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pring Feb 12. 2023

비교는 암이고 걱정은 독이다



꿈에 그리던 개학이 3주도 남지 않았. 분명 기다리고 기다리던 개학인데, 마음이 조급해진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아이는 직전 겨울 방학 동안 어떤 준비를 해놓아야 했을까. 하루하루 계획대로 잘 해낸 날도 분명 있었건만, 문제집 한 권 제대로 끝내지 못한 결과만 놓고는 아이 앞에서 불안함을 내비치고야 말았다.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계획한 공부는 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3학년인데."






 방학 동안 어학캠프를 다녀온 아이의 친구 엄마가 자리를 마련했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이, 오랜만에 마주한 엄마들끼리도 차를 마시며 근황을 나누었다. 아이가 영어에 올인하는 방학 동안 아이친구 엄마는 온라인쇼핑몰을 오픈했다고 한다. 필요한 물건이 있는지 둘러보라며 수줍게 홍보한다. 늘 공부하는 그녀다. 부동산 임장 다니고 투자를 공부하며 서울에 집을 사더니 이번 방학엔 온라인쇼핑몰을 준비했나 보다.

 


 함께 자리한 엄마들 중에 한 엄마는 복직을 앞두고 운동과 체력관리에 열심이었다. 늘 자기관리하며 바쁘게만 보였던 그녀는 휴직 기간 동안 아이들도 제대로 못 봐준 것 같고, 스스로의 성취도 많이 이루어내지 못한 것 같다는 속상함을 이야기했다. 내가 보기엔 현재도 모든 일에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았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그녀의 열정을 치켜세워주며 다독여줬다. 돌아갈 직장이 있는 그녀가 부러운 나로서는 사실 그녀의 마음을 전부 이해하지 못한다.

 


 남편친구들의 아내들은 거의 워킹맘이다. 월급쟁이라도 급여가 높은 은행에 다니거나 '사'자 붙은 전문직이 대다수다. 남편이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온 날이면 나도 모르게 위축된다. 남편은 그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사는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준 것뿐인데 내 마음은 마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듯 일렁인다. 다른 모든 이야기들은 기억에 남지 않고 그저 남편친구의 와이프가 어떤 일을 하더라 라는 말만 자꾸 머릿속을 헤집어 놓고는 아프게 내 마음을 울린다.

 





 가끔 그런 날이 있다. 한없이 내가 작아지는 날. 한 인간으로 태어나 스무 살이 넘도록 엄마가 해주는 밥 먹으며 모자람 없이 자랐건만 사회에서 아무런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아무 쓸모없는 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



 대학원에 아침 일찍 면접 시간이 잡혀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집에는 남편친구의 가족이 놀러 와 있었다. 정신없이 아침을 준비해 놓고 친정 집으로 가서 소민이를 맡아달라 부탁했다. 하지만 친정엄마도 바빠 보였다. 시간이 촉박한데도 친정집에 계신 할머니와도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시계를 보며 지금 가도 늦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신발을 신고 나와 택시를 잡아타는 내 뒷모습에 친정엄마의 못마땅한 얼굴이 겹쳐 보였다.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욕심이구나. 다들 원하지 않는데 나 혼자 아등바등하는구나. 내게 주어진일이,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너무 많은데 내 꿈 이루자고 면접을 보러 가는 일이 나에겐 사치라는 생각을 꿈속에서 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고 응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서 서러워 울고 있는데 딸아이가 잠을 깨웠다. 힘든 꿈이었다.

 


 어제의 몇 가지 일들이 나에게 묵직한 부담감을 안겨 주었나 보다. 사실 나도 몰랐다. 아이가 10살이 될 때까지 내가 집에 있을 줄은. 육아휴직을 하고 퇴사를 결정하면서는 막연하게 아이가 36개월 지날 즈음엔 무엇이든 일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렇게 준비하여 도전했던 것이 공인중개사 자격증이었고, 결과 없이 3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나는 지쳐있었다. 다시 도전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실패를 거듭할 것만 같았다. 그 실패는 너무나 아팠기에 굳이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또한 아이와의 시간에 몰두하며 지내다 보니 아이 옆엔 엄마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안도했다. 내 자리가 여기였구나 싶었다. 특히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 그랬고, 아이가 친구들과의 문제로 힘들어하면서도 그랬다. 내가 아이 옆에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안다. 아이는 곧 내 품을 떠날 것이다. 날 지금만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10년이라는 경력단절은 이 기간이 뜻하는 시간의 크기보다 훨씬 더 길고 또 무겁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아니 꼭 일을 해야 하는 걸까. 하고 싶은 일은 당장 없는데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고민하는 걸까. 무엇이 불만인가. 렇게 일하지 않고 평생 살아가도 괜찮은 걸까.

눈에 보이는 어떤 결과는 하나도 없는 나란 사람의 상태. 이런 나의 불안과 걱정이 아이의 새 학년, 개학을 앞두고 아이에게 쏟아져 버렸다. 엄마의 존재가 아이가 받아오는 성적표로 증명되는, 그런 삶은 철저하게 지양한다면서 한심하게도 말이다.

 


 전업주부로 산 10년 동안 내가 한 일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나.

나는 내 삶을 성실하게 살아냈고 한 순간도 될 대로 되라고 대충 살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지난 10년 동안 아내로 엄마로 딸로 며느리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순간순간 나의 존재가 가족들에게 도움이 됨을 느끼며 행복했다.



"엄마는 왜 일 안 해? 엄마도 돈 벌어야 부자 되는 거 아니야?"

"엄마가 일하면 이제 소민이가 혼자 다 해야 돼~ 엄마 일할까? 소민이가 괜찮으면 일하고~"

"힝. 안돼. 나 아직 혼자 못해. 엄마 일하지 마."



다행이다.





 '불편한 편의점'의 저자인 김호연 작가는 책에서 '비교는 암이고 걱정은 독'이라고 했다. 스로 비교하여 암을 만들고 걱정을 미리 하여 독을 쌓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순간순간 드는 부러운 감정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내 안을 암으로 가득  채울 수는 없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 걱정하며 독을 만들어내는 것도 더 이상 해서는 안될 일이다.  비교하지 자. 걱정하지 말자. 나는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지금처럼 최선을 다해 살면 된다.

무엇보다, 내 안의 걱정과 불안을 아이에게 전가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교회에 다녀오는 차 안에서,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선배 와이프가 선배 연봉 앞지른 지 한참 됐을걸?"

 

아무런 의도 없는 남편의 말에 속으로 쓴웃음을 삼킨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되뇐다. 비교는 암이고 걱정은 독이다.





작가의 이전글 금융치료가 답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