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물찜과 카페라테
영화를 보기로 한 날, 우리는 저녁을 먹으려고 OO역 주변을 한참 배회하다 해물찜을 먹기로 했다.
매콤한 해물찜을 먹는데, 시원한 맥주 없이 가능한가. 아니지. 맥주는 필수지. 그러나 맥주를 시키려고 손을 든 순간, ‘이 사람과 결혼할지도 모르는데, 처음부터 술 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다음 순간, ‘내가 미쳤나? 오늘 처음 만났는데 무슨 결혼이야.‘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불과 1초 안에 이런 생각들이 후다닥 스쳐갔지만, 나는 결국 이렇게 말했다.
“이모~여기 공깃밥도 주세요. “
빨간 해물찜과 하얀 쌀밥을 먹으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억이 안 난다. 다만, 34살까지 소개팅도 무수히 해봤고, 두 차례 굴곡진 연애도 해봤던 한 여자가 이름만 아는 한 남자와의 ‘결혼’을 생각해서 술을 안 시키고, 스스로 절제를 했다는 사실이 놀랍도록 선명하다.
영화 상영 시간이 빠듯했기에 우리는 (그 당시는 번창했었던) ‘우리 안에 천사’에서 커피를 테이크 아웃 하기로 했다. 밥은 그가 샀기에, 커피는 내가 사고 싶었다.
“뭐 드실래요? “
“따뜻한 아메리카노요.”
카페 카운터에 서서 카드를 내밀며 내가 말했다.
“아이스 카페라테 두 잔이요.”
살짝 당황한 그를 보며,
“우리 안의 천사는 아이스 카페라테가 진짜 맛있어요. 드셔보세요!”
“아~네!”
지금 생각하면 이런 경우 없는, 정신 나간 여자가 어디 있나, 자기 마음대로 시킬 거면서, 물어보기는 왜 물어보나. 자기 입맛에 맛있다고 남도 맛있는 줄 아는 건가.
영화는 풍O개였다. 아이돌이었던 남자 가수가 첫 주연인 영화였는데, 대사가 한 마디도 없다는 것이 신인 배우로서 과감한 선택이었고, 괜찮은 결과물을 보여줬다.
영화가 끝난 시간은 열 시를 넘겼고, 지하철역에서 헤어져 집에 들어오니 11시였다. 씻고 나오니,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 그였다.
“카페라테 맛있었어요...”
정확히 기억나는 건, 마침표가 점점점으로 찍혀 있었다. 여운을 주는 한 마디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 때 왜 그렇게 문자 보냈어?”
“생각하게 만들려고.”
하! 누가 누굴 꼬신 걸까. 난 젊은 시절로 안 돌아갈 거다. 이유는 단 하나, 다시 그를 유혹할 자신이 없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