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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행 - 말과 행동...

당신은 무엇을 먼저 보나요?

내가 사는 곳은 “작은 마을”이다. 일 년 전, 서울 살이를 과감히 정리하고, 한 번도 주택에 살아본 적이 없는 내가 전원주택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이유는 초등학교 입학하는 딸아이의 즐겁고, 건강한(?) 유년 시절을 가족이 함께 보내기 위해서이다. 주말부부로 지내다 보니, 아빠는 딸이, 딸은 아빠가, 아내는 남편이, 고팠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두 가지를 반복하며 산다. ‘말’과 ‘행동’.


말은 뱉으면 상대방에 의해서 재해석되고, 전달되기 때문에 최대한 오해 없이, 간결하게, 사실만 말하는 게 좋다. 행동은 보이고 구체적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따뜻한 마음‘을 담는 게 좋다.


지난 일 년 동안, 나는 많은 관계를 맺었는데, 마음속 말들을 너무 쉽게, 생각 없이 말했나 보다. 일 년 동안 했던 내가 했던 말들이 모두 누군가의 ‘뒷담화’가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말‘은 잘못했다. 여기서 그들을 믿었다던가, 그들도 같이 했다던가, 그들이 먼저 꺼낸 적도 많았다던가 등등은 모두 변명이 된다.


그러나, ‘행동’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좋은 옷, 장난감, 책,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나누었고, 몸이 아프다고 하면 찾아가 보았고, 아이들을 같이 돌보았고, 큰 일 겪을 때 찾아가 위로했다. 이는 시간 속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들이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일주일을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찾은 정답은

“외로움”과 ”소외감“이다. 소외가 두려운 사람과 소외되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 말을 맞추다 보니, 바로 이웃에 사는 ‘내’가 그리 만든 것이었다. 분노에 찬 두 사람이 한 사람을 ‘쓰레기’로 만드는 것은 의외로 쉽고 간단했다. 인간관계는 놀라워!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존재한다. 난 침묵하기로 했다. 이제 연락을 하지 않는(?) 아니 못하는(?) 이웃이 있다. 참을 수 없는 내 존재의 가벼움은, 글을 쓰게 만드네.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자와 곧 다가올 자에 대한 사랑이 이웃에 대한 사랑보다 더 고귀하다.


그대들은 자신을 참지 못하고, 또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대들은 이웃을 유혹해 사랑하게 하고, 그들이 저지르는 잘못으로 자신을 미화하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찾고자 이웃에게 가고, 어떤 사람은 자신을 잃고자 이웃에게 간다. 자신에 대한 그대들의 질 나쁜 사랑은 그대들의 고독을 감옥으로 만들어버린다.


나의 형제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이웃과의 사랑을 권하지 않는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 니체의 글 중에서


나는 이웃에게 왜 갔는가, 지금의 고독은 감옥이 아니다. 나를 들여다 보고, 돌이키고, 사랑하기 위함이다.


- 그날 이후, 딱 일주일 만에 겨우 쓰여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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