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인마' 너 어떤 인간까지 마안나 봤니?
엔젤스(Engels)
“그거 아냐? 우리 회사엔 좀비가 살아.”
얼마 전 회사를 그만 둔 한 지인의 말이다. 중견기업에 다니던 그는 최근에 사표를 냈다. 그러면서 무시무시한(?) 비밀을 털어놨다. 그의 회사에 좀비가 있다는 것이다. 대명천지에 이게 웬 헛소리? 아무리 호러와 슬랩스틱을 결합한 좀비 캐릭터가 각종 게임과 영화를 휩쓸고 있다지만 설마 현실에도 좀비가 있을 수가.
사실 좀비가 요즘처럼 대중적 캐릭터가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좀비가 처음 장르 영화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1968년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부터다. 저예산 흑백영화로 제작돼 처음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마니아들이 형성됐다. 이후 2·3탄이 제작되면서 ‘시체 3부작’으로 불렸다. 이후 이 영화의 감독인 조지 로메로는 ‘좀비의 아버지’가 됐다.
하지만 좀비는 여전히 소수의 마니아만 보는 B급 장르였다. 그러다가 2002년 대니 보일의 ‘28일 후’가 개봉하면서 일대 전환점을 맞는다. 스타일리시한 편집과 화려한 액션, 이에 더해 날카로운 풍자까지 곁들이면서 대중적 장르로 새롭게 태어났다. 좀비 영화를 오래 봐온 사람은 알겠지만, ‘28일 후’를 기점으로 좀비 생태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가장 큰 변화는 좀비들이 뛰어다니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원래 좀비는 부두교 주술에 걸린 ‘가사(apparent death)’ 상태의 인간을 말한다. 즉, 겉보기엔 숨도 안 쉬고 심장도 멈춰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 소생할 가능성이 있는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좀비는 걸음과 행동이 느리다. 그래서 조지 로메로의 좀비는 ‘Living Dead’였다.
그러나 이후 좀비는 몸동작이 빨라지고 심지어는 우사인 볼트처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이후엔 좀비 바이러스에 항체를 가져 반은 인간, 반은 좀비인 캐릭터(Znation, 2014)가 나오는가 하면, 의식을 갖고 사랑까지 느낄 수 있는 꽃미남 좀비(Warm Bodies, 2013)도 등장했다. 국내서도 좀비 캐릭터가 인기를 끌면서 순수 국내 제작된 ‘부산행(2016)’이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런데 얼마 전 퇴사한 지인의 말을 한참 듣고 있노라니, 이젠 좀비가 우리 생활 곳곳에 침투해 있는 것 같았다. 직접 팔이나 목덜미를 잡고 물어뜯지만 않을 뿐, 하는 행동과 생각 자체가 좀비에 가깝다. 잠깐 그 지인의 말을 들어보자.
“사표내기 몇 달 전이었어요. 새로운 상사가 왔는데 원래부터 소문은 안 좋았죠. 하지만 나는 ‘인싸’니까 새로운 상사와도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생각했죠. 하지만 그 기대는 첫 만남부터 와장창 깨져 버렸습니다.”
부연하건대 이 지인은 매우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거나 평소 부정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처음엔 그가 정신과 치료를 생각할 만큼 우울감을 느꼈다기에 그 말이 믿기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첫 미팅 때 다짜고짜 저보고 ‘아웃사이더’라고 하더군요. 처음엔 그게 무슨 소린가 싶었습니다. 선후배, 동료 등과도 원만히 잘 지내고 회사 일도 ‘척척’ 인정받으며 일하던 저였기에 도무지 이해가 안 갔죠. 그러면서 회사 내에서 주류가 되고 싶으면 검증을 받으라고 하는 겁니다. 그 때만 해도 ‘이 사람이 처음 와서 군기를 잡는 구나’ 싶었죠.”
이 말을 할 때 그의 표정에선 스멀스멀 분노의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머리 뒤에서 하얀 수증기가 올라오는 걸 봤다(고 기억을 한다).
“둘째 날 업무보고를 하라더군요. 그래서 그 동안 해왔던 일들을 깔끔하게 파워포인트로 정리해서 말씀드렸죠. 그리고 멋진 PT 솜씨로 맛깔 나는 브리핑도 마쳤습니다. 그 중에는 전임 상사의 지시로 6개월 동안 큰 공을 들여온 A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A는 향후 우리 팀의 명운이 달린 것이었기에 그 부분을 가장 강조해서 보고했죠. 그런데 그 좀비 상사의 반응은 정말 ‘띠옹’이었습니다.”
<내 직장 상관은 ‘좀비 상사’②>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