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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 Mar 09. 2023

모두가 행복한 수영장이길

수영장에서도 눈치 챙기자



 아이가 학교에 가면서 수영 강습을 추가했다. 지금까지는 화목 주 2회 반을 수강하며 다른 날엔 자유수영을 다니곤 했는데 3월부터는 월수금 주 3회 반도 등록을 한 것이다. 이로써 주 5회 수영강습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수영장별로 반 구성과 진도가 다르다. 내가 다니는 수영장은 초급 중급 상급의 3반으로만 나뉘어있다. 반 이름은 같아도 반을 구성하는 회원들에 따라 수영 실력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새로 등록한 월수금 주 3회 반은 '찐 상급반'으로 수력 10년 차 어머님들이 다 모여계시다. 30대에 3년, 40대에 2-3년, 50대에도 한 3년, 이런 식으로 수영을 하신 분들이다.  


 

 그에 맞추어 월수금 '찐 상급반' 이미 모든 영법을 마스터한 수영인들의 운동량을 채우는 데 목적을 둔 반이었다. 일명 뺑뺑이 지옥. 3월의 첫 강습 날, 준비운동을 제외한 45분의 수영시간 동안 25m 레인을 18바퀴째 세는 데까지 성공했다. 얼마나 더 돌았는지는 정신이 가마득하여 알지 못한다.



 기존에 다니던 화목 주 2회 상급반은 상급이라는 이름을 달기는 했지만 아직은 배울 것이 많은 반이었다. 그들 중 강사님이 나를 콕 집어 '1번으로 서세요' 하셨기에 늘 내가 1번으로 출발해 왔다. 그 안에서는 다들 1번인 내 수영 실력을 부러워했다. 옆 레인의 초중급반 언니들이 나에게 '인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고 어느샌가 나는 인어가 된 듯한 마음으로 수영 실력을 뽐내며 부러운 시선을 즐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수영 단체강습에서는 수영실력이 좋은 사람부터 앞에 선다.  그러므로 수영장에서 1번은 그 반, 해당 레인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강사님의 설명이 아무리 개떡 같아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제일 먼저 출발해야 하기에 심적 부담이 크다. 1번이 강사님의 설명을 못 알아듣고 헤매면, 뒤따라오는 모든 회원들이 전부 헤맨다. "1번이 헤매니 다 엉망진창이잖아요!!" 이는 곧 강사님의 타박으로 돌아온다. 물살을 처음으로 가르고 나아가야 해서 체력 소모도 크다. 대신 제일 먼저 출발하기에 강사님의 피드백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한 반에 적게는 10명부터 많게는 20명이나 되므로 강사님 한 분이 일일이 코칭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 단 한 번의 피드백도 소중하다.




 월수금 '상급반'은 총 3개의 레인을 사용한다. 20명의 수강생들이 한 레인에 6~7명씩 나뉘어 강습을 받는 것인데, 수력 10년 차 어머님들이 대부분이지만 레인별로도 실력차가 있다. 나는 3월 첫 수업 시작 전 미리 정보를 입수해, 제일 실력이 뒤쳐진다는 마지막 레인에 자리 잡았다. 래도 화목 상급반에서 나름 1번이니 새로운 반에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수업에 임하려 했다.



 준비운동 후 어정쩡하게 서있다가 자연스레 4번째 순서로 출발했다. 2바퀴를 돌고 와서 정신을 차려보니 뭔가 잘못되었 느껴졌다. 총 7명인 마지막 레인에서 나를 뺀 나머지 회원분들끼리 내 자리 선정에 대해 의견이 분다. 가만 눈치를 살피니 무조건 뒤에 서시겠다는 2분을 제외하고는 1-4번의 자리가 고정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4번 자리에 섰으니, 5번 분은 나 때문에 뒤로 밀려나신 것이다. 기존에 다니던 화목반에서는 늘 내 자리가 1번으로 고정이었기에 회원들 간에 순서에 민감하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내 앞에 서요~  자기가 나보다 빠른 거 같아."

"저 죽을힘을 다해 쫓아갔어요. 헉헉. 제가 뒤에 있는 게 맞아요."

"아니야~ 자기가 더 잘하는 것 같은데~?"

"(고개를 연신 도리도리 저으며) 아니에요."

"답답하면 바꿔줄게 말해요~"



그러던 중에 내 앞에 계신 3번 회원분께서 나에게 계속 앞자리를 제안하셨다. 3번과의 거리가 멀어지지 않게 따라가는 게 정말 힘들었던 터라 한사코 사양했다. 일단 내 체력부터가 기존 회원분들에 비해 너무나도 뒤쳐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 때문에 5번이 되신 회원분의 표정을 살폈다. '뚱'하다. 생각해 보니 내가 처음 월수금 '찐 상급반' 강습에 온 첫날부터 내 인사에 웃으며 인사해 주신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뿔싸, 처음부터 제일 뒤로 가야 했었는데 내가 눈치를 못 챙겼구나. 후회가 밀려왔다.

 





 새로 온 신입인 내가 앞에 서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아무런 생각이 없었고 운동이 힘들어서 표정이 뚱했을 수도 있다. 일단 수비적으로 생각하자. 암묵적으로 실력이 좋은 사람이 앞에 서는 것은 룰이지만, 엄연히 수영장 텃세라는 것이 존재한다. 또한 뒷번호부터 시작하여 앞으로 한 계단씩 착착 올라가는 것에 희열을 느끼며 수영 실력을 쌓아온 사람의 입장으로서는 어디서 굴러들어 온 돌이 박힌 돌 앞에 서는 것에 신경질이 날 만도 하다.

 


 혹자는 그냥 운동하면 되지 무슨 순서까지 신경을 쓰며 눈치를 보냐고 할 수도 있겠다만, 나란 종자는 타고나기를 그게 안된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으면 운동이고 뭐고 아무것도 집중할 수가 없다. 특히 나로 인해 누군가가 불쾌함을 느낀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시할 수가 없다. 평소에도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양보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곳은 '찐 상급반'이 아니던가. 강사님이 시키는 다양한 수영 기법을 전부 따라 하는 수력 10년 차 수영인들에게 존경의 마음이 흘러넘쳤다. 그렇기에 나는 최대한 겸손하게 내 자리를 찾아야 했다. 





 

 오늘은 레인을 도는데 내 발끝에 뒷 회원의 터치가 느껴졌다. 내가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린 배영이었다. 아, 만회할 기회를 주시는구나.


"더 빠르신 것 같아요. 제가 뒤 갈게요."

재빠르게 5번 회원분에게 말을 건넸다.


"아니에요~ 앞에서 가요~"

사양하시면서도 순간 얼굴에 웃음기가 돈다.


"저는 지금 여기에서 따라가느라 죽을 것 같아요. 앞에서 먼저 가주세요."

"아이고~ 그래요? 아직은 좀 힘들지? 그럼 내가 앞으로 갈게. 더 빨라지면 자기가 앞으로 와~"


'자기'라고 하시며 말을 놓으셨다. 웃으며 내 앞으로 이동해 주신다.

자, 이제 원래대로 1-4번분들의 순서가 바뀌지 않았고 나는 5번이 되었다.

좋아, 자연스러웠어.






이제야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제 눈치 보지 말고 운동에 집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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