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함께 왈츠를
나의 첫 연애는 소설처럼 느껴진다.
다만 아름다운 로맨스 소설이 아니라는 점은 나를 쓰게 한다. 현재의 내가 이 소설을 읽는다면, 나는 주인공을 이해하지 못하고 책을 덮을 것이다. “이런 행동을 하면서, 누가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 아냐?” 하고 말이다. 나의 애정이 당신의 애정으로 보답받기를 바랐다. 나를 아프게 한 연애였지만 동시에 구원이었다. 추운 눈밭 서서, 그래도 눈이 많이 쌓여서 다행이다고-. 애써 광활한 눈밭을 외면하는 그런 냉정하고, 외로운 사랑이었다.
어린 시절의 내가 없이는 지금의 나도 없듯이, 그때의 아픔들로 나는 형성되어 갔다.
부모는 아이의 우주라고 했던가, 다섯 살. 세상에 나온 지 5년도 되지 않은 그 해.
나의 우주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이혼 후 바로 재혼하셨고, 나의 우주에 새 행성이 들어오는 것에 대한 어색함은 없었다. 기존의 우주도 내겐 새로웠으니까.
새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세 가지다.
하나, 어린이집 장기자랑에서 ‘아빠와 함께 왈츠를’에 맞추어 공연을 했던 우리. 이 날 의상으로 인해 등이 빨개진 나의 등을 물티슈로 닦아주시던 새아버지.
둘, 잠에든 나와 언니에게 헤어 드라이기를 던지는 모습. 당신께서는 내가 자지 않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셋, 엄마를 다치게 한 새아버지가 다시는 보지 못할 거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 어린 나를 안쓰럽게 여기며 머리를 만져주던 경찰관의 손길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또 아버지를 잃었고 나의 우주는 무너져갔다.
이후 어머니는 거친 세상에서 자매를 키우기 위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이 방법이었을 것이다. 늦은 시간에 일을 하니 마땅한 친구도 없었고, 어린 자매에게 기댈 수도 없었다. 그렇게 술에 의존하게 되었다. 취기는 훈육을 폭력으로 물들였다. 어린 우리는 작은 실수에도 긴장으로 몸을 떨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랑이 아픈 것이란 것을 이때 처음 느꼈을지도 모른다.
추운 겨울날, 맞은 코에서 흐르는 뜨거운 감촉을 뒤로하고 언니와 함께 급히 택시를 타고 아버지께 향했다. 형편이 되지 못한 아버지는 우리에게 월세를 구해주셨다. 이제 막 열다섯, 열여덟이 된 자매가 겪기엔 너무나도 큰 변화였다. 깨끗하지 못한 집, 편의점 음식으로 때우던 끼니는 나의 하루하루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살아야지. 잘 살아서 엄마처럼 되지 않아야지. 매일 각오하며 나를 지켜왔다. 하지만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해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몰랐다.
그렇게 사랑과 사람이 고프던 나의 마음에 그 사람이 스며들었다. 아무도 온 적 없는 땅은 외부인의 첫걸음을 경계할 줄 몰랐다. 순식간에 찾아온 감정에 흙을 적셔가며 갈증을 해소했다. 그 감정이 흙길 사이로 모두 새어나가는 것 따위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나보다 여섯 살이 많았는데, 당시 나는 열여섯으로 미성년자와 성인 간의 연애였다. 지금의 나로선 위험하고 불균형한 관계란 것을 안다. 하지만 그 당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애정이 마른 나의 사막에서 발견된 오아시스 같았으니까. 내 얘기를 들어주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사랑이라 여기며 나는 내가 아닌 그 관계를 위해 애썼다.
메마른 땅에 장마처럼 내린 관계는 금방 다시 말라갔다. 그 사람은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애정에도 응답했다. 그 사실을 알고서도 나는 관계를 지속해 갔다. 감정을 숨기기엔 나는 미숙했고, 끝내기엔 내게 유일한 사랑이었다.
그렇게 반복되는 상황에 나는 빛을 잃어갔다.
어느 날, 그 사람의 이별 통보에 눈물을 떨구었다. 애원하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냉정한 그 사람에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차가운 시멘트에 갈린 내 무릎에 마음 아파해주기를, 나의 아픈 모습을 잔뜩 내보이며 그를 붙잡았다.
“이래서 네가 싫어.”
순간 내 안에 무엇인가 곤두박질쳤다. 뒤돌아 걸어가는 그 사람의 등, 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그림자. 이게 내 사랑에 대한 보답이었다. 아니, 이건 사랑이 아니었다. 이게 사랑이라면 이렇게까지 날 괴롭게 하지 않을 것이다. 강렬히 속을 옥죄어오는 감각에 벌떡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나는 무엇이지. 주고받는 아픈 이 감정이 사랑이라면, 이건 사랑이 아닌 것이 아닐까?
이 관계에서 나는 점차 초점을 달리하였다. 그 사람이 없는 하루가 어색하고 두려웠지만, 조금씩 나를 가꾸어갔다. 새싹에 물을 주고, 햇빛을 쬐게 하듯이. 그렇게 나를 돌보자, 역설적이게도 그 사람이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 관심을 원했고, 더 능동적으로 변했다. 나는 당신을 위해 정원도 가꿀 수 있었는데, 주인 잃은 정원에는 더 이상 따스함이 머물지 않았다. 이미 우리의 화분엔 금이 간지 오래였다. 답이 없는 질문 사이 우리의 관계는 결국엔 나의 이별통보로 마침표를 찍었다.
이별 후 다른 이와의 관계에서도 전과 같은 맥락의 상황이 이어졌다. 그에 대해 나는 질문하였다.
우리의 관계는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이 사랑으로 의해 행복한가.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아프지 않고 건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 질문 속에서 불현듯, 나의 마음에 하나의 깨달음이 자리 잡았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남을 사랑할 수 없다. 가장 가까운 나를 아끼지 않고서 남을 사랑할 수는 없다.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 사랑이 형성될 시기, 나는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렇게 자기애 없는 어른이 되었다. 나의 첫 연애가 아프게 다가왔던 이유이다.
깨달은 후 바로 건강한 연애를 할 수 있었느냐 묻는다면 나는 침묵으로 대답할 것이다.
스스로를 사랑하고자 날카로운 선인장을 키워보기도 하고, 가시에 찔려 소리 없이 울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나를 사랑하기’를 위한 연구 중이다. 한 가지 마음에 늘 염두에 두는 것이 있다면, 과거는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되돌릴 능력도, 다시 그 시절을 살아갈 자신도 없다.
그래서 나는 이 경험들을 밑거름 삼기로 했다. 모든 순간에는 배움이 있듯이, 이 경험들을 통한 배움과 새로운 날들을 잘 배양하여서 나의 꽃을 환히 피울 것이다.
결국, 건강한 관계는 나의 꽃을 사랑으로 피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니까.
이 글을 읽는 당신, 사랑하고 있는가? 그 사랑 속에서 당신을 잃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홀로 살아갈 수 없게 진화한 우리는 다양한 관계에서 흔들린다.
하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도 우리는 답을 찾아낼 것이다.
누군가를 마음에 품는 일에는 큰 힘이 필요하다. 이건 아주 큰 힘이고, 우리는 이 힘을 가지고 있다. 이건 나의 이야기지만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의 시작을 함께 해주기를 바란다.
나와 당신의 아픔이 우리의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