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이었다. 같은 학원에 3학년 3명이 피아노 콩쿠르를 준비했다. 레슨 진도는 내가 제일 빨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장선생님은 엄마에게 대상을 기대해도 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콩쿠르에 내가 나가고 싶어 했는지, 엄마가 나가라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피아노 학원을 오가는 차 안에서의 긴장감만 생각난다. 한 친구의 이름은 전인혜. 오목조목한 이목구비가 가득 찬 작고 하얀 얼굴에 목이 길었다. 늘 단정했던 머리는 가운데 가르마를 타서 오른쪽 왼쪽에 한 개씩 반묶음을 한 후 전부 합쳐 하나로 묶었다. 지나치게 꾸민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로 질끈 동여맨 내 머리와는 달라 꼭 한 번씩 쳐다보게 되었었다.
피아노 콩쿠르의 결과는 인혜가 대상, 당시 2등 상인 최우수상을 내가 받게 되었다. 우리 피아노 학원에서 1등과 2등을 휩쓸었으니 축제 분위기였다. 학원 영업에 큰 도움이 되었을 터. 원장선생님을 비롯 주변의 어른들이 축하한다는 말을 쏟아부어주었는데, 나는 기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상을 빼앗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기대하지 않았다는 표정의 얼떨떨한 그 아이의 표정. 아주 근소한 점수 차이라는 원장님의 위로는 들리지 않았다. 내 마음에는 질투심이 가득 찼고 피아노 콩쿠르에는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훗날 피아노 전공의 권유도 받았지만 그날의 패배를 또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까. 엄마가 치라고 했으니까 치는 거지, 나 스스로도 피아노를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에, 취미로만 하겠다고 했다.
그랬던 내가 딸아이에게 피아노 레슨을 권유했다. 엄마의 끈질긴 회유와 압박으로 피아노를 길게 이어온 게 성인이 되어서는 사실 다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뽐낼 만한 실력은 남아있지 않지만, 문득 피아노를 치고 싶은 날에 피아노를 치며 쉼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나에게 큰 자산이 되었음을 반박할 수는 없다.
유치원 시절 가르쳐볼까 했는데 그때는 아이가 완강히 거부했다. 그러다 우연히 '심플리피아노'라는 앱을 통해 피아노에 재미를 붙이고는 피아노를 가르쳐달라고 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혼자 피아노 소리를 내는 것에 막 재미를 붙인 아이가 선생님과 배울 때 흥미가 반감되거나 부담을 느끼면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움에 있어서 첫인상을 결정짓는 데에는 선생님의 역할이 8할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의 노력을 인정해 주는 선생님, 칭찬을 많이 부어주시는 선생님, 지도하는 말투에 짜증이 묻어나지 않는 선생님을 만났다. 그렇게 아이는 20개월째 개인지도를 받고 있다.
2번의 연주회를 거치면서 아이는 피아노가 싫다고 했다. '피아노 부숴버리고 싶어. 피아노 끊을래.'와 같은 말들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그럴 때마다 10번 중 9번은 사리가 나올 때까지 참아가며 아이를 달래고 얼르기도 했고 1번은 결국 '그럴 거면 그만둬'라며 나 또한 폭발하기도 했다. 거짓말이다. 6번은 참았지만 4번 정도는 나도 짜증을 냈던 것 같다. 두 번째 연주회가 끝났을 때, 다시는 연주회에 참가하지 말자고 아이와 다짐했다.
그런데 선생님의 콩쿠르 제안에 아이의 눈빛이 반짝였다. 오 마이갓. 아이의 연습과정을 지켜보며 잔소리 폭탄을 자제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엄마들은 다 안다. 아이의 마음을 돌려야 했다.
"소민아, 콩쿠르에 왜 나가고 싶어?" "상 받고 싶어." "음, 상을 받는다는 건 콩쿠르에 나오는 친구들과 네 실력을 겨뤄야 받을 수 있는 거야. 점수가 매겨지는 시합이기에 연주회보다 더 엄격하게 연습을 해야 해. 연주회 연습도 힘들었는데 콩루르 연습은 더 힘들지 않겠어?" "한 번 해볼래." "소민이가 열심히 했는데도 상을 못 받을 수도 있어. 괜찮아?" "응, 그래도 도전해 본 거니까 괜찮아."
내심, 콩쿠르에 도전하지 않기를 바랐다. 상을 받지 못해 피아노에 대한 마음이 완전히 식어버릴까 두려웠다. 또한 아이와 나의 관계가 콩쿠르 준비로 인해 망쳐지게 될까 봐 무서웠다. 하지만 이 마음은 아이의 인생에 피아노라는 악기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는 내 욕심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내가 아이를 위해 해야 하는 건, 그저 지지하고 기다려주고 용기를 주는 것일 뿐.
"그럼 소민아, 마지막으로 하나만. 연주회 연습할 때 말이야, 엄마랑 소민이랑 몇 번 싸운(?)적 있잖아. 엄마는 연습 제대로 하라고 짜증 내고 너도 하기 싫다고 짜증 내고. 이번 콩쿠르도 그렇게 될까 봐 사실 엄마는 조금 걱정이 돼. 엄마가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어? 엄마랑 연습하면서 싫었던 거! 이야기해 봐." "엄마가 연습하라고 말할 때 말투를 친절하게 해 줬으면 좋겠어. '빨리 연습해!'말고 '어두워지면 피아노 못 칠 텐데 어쩌지~? 지금 하는 게 어때 소민아?' 이렇게."
"아, 엄마는 소민이가 연습을 자꾸 미루니까 화가 나서 결국은 화난 말투로 잔소리하게 되는 거거든." "이번엔 내가 알아서 할게. 내가 하고 싶은 시간에 정해서."
"오케이. 해보자!"
콩쿠르까지 남은 2주의 시간 동안 우리는 평화협정과 같은 대화 덕분에 눈에 보이는 감정소모 없이 연습에 임할 수 있었다. 내 속은 전과 똑같이 타들어갔지만 불안함과 초조함을 티 낼 수는 없었다. 아이가 자꾸 실수하는 부분, 음이 뭉개지는 부분을 지적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냈다. 한 번만 더해보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꾹 삼켜냈다.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 분량만을 겨우 해내고는 피아노 연습을 끝내는 아이를 바라보며 '오늘도 연습 잘 해냈네, 고생했다.'라고 말해주는 나에게도 셀프 칭찬이 필요할 지경이었다.
"소민이가 연주하면서 막히는 부분은 끊어서 여러 번 연습해 보면 도움이 될 거야~"
"오늘 연습에 만족해? 오늘 연습에 네 스스로가 최선을 다한 거면, 그거면 됐어."
2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매일 주어진 분량을 스스로 정한 시간에 연습했다. 그렇게 아이는 대회를 치렀고, 첫 콩쿠르에 3등 상인 '차상'을 받았다. 아이 혼자 해낸 것이었다.
그저 믿고 기다리는 것이 부모의 역할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어쩌지. 선생님께서 준대상, 대상을 노리고 다음에 또 나가보자고 하시네. 이것도 엄마 욕심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