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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 Mar 13. 2023

배신감

친구야 미안해



"엄마! 나 회장선거 나갈래!"


 3학년이 된 지, 1주일 만에 학급 임원 선거가 있다고 했다. 아직 서로 이름도 잘 모르는 사이일 텐데. 생각해 보니 1학기 임원선거는 인기투표나 다름없었다. 소민이는 밝고 친절하고 배려심 깊지만, 학급 내에서 눈에 띄는 인기 많은 타입의 아이는 아니다. 알면 알수록 좋은 아이라는 표현이 딱 맞다. 그런 아이에게 1학기 임원선거는 더욱 당선되기 힘들어 보였다. 기대하는 아이가 실망할까 벌써부터 염려되었다. 떨어졌다고 하면 괜찮다고 다독여줘야지. 도전 자체로 충분히 멋지고 대견하다고. 여러 번 되뇌었다.

 
 아이에게 스스로 소견문을 작성하도록 했다. 전혀 감을 잡지 못해서 예시문 두어 개를 보여주고 아이가 쓴 소견문에 약간의 수정을 도와주었다. 뽑히려면 강한 임팩트가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상 알지만, 애써 한 발짝 물러나 있었다. 부모가 아이를 위해 먼저 내미는 손이 독이 될까 조심하는 요즘이다. 아이가 엄마아빠는 어떻게 발표를 했냐고 물어보기에, 외워서 발표해야 친구들에게 자신감 있고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 주었다. 소민이는 연설문을 들고 첫 단어만 확인하면 이어지는 문장은 보지 않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연습했다.
 

선거 전날 밤, 떨린다는 소민이에게 말했다.

"소민아, 너는 너 뽑는 거야. 알지?"
"응, 나는 당근 날 뽑지! 근데 지연이가 나 뽑아준대."
"아 그래? 그럼 벌써 2표네~  그런데 말이야. 지연이가 마음이 바뀌어서 너를 안 뽑을 수도 있어. 그렇다고 해도 너무 서운해하지는 마. 너를 뽑겠다고 했다가 안 뽑는 것은 지연이의 마음이거든. 혹시나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서운함을 친구한테 표현하지는 말고 꾹 참고 집에 와서 일단 엄마한테 이야기해 줘. 엄마가 들어줄게."






 친구와 서로의 이름을 투표용지에 써주자며 약속했던 어렸던 지난날, 나는 친구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당선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럴 거면 그냥 각자 자신의 이름에 투표하자고 했어야 했다. 철저히 계산해서 친구를 속인 것은 아니었다. 변명하자면 어린 나이였다. 친구와의 약속보다는 당선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리고 친구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친구가 여러 표를 받았다면 영원히 내 비밀은 묻혔을 텐데. 아무에게도 표를 받지 못한 덕분에 친구는 내 배신을 알아채버렸다. 친구가 따져 물었다면 사과라도 했을 텐데 아무런 말도 없이 우린 멀어졌다. 1년의 학교 생활 내내 그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에 불편했던 기억이 마음 한편에 남아있었나 보다. 불쑥 떠오른 기억으로 소민이에게 행동지침을 일러주었다.






 하교한 아이의 표정이 어둡다. 물이 들어있는 분무기를 가지고 와 얼굴에 5번 분사하고는 이렇게 얼굴에 땀이 날 때까지 열심히 반을 위해 뛰겠다고 말한 친구가 회장에 당선됐다고 했다. 말하는 아이의 얼굴에 서운함이 묻어난다. 나 또한 서운한 마음이 표정에 드러날까 봐 감추려고 애썼다. 기대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나 보다. 내가 속상해하면 소민이가 더 속상해하겠지.




 "아참, 엄마 그런데 나 빼고 아무도 나를 안 뽑아줬어. 내가 내 이름 적었거든? 근데 내가 1표만 받았단 말이야. 내가 쓴 그 1표라는 거잖아. 지연이가 나 뽑아준다 해놓고 안 뽑았더라. 다음에 나도 지연이가 나가면 뽑겠다고 말하고 안 뽑을 거야. 복수할 거야."



 내가 저지른 짓을 아이가 돌려받는 걸까. 그럴 거면 나에게 돌려주시지 왜 내 아이에게  배신의 아픔을 느끼게 하시는 걸까. 순간 후회와 함께 원망이 밀려왔다. 복수하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낙선된 아픔보다 믿었던 친구에 대한 배신감에 더 마음 아파하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소민아, 엄마아빠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도전하는 소민이가 엄마는 너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고 생각해. 회장이 안되었어도 소민이가 멋지다는 것은 변함없어. "

"알아~ 나 그리고 회장 된 친구한테 먼저 축하도 해줬어!"

"그래! 역시 멋지다 우리 딸! 우리 2학기 임원선거에 또 나가자! 또 안되면 4학년 때 또 나가고!"

 다행히 소민이는 위로차 일찍 퇴근한 아빠와의 외식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의 도전과 실패는 너무나 반갑고 귀하다. 이 경험은 아이가 발전하는 데 소중한 밑거름으로 쓰일 것이다.






 양꼬치와 칭다오를 배불리 먹었는데도 기분이 쉬이 좋아지지 않는 오늘 내 마음의 흐림은 아이 때문이 아니다. 나로 인해 배신감을 느꼈을 그 친구에서 사과하지 못한 기억이 내내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솔직히 소민이가 1표 받은 것이 살짝 씁쓸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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