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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 Nov 29. 2022

"니 자식은 니가 키워."

나도 엄마에게 육아를 맡길 생각은 없었어.

 

"엄마, 나 아이 가진 거 같아."


"아이고~ 3년은 무조건 엄마가 키우는 거야. 그리고 엄마는 니 애 못 봐줘. "  


 


 임신 소식을 마주한 첫 전화 통화였다. 축하한다는 말을 먼저 했던가. 그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먼저 못 키워준다 선수치던 엄마의 말이 너무나 서운하고 충격적이었던 건 확실하다. 비록 서운하다는 말을 지금까지 한 번도 전하지 못했지만.



"지금 직장에서는 육아휴직 6개월 준다고 했다고? 너한테 꿈의 직업도 아니고, 미래도 딱히 없는 직장이라며. 그만두고 네가 키워. 엄마가 키워야 해.   아빠 봐, 부모님이랑  떨어져서 눈칫밥 먹으며 살았잖아. 으이구, 말 안 해도 알지?"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울 것인지, 워킹맘으로 살아갈지에 대한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 맞다. 나와 남편이 이루는 가정이니 부부 둘이 의견을 합하여 결정하고, 그 후 주변에 도움이나 조언을 구하는 것이 절차상 맞지 않은가. 엄마는 사위에게도 심지어 사돈에게도 '아기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전파했다. 나에게는 더 이상 엄마 이외의 직업을 가진 여성으로 살 수 없다는 사형선고였다.  

그렇게 나는 떠밀려서, 전업주부가 되었다.  


  


 '자식은 엄마가 키워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정말 나를 위해서였을까. 아이도 안 봐주는 인정 없는 친정엄마라는 불명예를 피하고자 내세운 좋은 방패가 아니었을까. 엄마 자신이 너무나 소중해서 육아를 돕는 희생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만약 내가 꼭 일을 해야겠노라고, 아이를 봐달라고 말했다면 엄마는 어떻게 나왔을까. 응당 친정엄마가 육아를 도와줘야 하는 것도 아닌데, 나 또한 육아를 엄마에게 맡길 생각조차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엄마에게 끝도 없이 서운한 감정이 드는 이유는 뭘까 궁금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2년 정도 함께 공부하며 교제하던 남자 친구가 있었는데 헤어지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여러 사정 때문에 나름 서서히 멀어지며 헤어지는 노력을 하는 중이었다. 문제는 동시에 내가 다른 이성친구를 좋아하게 되면서 발생했다. 남자 친구는 나도 모르게 엄마를 따로 만났다고 한다. 엄마에게 바람을 피우고 있는 딸의 단속을 부탁하고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될 수학 문제집을 건네주었다고 들었다. 그날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엄마에게 뺨을 맞았다.



 20년 전 그날, 엄마는 내게 왜 묻지 않았을까. 딸을 잘못 키웠다는 수치심이 컸기에 딸의 마음 따위는 궁금하지 않았던 걸까. 엄마가 물어만 봐줬다면, 내가 다 설명할 수 있었을 텐데. 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엄마도 내 행동과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어른의 시각으로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더 나은 조언을 해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 언제나 엄마는 나에게 묻지 않았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딸의 인생 속에 사사건건 엄마가 개입하여 판단하고 결정했다. 나는 왜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고 있는 걸까. 엄마에게 내 의견을 말해도 소용없다는 어떤 내적 좌절감이 엄마에게 뺨을 맞았던 그날에 형성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도 소민이 커서 결혼하면 멀리 살면서 가끔 보고 그렇게 살자. 애 봐달라고 해도 봐주지 말고. 장모님 말씀이 맞지 뭐. 애는 엄마가 키우는 게 좋긴 좋잖아."


나를 위로해주고자 한 말이었을 텐데, 남편에게 버럭 화를 냈다.  


"나는 소민이가 원하는 대로 도와줄 거야. 나는 엄마랑 달라. 적어도 내 자식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어."

 



엄마를 닮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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