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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 Nov 25. 2022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

친정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은 두려워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그러면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가 카페에서 일하는 모습을 CCTV 앱으로 지켜본다. 손님이 없으면 앉아서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면 될 텐데, 쉴 새 없이 쓸고 닦으며 움직인다. 저러니 맨날 다리가 아프지. 엄마의 인생도 짠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내 엄마와의 지난밤 대화가 생각나 엄마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운다.  


 언제부터였을까. 엄마를 만나기로 한 날이면 '오늘은 또 어떤 공격을 받게 될까? 상처받지 말아야지.' 라며 정신을 무장하기 시작한 때가. 어제도 그랬다. 남편은 주임에도 급한 업무로 회사에 가고 딸아이와 덩그러니 남겨졌다. 갈까 말까. 어제 통화 끝에 딸아이에게 보고 싶다고 말하던 엄마의 말이 떠올라버렸다. 집으로 가던 방향을 틀어 엄마 혼자 지키고 있을 카페로 향했다.


 온다는 연락도 없이 나타난 딸과 손녀, 일단 사위는 없으니 부담은 없었을 것이다. 확실한 건 손녀는 반가운 눈치다. 엄마가 소민이에게 집중하는 시간은 만나자마자 1분, 헤어지기 전 5분 정도뿐이지만. 손님이 떠난 테이블을 눈치껏 정리하고 빈 컵을 들고 주방으로 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봇물이 터진다.  


 


"아니 근데 걔는 전생에 나랑 무슨 악연이 있길래 이렇게 부모 자식으로 만나 나를 힘들게 한다니. 내가 돈을 벌어 생활비에 보태래~ 용돈을 달래~ 지가 능력대로 벌어서 지가 다 쓰고 살면서. 걔는 꼭 아빠 탓을 하더라. 내 앞에서 아빠 욕을 해. 니들 앞에서 아빠에 대해 안 좋게 말한 내 잘못이 크다 커. 나쁜 새끼."


"걔가 말을 좀 그렇게 하잖우, 엄마 속상했겠네. 말을 섞지 마셔."


"그리고 아빠가 뭐라는 줄 아니? 그 돈 쓰지 말고 가만히 모아 두래. 나 원 참 기가 막혀서. 아니, 연금 그거 몇 푼 나온다고 그마저도 용돈 쓸 거 다 쓰고 얼마 남지도 않을 텐데 그걸 내가 쓸까 봐 단속한다. 진짜 치사해서 정말. 엄마는 헛살았어. 남편이고 자식새끼고 다 지들만 생각하고. 엄마는 실패한 인생이야."


"아니 뭘 또 실패까지, 엄마 기준이 높은 거야. 엄마 정도면 잘 산 인생이지. 열심히 사셨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엄마의 감정은 날것 그대로 고스란히 나에게 버려지고 나는 가만히 때려 맞는다. 엄마 인생이 실패면 엄마가 낳은 자식인 나도 실패라는 말인가. 거기까지만 하면 좋겠는데 기어코 못을 박는다.



"야, 너 소민이 잘 키워. 어차피 애들은 제대로 된 판단을 못해. 자식 생각 존중해준다며 결정하는 대로 놔두니까 나처럼 이렇게 후회하는 거야. 너 내가 체육교육과 가라고 했을 때 갔으면 얼마나 좋아. 선생님 되면 방학 있지, 네가 좋아하는 운동 실컷 하지, 육아휴직 쓰고 애 키우면 됐을 거고. 안 그래? 너도 이제 뭐라도 해. 언제까지 놀 거야. 소민이 금방 큰다."

 


 여기까지 듣고 나면 엄마 옆에 온전히 서있기가 힘들어진다. 딸 인생마저 실패라고 말하는 엄마. 한두 시간쯤 지났으려나. 차 막히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며 소민이를 다그쳐 서두른다. 그제야 엄마는 오늘도 할미가 일하느라 못 놀아줬다며 아쉬워하고 소민이와 눈을 맞춘다. 5만 원을 소민이의 두 손에 꼭 쥐어주면서.



 결혼하고 가정을 꾸려 독립한 지 햇수로 12년 차, 내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건 불과 3년도 채 되지 않았다. 아빠와 남동생은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아니 듣는 척만 한다. 한 집에 살지만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 애쓴다는 이야기를 동생에게 들었다. 애쓸 일이 없어서 엄마를 피하는 것에 애를 쓴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내가 요즘 그러고 있다. 친정에 가서 엄마 얼굴을 마주할 시간을 최선을 다해 만들지 않는다. 가끔 딸이 근처로 와서 가까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지인에게 하실 때가 있는데 그 말을 전해 들으면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가까이 살며 매일 엄마 얼굴을 마주한다면 나는 아마 단명할 것이다.





 늦은 밤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혹시 아까 카페에서의 대화가 마음에 걸렸던 걸까. 어쩌면 엄마도 나에게 미안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얘, 엄마 잔소리라고 생각하지 말어.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너희 가족 건강은 니 손에 달린 거야. 이서방 건강 안 좋아져서 일도 못하면 너는 어떻게 사니? 돈도 못 벌고. 엄마니까 이런 이야기 하는 거야."

 엄마와의 대화는 이렇게 늘 마무리된다. 엄마는 말하고 나는 듣는다. 엄마는 아무 말이나 토해내고 나는 받아낸다. 엄마는 쓰레기를 버리고 나는 상처받는다. 내 생각은 듣지 않고 엄마의 생각은 강요받는다. 엄마의 인생에서 실패라고 생각하고 후회되는 점들을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너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한다. 참지 말고 엄마에게 내 감정을 말하면 해결되지 않겠느냐고 물을 수 있을 것 같다. 엄마와 대화하는 것이 힘들고 지친다고, 내가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들이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진다고. 어둡고 힘든 그 감정이 내 딸 소민이에게 그대로 전해질까 봐 두렵다고.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그 이야기들을 나마저도 받아주지 않으면 엄마가 무너질까 봐.'
'여태 이해하는 척 들어줬던 딸에 대한 배신감으로 분노하고 나를 떠날까 봐.'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이 너무나 버겁지만 벗어날 용기는 아직 내게 없다. 아무도 상처받지 않고 해결할 방법은 없는 걸까. 고부갈등의 문제는 다각도로 다루어지고 해결책도 많던데, 모녀관계는 문제를 문제라 말하기조차 쉽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게 엉켜있는 관계임이 분명한데도. 처음부터 친구 같은 모녀관계는 바라지도 않았다.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고 관심사에 대해 서로 물어주고 힘내라고 응원해주는 엄마와 딸, 이게 너무나도 이상적인 바람인가?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까. 엄마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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