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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 Dec 08. 2022

남편의 출장, 내 가슴이 설렌다.

남편의 출국 시간을 확인하고 발행하는 글



"남편 없이 1주일이나 어떡하노. 무섭지 않겠나. 내가 갈 수도 없고."



"소민이 있잖아요. 괜찮아요, 어머님."(무섭긴요. 설레는걸요.)




 시어머님의 걱정 어린 전화에 씩씩하게 답했다.


 사실이었다. 무섭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소민이가 어렸을 때야, 혹시 모를 비상상황에 무섭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뭐, 걱정할 일이 없다. 심지어 설렌다. 생각해보니 결혼하고 1주일이나 떨어져 있는 것은 처음이다. 싸워서 눈 마주침과 대화 없이 1주일 정도 살아본 적은 있지만. 설레면 안 될 것 같은데 씰룩거리는 입술을 자꾸 승천하려는 광대를 숨길 수가 없다.



 부모님이 안 계신 집에서 자유를 느끼는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 아빠가 나와 동생을 두고 집을 비우시는 날이 종종 있었는데 그날은 우리에겐 축제의 날이었다. 2박 3일 일정으로 집을 비우실 때면 동생이랑 하루씩 번갈아가며 친구들을 초대했다. 오늘은 내 친구들과의 파티라면 내일은 동생 친구들. 생각해보면 별거 없었다. 영화 보면서 밤새 과자를 먹고 음료수를 마시는 '과자파티'랄까. 동생 친구들이 놀러 오는 날에는 편하게 놀도록 내가 자리를 비켜주기도 했다.(밤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고 일탈을 즐겼다는 이야기다.) 돌아오시기 전에 모든 쓰레기를 분리수거까지 완벽하게 하고 청소기를 돌림으로 우리는 완전범죄를 꿈꾸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부모님은 모르고 계실 거라고 믿는다. 그렇게 생각함이 마음 편하다.



 지금은 그렇게 합을 맞춰 빈 집을 즐길 동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딸과 둘이 남게 된다. 학교 보내고 학원 보내는 일상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딸 눈치 보여 친구를 초대할 수도 없다.(이제는 내 친구를 초대하면 자기 친구도 초대해달라고 한다. 그게 공평하다고. 공평의 뜻은 아는 걸까.) 사실 남편이 집을 비웠다는 소식을 전해도 놀러 올 친구가 없다. 그런데 나는 왜 어릴 적 그날처럼 설레는 걸까. 결혼 12년 차, 남편의 출장 소식에 나는 왜 웃고 있는 걸까.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첫 번째 설렘의 이유를 발견했다. 거실 화장실은 남편이 주로 사용한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가 등교하면 아침청소시간에 꼭 거실 화장실을 점검하고 청소해야 했다. 바닥에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 세면대의 물때, 검정 타일 위에 치약 흔적이 묻은 채 아무렇게나 놓인 칫솔과 치약, 제대로 헹궈지지 않은 면도기, 뚜껑은 이미 사라진 면도크림, 마찬가지로 뚜껑 없이 열린 채 놓여있는 헤어 오일, 비누거품 잔뜩 튀어 얼룩덜룩해진 거울, 심한 날은 변기도 닦아주어야 한다. 남편 혼자 사용하는 거실 화장실에 매일 10분 이상의 청소시간을 따로 내어주어야 함이 내심 불만이었나 보다. 더럽히는 사람이 없으니 1주일 동안은 화장실 청소 해방이라는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번졌다. '1주일 동안 거실 화장실은 손도 대지 말고 사용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한다. 화장실 청소 1주일 해방.




 남편의 저녁식사에 마음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좋다. 퇴근시간이 불규칙한 남편의 저녁은 나에겐 해도 안 해도 불편한 숙제였다. 기껏 정성 들여 저녁을 준비했는데 갑자기 회식이 생겼다고 해도 짜증이 났고, 아이와 간단히 먹고 치웠는데 남편이 집에서 저녁을 먹는다고 연락이 와도 짜증이 났다. 사실 육아하며 남편보다는 아이의 먹거리 중심으로 음식을 만들어왔기에 남편에게 미안함은 있으나 그건 그거고. 갑작스러운 연락에 불편 감정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내 마음이니까.




 남편과 내 수면시간은 다르다. 남편은 12시부터 5시, 나는 새벽 2-3시부터 8시. 아이를 재우고 새벽까지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가 안방으로 들어갈 때마다 남편을 깨우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살금살금 고양이 걸음으로 침대에 몸을 뉘인다. 여기까지는 보통 성공한다. 이불을 덮으려 할 때 꼭 남편을 잠에서 깨우게 된다. 이불을 따로 쓰고 있지만 남편의 돌돌 말고 자는 잠버릇 때문에 늘 내 이불도 같이 말려있다. 이번 한 주는 이불 때문에 깨버린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아도 되는 1주일이 되겠지. 잠귀 예민한 남편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을 수 있어서 좋다.



모두가 자는 어둡고 고요한 시간을 사랑한다. 아이를 재우고 나왔는데 안방에서 남편도 잠이 들어있을 때가 가끔 있다. 그런 날은 밤 10시부터 나만의 시간. 과자를 먹으며 밀린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한다. 손톱과 발톱을 다듬기도 한다.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으로 보낸다.

 


 남편의 1주일 부재가 설레기만 하냐면 당연히 그것은 아니다.


 주말을 딸과 둘이 보내는 것은 골프나 출근으로 자주 있는 일이기에 괜찮다. 어차피 집에 있어도 남편은 낮잠을 자고 딸과 밖에서 놀다 들어오는 일이 많았으니까. 그런데 하필 이번 주말에는 딸의 피아노 연주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딸아이가 속상할까 물었는데 핸드폰으로 찍어서 보내주면 된다고 괜찮다고 한다. 정작 남편 없이 딸아이의 연주회에 앉아있을 내 걱정은 조금 된다. 쓸쓸하려나. 사연 있는 여자 같아 보일까도 싶고.






 남편은 어떤 마음일까.

 말로는 가기 싫다고 하는데 출장준비에 부산스럽다.  며칠 전부터 계속 택배가 왔다. 가서 입을 옷이란다. 남편도 설레는 걸까.


"보조배터리 어디 있어? 헤어 오일 좀 챙겨주라. 나 세면도구 뭐 가져가? 옷이 이 정도면  될까?"  


입사 14년 차 첫 해외출장을 즐기고 있음은 분명하다.







남편이 출장에서 안전하게 돌아오길 기도하며 웃고 있는 아침이다.


(내 눈에 맺힌 눈물은 눈물이 아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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