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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류작가지망생 Jan 11. 2022

시-세이 ; 안녕, 나의 서른. 안녕, 서른 하나.

나의 서른에게

나의 서른에게




안녕

나의 서른아


어찌 온 줄도 모르는

머나먼 길이었다


어찌 떠난 줄도 모르는

흐릿한 너였다


기어코 너 떨어져 내린 곳에서

긴 시간 고독을 잘근거리다가

하악관절 장애의 원인은 단물 빠진 껌이라던

주치의의 말이 떠올라 뱉어낸다


너를 보기 위해 걸어온 것이 아니라

걷다 보니 너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너 떠나도 나는 더 머물 수 없어

널 등지고 걸어가는 무거운 발치에

갓 떠올라 밀려드는 붉은 물결


나 뒤돌아보지 않을 테니

너도 멀리 나오지 말거라

잘 가거라


안녕

나의 서른아



- 삼류작가지망생






 서른의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제주도행 비행기가 뜨는 당일 오후부터 우박이 내리질 않나 바람도 그렇고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왕복 항공권과 숙박이 이미 정해진 터라 강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 해의 마지막 일몰과 새해의 일출에 대한 설렘은 시간이 지나며 불안함이 되었다. 거센 바람이 연신 내 등을 거칠게 떠미는 것이 '네가 기대하는 것은 볼 수 없을 테니 포기해라'며 나를 내몰아내는 것 같았다. 핸드폰을 켤 때마다 날씨 앱을 먼저 확인했다. 내일 날씨는 구름 조금이라는 예보를 보고는 혀를 찼다. 어제도 오늘 날씨가 구름 조금이라더니 대체 얼마나 있어야 조금이고 많은 건지.


 2021년 12월 31일. 그러니까 내가 제주도에 도착한 지 사흘 째 되던 날, 구름이 조금 껴있었다. 날씨 앱이 말하는 '조금'의 기준으로. 하늘은 저 수평선 너머까지 이어진 구름에 두 동강이 나있었다. 이 날씨 앱은 사일런트 힐이나 더 미스트 정도는 되어야 구름이 많다고 할런가.


 예정시간보다 조금 일찍이 산에 올라 삼각대를 설치하고 일몰을 기다렸다. 해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구름의 빈틈 사이로 떨어지는 빛줄기의 흔적들을 사선으로 쭉 이어 그어 만나는 꼭짓점쯤에 있겠거니 유추했다. 고작 이런 걸 보려고 온 게 아닌데, 실망감이 한계치까지 차올랐다. 내 마지막 서른은 코딱지만 하고 흐리멍덩한 연주홍 빛망울조차도 구경하지 못하고 언제 떨어졌는지도 모른 채 끝났다.


 그날 밤 숙소 앞 편의점에서 미지근한 꿀물 하나를 사서 항구 계단에 앉아 담배를 태웠다. 별빛은커녕 인공위성도 보이지 않았다. 뒤편에는 젊은 청춘들이 술잔을 부딪히며 소란스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한창 즐길 때지. 연초를 한 번 빨고선 꿀물 한 모금을 들이켰다. 나이 서른을 넘기도록 뭘 했더라. 했던 건 두 번의 이직과 백수생활, 작가를 하겠다고 까불며 보낸 총 2년의 시간. 남은 건 쓰다 만 글 쪼가리들과  경력단절, 중고 신입이라는 꼬리표.


 연초를 빨다가 목이 메어 기침이 쏟아졌다. 담뱃불이 필터까지 타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한 까치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이게 맞나. 내 삶도 구름이 '조금'인 걸까. 별다른 열정도, 가치도, 의미도 없는 희미한 빛망울이 재단되고 난도질 당해 어디쯤 떨어지는 줄도 모르는 채로 저물어버린 게 아닐까.


 또 목이 메어 담배를 보니 필터까지 타들어가 있었다. 나는 다시 담배 한 까치를 꺼내 물었다. 빨갛게 피어오르던 불꽃은 간신히 끝자락을 부여잡으며 다 타버린 종이 쪼가리와 함께 부서져 내렸다. 평소처럼 검지로 털어내려다가 동작을 멈췄다. 나는 다시 또 담배 한 까치를 꺼내 물고는 타들어가는 꽁초 끝에 갖다 댔다. 불이 잘 옮겨 붙지를 않아 몇 번이고 비비며 길게 빨아들였다. 어느덧 파도소리만 가득했고 병 속 꽁초는 쌓여갔다.


 핸드폰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떴다. 씻고 나오니 6시에 맞춰둔 알람이 울려댔다.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좋은 자리를 물색해 삼각대를 세웠다. 어제까지 당장 머리 위를 가득 메웠던 구름들은 수평선 너머까지 흘러가 길게 띠를 이루고 있었다. 삼십 분 정도 지나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빈틈없이 방파재에 쭉 늘어섰다.


 2022년의 첫 일몰이 떠올랐다. 사흘간 별 기대도 안 했던 이유였는지 수평선에서 또렷하게 떠오르는 해의 윤곽선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일몰을 기다리던 건 한 시간이었는데 해가 뜨는 건 순식간이었고 구름띠 뒤로 숨은 해가 다시 붉게 떠올랐다. 옆에 선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동안 숱한 일출 장면들을 봐왔지만 연속된 두 번의 일출을 보는 건 또 처음이었다.


 어제의 궁상들이 뭔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무슨 의미고 나발이고 그렇게 타령을 했던 걸까. 2021년의 마지막 일몰이 지금까지의 여정의 가치를 증명하지는 않듯이, 증명하기 위해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살아가다 보면 증명되는 게 삶이 아닐까. 이룬 것 없는 자의 속 편한 자기 합리화 아니냐고 한다면 뭐라 할 말은 없다. 맞는 말이니까. 인생은 현재의 연속된 순간들이고 돌아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2021년의 마지막 해가 저문 자리에 계속 서있는다고 바뀌는 것은 없다.


 일출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정신없이 서울로 돌아왔다. 차를 렌트하는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반납 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일정을 짠 것이 화근이었다. 식당 주문 중에 서둘러 차량을 반납하느라 해물라면은 불어 터졌고 소화도 되지 않아 더부룩한 상태로 게이트를 뛰어들어갔더니 속이 뒤집어지는 듯했다. 엔진이 가동되고 작은 창문 너머로 제주도 전경을 확인하고 나서야 여행이 끝났다는 게 실감이 되었다. 비행기는 인천을 지나 김포공항에 착지했다.


 내 마지막 서른의 제주도 여행은 끝났지만 여정은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나는 기록의 마지막 줄에 뭐라고 남길까 고민하다가 자판을 두드렸다.


 '안녕, 나의 서른. 안녕, 서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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