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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 Feb 03. 2023

금융치료가 답이다

뒤집어진 양말 발견 시 한 짝에 만원씩


 

 청소기 돌리기, 걸레질, 빨래, 설거지, 요리, 화장실 청소, 분리수거, 정리 등의 집안일이라고 부르는 종류의 가사노동 95%를 내가 담당하고 있다. 남편이 소득 활동을 하며 우리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으니 가사노동은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가사노동에 기여하지 않는 것에 딱히 큰 불만도 없다. 도와준다 해도 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열심히 해도 티가 나지 않고, 눈에 보이는 보상 주어지지 않으나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아무도 하지 않으면 집이 돼지우리가 되어버리니 말이다. 가사노동의 굴레, 전업주부로서 살아가는 나에게 주어진 숙명이려니.






 남편들이 아내에게 듣기 싫은 말, 아이들이 엄마에게 듣기 싫은 말은 단연 잔소리다. 엄마이며 아내인 나도 잔소리를 하고 싶지 않다. 잔소리를 하면 어렵게 쌓은 내 인심만 가족들에게 인다는 것을 다. 그래지금까지는 말없이 화장실 불을 끄러 다니고, 거실에 버려진 아이스크림 껍질을 조용히 쓰레기통에 버리곤 했다. 나만 참으면 서로 불쾌해지지 않을 테니까.



  빨래통이 우리 집 욕실 앞에 자리 잡은 지는 6년이 넘었다. 샤워하러 들어가면서 옷을 벗어 통 안에 넣으면 되는, 동선을 고려한 위치 선정이다. 빨래통을 들고 부엌 베란다의 세탁기까지 가져가는 수고는 내가 한다. 빨래통에 빨랫감을 넣어 모아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살아왔다. 



 빨래통 안에 모여진 속옷, 바지, 양말, 티셔츠 죄다 뒤집어졌거나 돌돌 말려있다. 남편의 옷도 아이의 옷도 똑같았다. 제대로 벗어놓은 옷가지의 개수가 더 적다. 나는 뒤집어 벗어놓은 대로 세탁기에 넣어 빨고, 건조 후에도 뒤집어진 채 접어 개어 다. 뒤집어진 채 정리된 옷을 남편이 다시 뒤집어 입으면서 불만을 표현한 적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없다. 아이가 가끔 옷을 갈아입으면서 '아 왜 뒤집어져있냐'라고 혼잣말처럼 구시렁대는 소리를 들은 적은 있지만 무시했다. 벗어 놓은 대로 빨래하는 것이 우리 가족만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딱 하나, 양말만은 제외였다.  늘 마음에 걸렸다. 뒤집어진 채 벗어놓은 양말을 그대로 빨아봤지만 빨고 난 후 세탁물을 정리할 때 결국 다시 뒤집고 마는 나를 발견했다. 제대로 씻겨지지 않은 양말을 만지면서 불쾌감을 느끼는 것도 나다.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조된 양말을 뒤집어 접으면서 숨겨져 있던 양말 속 머리카락과 지푸라기 등의 이물질들이 후드득 떨어진 날, 속히 대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하마터면 단전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격한 분노가 튀어나올 뻔했으니까.






 잔소리로 접근하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잔소리로는 그 어떤 행동의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 요즘 금융치료라는 말이 유행이다. 돈으로 정신적인 치료를 받는다는 뜻의 신조어다. 주정차금지구역에 양심 없이 주차하여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차량이나, 신호위반으로 사고를 유발하는 차량 등에 사사건건 감정소모하며 부딪히지 말고 조용히 신고해서 과태료를 부과받게 하는 것이 가장 빠른 치료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그래, 우리 집에도 금융치료를 도입하자.


"남편은 양말 한 짝에 원. 소민이는 천 원. 뒤집어진 양말 개수대로 벌금 부과할 거야!"


 큰소리로 선포했다. 남편은 듣고 웃어넘기는 듯했다. 소민이는 일주일 용돈이 삼천 원인데 천 원 너무한 거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한다. 양말을 똑바로 벗어서 빨래통에 넣기만 하면 벌금 낼 일은 없다고 달랬다. 나는 진지하다.






 빨래통이 가득 찼다. 이제 빨래 타임.

검정 빨래, 흰 빨래, 검정 빨래, 옳거니. 걸려들었어. 한 짝 나오셨고요, 에헤라디야. 뒤집어진 양말을 발견했는데 노래가 나오는 상황이 재미있다. 이번 판은 두 짝이구나. 보통은 벗어놓은 양말의 반은 뒤집어져 있거나 말려있는데 내 진지한 금융치료 선포령을 듣긴 들은 모양이다.  예상보다 저조한 실적이었지만 의미 있는 결과다.



"소민아, 이리 와봐. 네 눈에 뒤집어진 양말 몇 개로 보여?"

"2개."

"아빠 벌금 2만 원 내라고 카톡 보내야겠다."


다음날 아침 2만 원이 식탁에 놓여있었다.





"엄마, 그런데 엄마는 우리한테 돈 버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엄마는 아빠처럼 나가서 일을 안 하니까 돈을 못 벌잖아. 그래서 이렇게 아빠랑 나한테 돈을 벌려고 하는 거냐고."



아이 눈에도 양아치 짓으로 느껴졌나 보다. 한 번으로 끝난 금융치료였지만 효과는 강력했다. 그거면 만족한다. 아이도 조금 더 자라면 내 마음을 이해해 주겠지.


그나저나 가사노동도 금융치료를 받으면 신명 나게 해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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