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의 달인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여느 주말 저녁이었다. 그에게서 밥이나 먹자는 연락이 왔다. 비가 와서 나가기 싫었지만, 하루종일 굶었던 터라 아무렇게나 걸쳐 입고 나갔다. 홍대로 가자는 말에, 에잉?! 귀찮게시리 라는 속마음을 감추고, 따라나섰다.
메뉴는 늘 내가 정하게 해 주고, 음식점도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는 그가 홍대를 가자니. 뭔 일이래?! 홍대 도착해서 뭐 먹고 싶냐는 말에 나는 뭔가 기름지고 푸짐한 것을 먹고 싶어 "돈가스!"를 외쳤다.
두툼한 일식 돈가스에, 고소한 참깨 소스를 듬뿍 뿌린 아삭아삭한 양배추 샐러드를 와구와구 먹으면 구겨져 있는 내 맘이 풀릴 것 같았다.
알겠다며, 음식점을 찾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우산을 쓰고 좇았다. 이 골목, 저 골목 찾아다니자니, 빗물은 튀기지, 날씨는 춥지, 슬슬 짜...증이... 올라오는데, 만두집이 보였다. 그냥 "만두먹자~나 배고파!"라고 외쳤다.
"한 골목만 더 가보자."
"아~ 왜에에에"
조금 더 걸으니, 한 골목에 작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레스토랑이 보였다. 아, 저런 곳이 요즘 유행하는 원테이블 레스토랑이구나. 비쌀까? 라고 생각하는 찰나.
우산을 접고 그가 그곳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OO씨, 거기는 예약해야 하는 곳이야."
아무 말 없이 들어가는 그를 말리는 찰나, 환한 미소로 맞이하는 여주인을 보았다.
"7시 OOO씨이시죠?"
"네, 저희가 좀 늦었죠?"
비 와서 안 나온다고 실랑이하는 나를 어르고 달래 불러내느라 삼십 분은 고생했지. 하하하!
어, 이게 뭔가요?
그렇게 앉아서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한쪽에 두꺼운 벨벳 커튼이 쳐져 있었고, 마치 영국의 가정집에 들어와 있는 듯한,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가득한 작고 아담한 레스토랑이었다. 다 먹고 작은 벨을 울리면 다음 음식이 나오는 시스템이었는데, 접시 하나하나 정말 맛있어서, 싹싹 비웠다.
"근데, 오늘 뭔 날이야? 왜 이런 곳에 온 거야?"
어느새 과일, 커스터드 크림, 쿠키조각이 켜켜 쌓인 작은 유리병을 비우고 있자니, 커튼이 다시 열렸다. 어~디저트가 또 있나? 하는데,
엄청 풍성하고 고급스러운 꽃다발이~짠 나타나고,
그것을 건네받은 그가 내 앞으로 오더니 무릎을 척~꿇는 게 아닌가?
"나랑 결혼해 줄래?"
꽃다발과 함께 그는 루시* 반지를 내밀었다. 난 내가 안 울 줄 알았다. 프러포즈받을 때 많이들 운다길래, 왜 울어? 기분 좋은 날이잖아. 근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데.
눈물, 콧물 흘리며 "어엉~그럴게.".
그때 우리 상황은 좀 어려웠다. 여러 가지로~. 4월로 생각했던 결혼 날짜를 기약 없이 일 년 뒤로 미룬 상황이었다. 그 모든 어려움을 뛰어넘고 프러포즈하는 그가 그렇게 듬직하고 잘생겨 보일 수가 없었지.
사람은 때로 아름다운 추억으로 행복을 확인한다.
그래서 나온 명언, "남는 건 사진뿐이야.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