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일상은 6개월째 온통 수영으로 시작하고 수영으로 끝난다. 아침에 일어나면 공복 수영을 앞두고 운동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에너지부스터와 아르기닌, 물 한 잔을 챙겨 마신다. 아르기닌은 근육의 피로를 줄여준다고 해서 얼마 전부터 먹기 시작했다. 아이를 깨우고 등교준비를 시키며 나는 고양이 세수를 한다. 어차피 바로 수영장에 가서 수영복을 입기 전 온몸에 비누칠을 꼼꼼히 해야 하므로 눈곱을 떼는 정도의 물 묻힘이면 충분하다.
아이는 학교로 출발하고 나는 수영장으로 향한다. 걸어서 15분 동안 천길을 따라 이어지는 오르막길. 잠자던 몸이 천천히 깨어난다.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들으며 걷고 날이 좋으면 꽃과 풀을 감상하며 걷는다. 수영장을 상상한다. 풍덩. 차갑지만 이내 온도에 적응되면 시원하기만 한 수영장 물속. 설레는 느낌마저 든다. 물론 매일 수영장 가는 길이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수영하고 감기라도 걸릴까 걱정하고 근육통이 있는 날은 이래서 발차기나 제대로 될라나 걱정한다. 하지만 오늘은 설렜다. 운동이 만족스럽게 잘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어제는 스승의 날을 앞두고 강사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수친(수영친구)들과 점심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물론 남편에게도 사전에 이야기했다. 요즘 사랑의 언어를 실천하고자 노력 중이라 우리 사이는 최고로 좋다. 강사님은 늘 수영강습에서 열의가 넘치신다. 예상했던 대로 수영 경력이 길지 않은 생활체육인이셨지만, 수영에 대한 마음만큼은 국가대표급이다. 궁금한 점을 질문하면 성심성의껏 답해주시려 노력하는 모습에 평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요일의 강습을 추가로 수강하면서 모든 강사님들이 다 수영을 가르치는 것에 열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기에 더욱 감사했다.
Spring 회원님은 수영 잘하세요. '이렇게 하세요' 하면 열이면 열 다 맞게 하시더라고요. 정말 잘하시는 거예요.
기대하지도 않았던 칭찬을 받았다. 밥을 내가 사야 하나 하는 마음이 생길 정도로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점심값은 수친들과 나누어 내고 커피는 내가 샀다. 밥을 사고 싶은 마음이기는 했지만 기분대로 쓸 수는 없다. 나는 자제할 줄 아는 사람이다.
수영을 잘한다는 말을 평소에도 듣고 있긴 했다. 기존에 상급반에서 오랫동안 수영하신 분들이 언젠가부터 한 마디씩 말을 건네셨다. 수영을 잘한다는 말 말이다. 그런데 회원분들의 칭찬의 말은 문자 그대로 마음에 담을 수가 없었다. 늘 숨은 뜻을 해석해야 했다.
"자기 수영 잘하잖아. 앞에서 해. 1번으로 와."
문자 그대로 듣고 그렇게 행했다가 낭패를 봤다. 뒤따라 바짝 붙어오는 뒷 회원들에 대한 부담감에 오버페이스로 달려 나가다 다리에 쥐가 나는 바람에 남은 시간 뭉친 근육을 푸느라 수영을 못하는 일까지 생기고 말았다. 집에 와 가만히 곱씹어 생각해 보니 일부러 1번으로 세웠나 싶은 생각이 들어 화가 났다. 수영 잘하니까 1번으로는 와서 해보라는 말이, '네가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식의 말이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기존 회원분들이 새로 상급반에 올라온 나에 대해 견제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으니 못하는 모습을 일부러 연기라도 해서 보여주라는 조언을 해줬다. 그렇게까지 해서 수영을 해야 하나. 마음은 한없이 불편해져 갔다.
"제대로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자세도 아직 잘 모르겠고요."
"그렇게 말하면 언니들한테 혼나! 완전 잘하면서. 수영 한지도 얼마 안 됐다며~"
나름 겸손하고자 한 내 말에 정색하며 달려드는 한 회원님의 반응도 기가 찼다.
'잘하고 있어~ 수영 경력에 그 정도면 정말 잘하는 거 맞아.'라고 말해줄 수는 없었을까. 내가 잘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한 내 말이 대체 왜 언니들한테 혼날 일인건지 모르겠다.
수영장 물속에서는 나를 뒤에 두고 떠드는 그들의 대화가 신경 쓰였고, 탈의실에서는 대체 칭찬인지 아닌지 알아들을 수 없는 묘한 말들에 뒤돌아서 마음이 상했다. 수영 실력을 키우며 운동하러 수영장에 가는 건지, 멘털 강해지려 수영장에 가는 건지 헷갈리는 날들이었다. 그래서 수영장에 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수영을 잘하고 싶은데 열심히 할수록 나에게 까칠해지는 사람을 상대하기가 참 어려웠다. 수영 잘한다는 그 말이 참 불편했다.
내가 칭찬 듣는 것에 워낙 익숙하지 않다 보니 칭찬을 곧이곧대로 듣지 못하고 배배 꼬고 있는 건가 생각해보기도 했다. 잘한다고 하면 칭찬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면 되는 거였나. 그렇게 말하면 '진짜 지가 제일 잘하는 줄 알고 까분다'라고 뒷말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지나친 나의 비약일까.
그럼에도 수영은 내 유일한 탈출구였다. 수영을 하는 동안은 아무런 고민이 없다. 호흡이 편해지고, 속도가 빨라지는 내 수영 실력의 성장에 스스로도 성취감을 느꼈기에 꾸역꾸역 멘털을 붙잡으며 출석도장 찍듯 수영장에 갔다. 버티지 못하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뭐라 하건 난 내 수영하련다, 마음먹었다.
그런 내게 어제 식사자리에서 강사님의 칭찬은 지난 시간 동안 수영 실력의 향상을 위해 열심히 연습한 내 노력을 온전히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수많은 회원들을 가르친 강사님의 칭찬이라 묻고 재고 따질 이유도 없었다. 더욱 수영을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수영 강습이 끝나고, 수영장이 한눈에 보이는 2층 카페에서 라테 한 잔을 주문했다. 다음 강습이 한창이다. 위에서 보면 수영 자세가 더 잘 보인다. 오늘 배운 것 중 잘 안 되는 영법을 유튜브로 찾아보며 집으로 걸어왔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계속한다. 내일 다시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