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M이라는 말에 취해 있을지도

Go-To-Market, 언제부터인지 만능 주문처럼 쓰인다.

by Sam의 기억 궁전


GTM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때마다, 묘한 위화감이 남는다. 너무 자주 쓰이고, 너무 쉽게 소비되는 단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Go-To-Market. 시장으로 간다. 어딘가 능동적이고 전략적인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일본 시장을 실제로 경험할수록 이 단어는 전략이라기보다 일종의 자기최면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GTM만 잘 짜면 된다”는 말은, 사실 “아직 잘 모르지만 뭔가 될 것 같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특히 실리콘밸리에서 만들어진 GTM 서사를 반복해서 접하다 보면, 그 구조 자체가 하나의 이상향처럼 느껴진다. 작은 팀, 빠른 실행, 강렬한 메시지, 초기 지표의 폭발, 그리고 그 뒤를 따라오는 투자와 확장. 문제는 그 서사가 너무 자주 보편적인 공식처럼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일본 시장에서도 마치 같은 공식이 적용될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일본은 그 공식을 거의 그대로 받아준 적이 없다.


일본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보수적이다’라는 감정적 표현이다. 일본은 감정적으로 보수적인 시장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위험을 싫어하는 시장이다. 여기에는 문화가 아니라 확률과 분산의 문제가 깊게 얽혀 있다. 같은 기대값을 가진 선택지가 있을 때, 일본은 거의 언제나 분산이 작은 쪽을 택한다. 성공 확률이 낮지만 성공했을 때 크게 터지는 선택보다는, 성공 확률이 중간 이상이면서 결과가 예측 가능한 선택을 선호한다. 이건 성향이 아니라 합리성의 방향 차이다.


성공 확률 10%, 성공 시 100의 성과 → 기대값 10

성공 확률 50%, 성공 시 20의 성과 → 기대값 10


실리콘밸리는 전자를 선택한다. 일본은 거의 항상 후자를 선택한다. 이 지점에서 실리콘밸리식 GTM은 일본에서 자주 오작동을 일으킨다. 실리콘밸리의 성공 공식은 본질적으로 분산이 큰 베팅을 전제로 한다. 열 개 중 하나만 성공해도 되는 구조, 실패는 학습으로 환원되는 환경, 그리고 실패 자체가 커리어의 낙인이 되지 않는 생태계. 이런 전제 위에서 만들어진 GTM은 일본에 그대로 옮겨오는 순간, 전략이 아니라 리스크가 된다. 일본에서는 첫 시도가 거의 최종 평가에 가깝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 시장에서 흔히 보이는 실패는 실행이 느려서가 아니다. 오히려 잘못된 방향으로 너무 빠르게 간 경우가 많다. 아직 시장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메시지를 던지고, 신뢰의 전이가 이루어지기 전에 확장을 시도하고, 내부적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리스크를 외부 파트너에게 먼저 요구한다. 그 결과는 대부분 “아직은 이르다”라는 말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 말의 의미는 단순한 타이밍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으로 설득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데이터는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니다


이때 많은 팀들이 선택하는 대응은 데이터를 더 모으는 것이다. 일본은 데이터 중심의 시장이니까, 숫자를 더 쌓으면 언젠가는 문이 열릴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데이터는 많다고 힘을 가지지 않는다. 특히 일본 시장에서는 비교 기준이 잘못된 데이터가 오히려 판단을 흐린다. 글로벌 평균과 일본 단일 시장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거나, 다운로드 수로 신뢰를 설명하려 하거나, CPI를 성공의 지표로 오해하는 순간부터 논리는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일본에서 중요한 것은 수치 자체보다 그 수치가 어떤 행동 맥락을 설명하느냐다. 이탈률이 낮다는 사실보다 왜 이탈하지 않았는지가 중요하고, 전환율보다 그 전환이 내부적으로 어떻게 설명 가능한지가 중요하다. 일본의 의사결정 구조에서는 “좋다”보다 “위험하지 않다”가 먼저 온다. 이건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내부 합의 구조의 문제다. 그래서 일본 GTM은 늘 외부 설득 이전에 내부 설명을 전제로 움직여야 한다.


운이 아니라, 가설에 걸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GTM의 본질은 실행이 아니라 가설 설정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일본 시장에서는 운에 기대는 전략이 거의 통하지 않는다. 대신 검증 가능한 가설에 베팅해야 한다. 이 메시지가 먹힐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어떤 세그먼트에서 어떤 조건일 때 작동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가설. 이 가격이 적절하다는 판단이 아니라, 이 가격이 내부적으로 리스크 없이 설명 가능한 범위에 있다는 가설. 이 파트너십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이 아니라, 이 파트너를 통해 신뢰가 어떻게 전이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가설.


가설은 언제나 숫자와 구조로 쪼개져야 한다. 일본 Z세대는 글로벌 서비스에 익숙하다는 말은 가설이 아니다. 일본 Z세대 중 비일본어 UI를 불편 없이 사용하는 비율은 얼마인지, 그 비율이 초기 리텐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로컬 서비스 대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존재하는지까지 내려와야 비로소 가설이 된다. 이 과정을 건너뛰는 순간, GTM은 전략이 아니라 희망이 된다.


문화는 ‘느낌’이 아니라 ‘제약 조건’이다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 문화는 느낌으로 접근하면 끝없이 추상화된다. 하지만 문화는 정서가 아니라 제약 조건이다. 어떤 행동이 허용되고, 어떤 행동이 설명 가능하며, 어떤 선택이 조직 내부에서 합의될 수 있는지를 규정하는 조건이다. 그래서 일본 GTM에서는 성과보다 사례가 먼저 필요하고, 빠른 확장보다 동일한 성공 패턴의 반복이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이는 느림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를 쌓는 방식의 차이다.


그래서 일본 시장에서의 GTM은 속도의 경쟁이 아니다. 방향의 경쟁이다.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느냐보다, 처음에 어디를 향해 발을 내디뎠느냐가 더 중요하다. 실리콘밸리의 성공 사례는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그 대부분은 살아남은 이야기들이다. 일본 시장은 그 생존자 편향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렵고, 동시에 정직하다. 지금 우리가 짜고 있는 GTM은 운에 기대고 있는가, 아니면 가설에 베팅하고 있는가. 일본 시장은 그 질문에 가장 솔직한 답을 요구하는 곳이다. 그리고 아마,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다면 일본 이후의 시장도 조금은 다른 눈으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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