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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 Dec 02. 2022

"제발, 무통주사 좀 놔줘."

무통주사 못 맞은 산모의 한 맺힘.



"제발, 무통주사 좀 놔주세요."

  

계속 소리쳤다. 내 목소리가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남편과 엄마는 병실 밖에서 조산사와 이야기를 한참 나누고는 병실로 들어왔다.


"무통주사 이거 몸에 좋을 리가 없어. 그리고 무통주사 맞으면 오늘 낳기는 힘들 거래. 힘을 제대로 못주니까. 그냥 오늘 끝내자."


"아니 엄마, 무통주사 놔달라고요. 너무 아프다고. 엄마 다 아는데!!  좀 달라고. 주사."


"이서방, 사인하지 말게. 주사 맞히지 말어. 아기 낳고 같이 '별그대' 마지막 회 보면 되겠네."






그렇게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12시간 진통 끝에 무통주사 없이 유도분만으로 출산했다. 무통주사 맞을 때까지만 버티려고 얼마나 참았는데, 무통 천국을 누리고자 힘주는 연습도 얼마나 많이 했는데. 무통주사가 무엇인지도 몰랐었던 엄마는 보호자 동의서 뒷면깨알 같은 크기로 쓰인 주의사항을 꼼꼼하게 읽더니 '몸에 좋을 리가 없는 주사'라고 말했다. 무통주사를 맞으면 힘주기가 힘들어서 출산까지 시간이 좀 더 걸릴 거라는 조산사의 덧붙임이 엄마의 결정에 한몫을 했다.   


엄마가 잠깐 병실을 비웠을 때, 나는 남편의 손을 꼭 잡은 채 두 눈에 힘을 주고 또박또박 눌러 말했다.

"오빠, 제발. 제발. 나 주사 좀 놔줘."

남편은 장모님 때문에 어쩌지 못하겠다는 애처로운 눈빛을 나에게 보내왔다. 아, 이 남자. 무통주사 사인해주기로 약속도 하고 왔으면서.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기분이 이런 건가.



출산의 경험이 있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다 겪은 그 해산의 고통이다. 내가 더 아팠다거나 내가 제일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출산의 순간까지도 엄마에 의해 내 의견이 철저하게 묵살된 사건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자궁문이 5cm 열렸던 그 순간부터 해산까지  5시간 동안, 자의가 아닌 타의로 무통주사를 맞지 못해 견뎌야 했던 고통은 보다 감정을 추스르는 것이 더 힘들던 것 같다. 통증이 허리로 세게 온 터라 옆으로 돌아누워 흰 벽을 바라보고 소리 없이 울었다. '어떻게 엄마가 딸한테 럴 수 있지.'라는 생각과  함께 '엄마가 출산하던 시절에는 없던 무통주사이니 이해해야지.'라는 생각이 수백 번  오고 갔다. 마는 을 잡아줌으로 진통의 고통함께 해주었지만 이 순간에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엄마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유도분만을 하게 된 에피소드가 있다. 예정일까지도 아무 소식이 없던 터라 담당의는 1주일 정도 기다려보자고  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회사 일정 때문에 곤란하니 좀 당겨서 아이를 낳을 수는 없냐고 물으셨다. 그렇게 최대한 빠른 날로 유도분만 날짜를 받았다. 담당의도 없는 날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엄마 일정에 맞춰드리는 수밖에.

엄마의 바람대로 유도 분만 당일 진통이 걸렸고, 엄마가 원했던 날에 출산했다.




 혼자 외로운 사투를 벌였던 그 시간 동안 나의 기억은 이렇다. 진진통이 걸리지 않아 자궁문이 열리지 않고 있다는 조산사의 내진이 있었고, 남편과 엄마를 포함하여 의료진 모두가 내 출산이 하루를 넘길 것을 예상한 상황이었다. 제 투여를 멈춘 상태에서도 진통이 계속되어 자꾸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이상해서 남편에게 얼른 의료진을 불러달라고 부탁했고 뛰어들어와 상황을 확인한 의료진은  바로 분만실로 이동시켰다.  연습도 없이 힘주기 2번 만에 소민이는 태어났다. 여기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그날의 기억. 해산보다 더 아팠던 후처, 그리고 병실로 이동.



 남편 기억 속의 그날은 나와는 참 많이 다르다. 내가 분만실로 들어가고 나서 급박한 분위기 속에 남편은 서둘러 환복하고 있었다고 한다. 미처 다 옷을 입지도 못한 상황에 아기 울음소리가 려왔다다.

'아빠 들어오세요' 하는 소리에 서두르는데 갑자기 뒷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모님이 핸드폰을  붙들고 전화를 하면서 분만실에 들어오려고 했다는 것이다.



"엄마, 엄마, 애가 애를 낳았어. 엉엉 엉엉. 애가 애를 낳았다고. 엉엉, 엉엉.  어떡해. 엉엉."  

"어머! 안 돼요! 여기 들어오시면 안 돼요!!!!!!!!"






의료진의 제지로 엄마는 분만실에 들어올 수 없었다고 한다. 그날 남편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하며 눈물 콧물 쏟는 장모님에게서  '엄마'의 모습을 느꼈다고 했다.







몸도 마음도 상한 채, 휠체어를 타고 병실로 올라왔을 때,


엄마와 사위는 나란히 앉아 '별에서 온 그대' 마지막 회를  시청하고 있었다.





아이를 출산할 당시 약 9년 전에는 '무통주사'를 맞으며 '무통 천국'을 맛보고 출산하는 것이 많은 임산부들의 소망이었던 시절이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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