키는 것처럼 지원자에게 책정할 수 있는 비용에도 한계나 조건을 설정한다던가 하는 방법은 머리를 별로 안 굴려도 바로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이다. 이런 쉬운 고민조차 시도하지 않았던 것 같은 이 지원 사업 기획은 사실 주최측이 원하지 않을 또 한 가지 문제를 이미 유발하고 있었다. 아마도 사업에서 원천 차단하고 싶었을 비용은 이미 물밑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지원자가 그래도 비용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추가로 조언받은 '팁'에 따르면, 외부인에는 할당할 수 있는 전문가비 항목을 활용하여 지원자도 비용을 받을 수 있는 '스킬'이라는 게 존재했다. 전문가 섭외를 지인으로 연결해서 예산을 집행한 다음, 그에게 세금 부분을 떼어 주고 개인적으로 받는 식이었다. 꽤 복잡하지만, 형식적으로 불법까진 아니고 편법적일 수 있는 그런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말이었다. 이 역시 다들 그렇게 한다는 설명이 붙었다. 마치 문화처럼.
듣기만 해도 이상해 보이는 이런 일들이 원래 그런 것처럼 있는 상황에서, 어떤 사람 눈에는 그 책임이 지원자의 잘못된 선택에만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거 같다. 처음 들었을 때는 왜 그렇게 '창조적'으로까지 권장되지 않을 게 뻔한 일을 하는 건지 나도 놀랐다. 공식적으로는 이해받지 못할 이상한 방법인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모든 일을 하는 데는 돈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누군가가 어떤 일을 기획하고 실행할 때는 그 일을 위한 여러가지 소비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시간과 몸과 마음과 머리를 들이는 데에도 그만큼 혹은 그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
이 당연한 이치를, 이 좋은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며 봉급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 말고, 조직 내부인 말고, 그 밖에 존재하는 청년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했다면 어땠을까. 예산 계획을 짜는 일이 사용자(신청자) 중심이 아니라 공급자(관리자) 중심으로 정해져 있는 이 구조 자체가, 지원자들을 굶기거나, 혹은 음지에서만 겨우 먹을 수 있도록 돌아가지 않고 당당하게 일정 금액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애초에 돌아갔다면 얼마나 좋을까. 적절한 기준 안에서 일과 관계 맺는 모두가 소외되지는 않는 최소한의 방법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면 권장되지 않을 '스킬'을 굳이 발휘하는 게 원래 그런 일이 되지 않았을 거 같은데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지원자를 소외시키는 지원 사업의 아이러니를 담당 기관에서는 인지하고 있을까? 혹시 이 문제에 관심을 두기는 할까. (해결까지는 몰라도 관심은 두고 있으면 좋겠다.)
지원 사업에 대처할 수 있는 '쓴맛 정보'를 취득한 후에 왠지 더 많은 질문들이 꼬리의 꼬리를 물었지만, 우선은 끝으로 갈수록 마무리가 잘 되지 않는 지원서 작성을 마무리짓는 작업으로 돌아갔다. 문제의 예산 항목은 결국 최대한 '두루뭉술'하게 작성하여 제출을 완료했다. 뽑히지 않을 지원서인 건 분명해보였다.
지원서에 관한 시간을 통과하는 내내 느낀 이상한 기분을 정리해보면 분명한 의심이다. '청년' '지원'과 같은 레토릭에 대한 의심. (사업 이름이 청년 봉사활동 지원이라면 들지 않았을 의심이다.) 청년 활동 지원 사업은 사실상 청년은 지원하지 않는 사업 같다는 이 수상한 느낌이 청년 활동 지원 사업의 '미스터리'로 남았다. 그렇지만 내 프로젝트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첫 공공기관 지원서 작성은 그렇게 끝났지만, 어차피 청년 지원 사업을 알기 전부터 벌이려던 ‘일’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만들어보고 싶은 일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아마 그 사업에 지원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