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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 Mar 19. 2023

엄마는 고백받은 적 있어?

오늘은 맑음



"소민이 어머님 맞으시죠? 저 정훈이 엄마예요~
저희 정훈이가 소민이 좋다고 고백을 한 모양이에요. 친구가 부담스럽고 불편할 수 있다고 여러 번 타일렀는데, 자꾸 그러네요~  소민이가 스트레스받았을 것 같아서요. 애들이 크면서 당황스러운 일들이 자꾸 생기네요."
 


 늦은 저녁시간, 작년 한 반이었던 아이의 친구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내용인즉, 정훈이가 소민이를  작년부터 좋아해서 여러 번 고백을 해왔고, 어제 최종적으로 소민이의 거절의사를 듣고는 마음 아파했지만 괜찮아졌다는 것과 자꾸 아이가 고백을 해서 오히려 소민이가 불편하고 스트레스받을까 봐 걱정이 된다는 것이었다.  
 
 
 소민이에게 자세히 들은 이야기가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더군다나 이렇게 부모님에게서 따로 연락이 온 것을 보면 상대방 아이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아프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지 아빠 닮아서 매몰차게 거절했으면 어떡하지. 어휴, 소민이가 상처 주면서 거절했으면 내가 사과라도 해야 하는 건가.'


복잡한 마음이 밀려왔다. 일단 진정하고 정확한 상황 파악을 해내야 한다.




 알고 묻는 재미난 퀴즈가 시작되었다.

"소민아, 소민이는 화이트데이에 고백받은 일 없었어?"
"없어."  
(헛, 수집된 정보에 따르면 분명 고백받은 날이 화이트데이인데, 이상하다;)
"아, 그래? 그럼 소민이가 고백한 적 있어?"
"아니. 없어. 난 결혼 안 할 거거든."

시간이 걸리더라도 돌려 물어보자.

"소민이 유치원 때는 주안이가 널 좋아했었잖아~ 결혼하자고도 하고"
"응 맞아. 자꾸 결혼하자고 이야기해서 내가 거절하면 주안이가 울까 봐 '생각해 볼게'라고 말했었어."
"아~ 그랬었구나. 그럼 초등학교 들어와서는 널 좋아한다는 친구 없었어?"
"있었지. 1학년때는 김민서, 2학년때는 한정훈."
(옳지, 걸려들었어.)
"아! 그래 정훈이. 정훈이가 너 좋아한다고 그랬었지~ 지금도 좋아한대?"
"어, 어제도 나한테 태권도장에서 고백했어. 그래서 내가 친구로서 좋아한다고 말했어. 전에 정훈이가 귓속말로 '너 나 좋아해?'라고 물어봤을 때는 속상할까 봐 '너 좋아'라고 말해줬거든? 근데 어제는 정확하게 친구로 좋아한다고 말했어."
"그랬구나. 정훈이가 소민이를 많이 좋아했나 보네. 소민이는 친구로서만 좋아하는구나~"



 소민이의 설명을 들으니 조금은 안도할 수 있었다. 매몰차게 거절한 것은 아니었구나. 오히려 정훈이를 배려한다고 한 귓속말이 오해를 불러일으켰을 수도 있겠다. 다행히 친구로서 좋아하는 것이라고 정확히 의사 표현을 했다 하니,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연락을 주신 정훈이 어머님께도 소민이는 괜찮으니 정훈이 마음 잘 살펴주시라는 말을 전할 수 있었다.






"엄마, 근데 엄마는 좋아했던 적 있어? 그리고 고백받은 적 있어?"

"있지~"

"말해줘!"

 엄마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에 다닐 때 계속 엄마에게 고백하는 한 친구가 있었어. 편지랑 선물을 주면서 엄마를 좋아한다고 했지. 생각해 보니 엄마는 그 친구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 그땐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고 몇 년의 시간을 보내며 엄마가 다른 남자친구를 좋아하고 그랬던 게,  그 친구에게는 상처가 되었을 것 같아. 소민이의 이야기를 들으니 엄마가 그 친구에게 사과하고 싶어 지네.  나를 좋아해 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나도 네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렇지만 친구 이상의 감정은 아니라고 미안하다고.  그렇게 솔직한 엄마의 마음을 이야기해줬어야 했는데, 다른 남자친구를 사귐으로 상처를 주고 말았네.


 소민이는 벌써, 친구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구나. 엄마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생각이 깊은 것 같아. 친구를 배려하는 그 마음 정말 예쁘다. 그리고 너의 마음을 확실히 말한 것도 정말 잘했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이가 나보다 낫다 싶다. 친구의 마음이 다칠까 봐 배려할 줄도 알고, 마음을 또 확실하게 표현해야 할 때는 정리해서 말하는 용기도 있는 아이.


얘 누구 뱃속에서 나왔지?





아이의 일상 사건들로 내 마음도 이랬다 저랬다 봄날씨와 같은 요즘이다.

오늘은 맑음. 아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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