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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 Feb 23. 2023

엄마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조금만 더 버팁시다


"엄마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아낌없이 주는 거?"


"나는 엄마가 빨리 자라고 말하는 거.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잖아. 엄마가 나를 사랑하니까 내 걱정해서 건강해야 되니까 잠을 자라고 계속 말하는 거 맞지?"


"으응(돌려 까는 건가), 맞아. 엄마 마음도 다 알아주고. 우리 딸 고맙네. 어서 자."




 얼른 자자, 어서 자라, 자야지, 늦었어 잘 시간이야, 네가 자야 나도 자지, 쓰읍 자라(좋은 말로 할 때).  


 아이에게 매일 밤 반복적으로 하는 말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나는 침대와 책상을 사주면서 방을 꾸며주고 반강제적으로 수면 독립을 행했다. 비자발적인 도전이었기 때문일까. 결과는 절반의 성공, 다시 말해 절반은 실패다. 아이는 여전히 혼자 잠들지 못해 잠들 때까지 옆에서 재워주어야 하고 자다가 깨면 어김없이 안방으로 들어와 우리 부부 사이를 파고든다. 아이가 안방에 들어오지 않고 자신의 방에서 아침까지 잔 날은 나 또한 잠을 잘 자서 컨디션이 좋다. 겨우 일주일에 하루쯤이다. 안방에 일찍 들어올수록 수면의 질은 떨어진다. 언제까지 엄마가 널 재워줘야 하냐고 묻자 사춘기가 와서 엄마가 방에 들어오는 게 싫을 까지 란다.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지금을 감사해야겠구나. 누가 키웠니 쟤.

 


 아기 때부터 잠 때문에 많이 울었다. 순하디 순한 내 아기는 잠투정이라도 해야 했나 보다. 하루에 3-4번씩 낮잠을 자야 하던 신생아 시절에도 무조건 안아서 재워야 했고 눕히기만 하면 깨는 탓에 아기 띠를 한 채 소파에 몸을 기대어 나도 쪽잠을 자야 했다. 이유식 만드는 시간도 기다려주지 않아서 아기 띠를 하고 불 앞에 서서 이유식을 만드는(지금 생각하면 위험한) 일도 많았다. 엄마껌딱지 대회라도 있었다면 1등은 단연 우리 아기가 따냈을 거다. 겨우 누워서 재우기 시작던 때에도 단 한 을 쉽게 잠들어주는 법이 없었다. 토닥여라, 노래 불러라, 발 만져라, 손 만져라, 얼굴 쓰다듬어줘라 등 모든 요구를 다 들어줘야 잠이 들었다.  


  

 아이가 잠들기 전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는 시간은 참 좋다. 그 시간 자체가 힘들다는 것은 아니고, 단지 나는 아이가 잠들고 나서 나만의 시간을 갖기를 고대하는 것뿐이다. 이야기를 기분 좋게 나누고서 '잘 자'하고 방에서 나오고 싶다. 잠이 드는 것은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해냈으면 좋겠다. 하지만 준비가 되지 않은 아이는 잠이 깊이 들 때까지 자신의 손을 잡고 있어 달라고 한다. 어제는 아이 방에서 나오는 시각이 밤 11시를 훌쩍 넘기고 말았다. 내 눈꺼풀도 한껏 무거워져 고대하던 온전한 내 시간은 길어봐야 한 시간 남짓이었다. 하, 열받는다. 요즘은 자정을 넘기기만 해도 비몽사몽인데 대체 나는 언제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걸까.



 내가 낳은 내 사랑하는 내 아이는 하루 온종일 나와 함께하고 싶어 한다. 피아노 연습을 할 때도 '엄마 옆에 앉아', 오늘 해야 할 분량의 공부를 하면서도 '엄마 옆에 있어', 식사 준비를 하며 분주할 때에도 '엄마 내가 뭐 도와줄까', 그 밖에도 '엄마 배고파', '엄마 추워', '엄마 안아줘', '엄마 놀자', '엄마 같이하자'. 하루 종일 엄마 소리를 달고 산다. 하루에 딱 3시간 정도씩만 아무 방해 없는 내 시간을 간절하게 갖고 싶는 생각을 하는데 번뜩 스치는 또 다른 생각. 아하, 드디어 방학이 끝나가는구나.



 그렇다. 2달의 방학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나는 버티다 버티다 드디어 미쳐버리기 직전임을 방금 깨달았다. 자꾸 밤마다 맥주가 당기는 것이, 집을 뛰쳐나가버리고 싶은 것이 당연한 거였다. 내가 원래 모정이 없는 그런 엄마는 아니란 말이다. 2달의 방학이 날 이렇게 만들었을 뿐.






 본인의 어릴 때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오늘도 어김없이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댔다. 널 안아 재우느라 내 허리가 휘어 지금까지도 아프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걱정이 되었나 보다. 등 뒤로 오더니 내 허리를 두들기며 '엄마, 날 안아서 재우느라 고생했어. 고마워' 한다. 알아달라는 건 아니었는데, 아이의 말에 눈물이 핑 고인다. 언제 이렇게 컸지.


 

 알고는 있다. 아이는 이렇게 훌쩍 커서 금세 나와 멀어질 것이란 걸. 얼마 안 남은 이 시간, 아이가 내 옆에 있을 때 더 많이 사랑해 주고 표현해 주고 아껴주면 된다는 것을. 이 시간을 그리워하며 추억할 일이 그리 머지않았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알면서도 매일 밤마다 화가 나는 건, 내 한계일 것이다. 인정한다.  



 방학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나도 오전 시간을 활용해 그토록 고대하던 충만한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러면 빨리 자라고 아이를 다그치지는 않게 될 것이다. 아이의 '엄마'소리에 진절머리 난다고 인상을 쓰지도 않을 것이며 상냥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의 말에 귀 기울여줄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모든 게 방학 때문이었으니 그래야겠지.



일단 오늘 밤에 아이를 재울 때, '쓰읍'은 하지 말아야겠다. 대신 사랑한다고 말해야겠다.





자자. 일주일 남았습니다. 긴 방학이 부디 엄마들이 미쳐버리기 전에 빨리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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