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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co Aug 11. 2020

요즘 애들은 왜 끈기가 없어?!

포기가 빠른 게 아닙니다. 판단이 빠른  거예요.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어! 라떼는~"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어"라는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나는 전공 덕분에 "(그림을 전공한) 애들은 끈기가 없다"라며 앞서 몇 글자가 더 추가되기도 한다. "예술 쪽 아이들은 길게 일하는 법이 없다." 어쩌다가 이런 편견이 생겼는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요목조목 반박하고 싶지만, 나 또한 이러한 편견을 굳히는데 일조하고 있는 1인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참기로(?) 한다.


나는 제일 오래 다닌 회사가 3년 5개월 정도였다.


내 나이 만 33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하고 대학에 대학원까지 나왔으니 길어봐야 얼마나 길에 회사 생활을 했겠냐 만은 뒤돌아 보면 저 3년 5개월짜리 회사를 제외하고 다 짧은 기간 근무했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저 3년 5개월 다닌 회사도 주 5일 근무가 아니라 더 적게 일했으니 주 5로 환산하면 반절 정도 되려나?

그런데 여기서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할 부분이 있는데, 바로 미술계는 대부분 계약직이고 정해진 기간에만 사람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는 점이다. 물론 계약기간을 다 채운 곳도 있었고, 계약기간 중에 마음에 안 들어 그만둔 곳도 있었고, 계약기간 중 좋은 공고를 보고 (좋은 줄 알고) 지원해서 그곳으로 옮겨 간 적도 있었다. 사실 요즘은 "어딜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도 안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으레 "너는 어디 하나 진득하게 다니지를 못하니?"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아니, 저를 몇십 년간 같은 직종에서 근무한 공무원 아버지와 비교하시는 건가요?...)


그러다 얼마 전 최근 옮긴 회사에 대해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한 가지 띵언을 들었다.


농담 반 진담 반 "나 맘에 안 들면 또 그만둘 거야! 난 안 되는 건 빨리 포기하지"라고 했더니

"너는 잘하는 걸 빨리 발견하나 보다"



생각해보면 나는 안 되는 일에 포기가 빠르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말이 있는데, 33년간 살면서 확실히 배운 것 중 하나는 ' 되는 일을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되게  수는 있지만  놈이  것보다 아무래도 별로다.'라는 거다. 이 사실을 처음 깨달은 건 고등학생 때다. 사실 중학생 때도 조금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았었다. 남들보다 긴 시간 투자하고 나름의 성취감을 맛보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니 도저히 나의 DNA로는 무리라는 걸 깨달았다. 같은 수학책을 보고 같은 공식을 푸는데 누군가에게는 1, 2분이라는 시간이면 충분했지만 나에게는 최소 10분 이상이 필요했다. 그래서 포기했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 나는 수포자가 되었다. 그 시간을 아껴 다른 분야에 집중했다. (일명 선택과 집중) 그때부터였나? 나는 몇 번 해보고 이 분야는 아닌 것 같은데 싶음 빨리 포기하고 그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걸 찾아냈다. 내가 될 놈인 분야를 찾아내는 거다. 안 되는 걸 부여잡고 있는 것보다 그 편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번 포기한 일은 뒤돌아 보지 않았다. 난 내가 할 만큼의 최선을 다 했으니까.


다 같이 정해진 길로 마라톤을 뛰다가 중도에 멈추거나 새로운 길로 가버리면 우리는 으레 '포기했다'라는 말을 한다. 누군가는 '포기'를 '용기'라는 단어로 포장해주고 싶어 하는데... (내가 수포자가 된 건 용기가 있어서 한 게 아닌데...?)


'포기' 그게 왜?


고등학교 때 '도피 유학'이라는 단어가 종종 아이들 입에 오르내렸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지만, 입시구조에 반하는 아이들이 유학을 갈 때 이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건 누군가의 입장에서 포기였다. 그래서 '도망친다'라는 의미인 '도피'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걸까? (나도 여유만 되면 가고 싶었다고...)


직장생활을 할 때 '도피처'로 '대학원'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쳇바퀴 인생에 지친 직장인이 아닌 사회로부터 일정 부분 보호받으며 캠퍼스의 낭만을 누리는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 (요즘 그딴 거 없다는데) 어쨌든...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데 '도피'라뇨? 직장생활을 포기했다고 생각하나 본데... (솔직히 공부하고 싶은 직장인들 손들어 보자...)


왜 우리는 통상적으로 그려진 루트로 마라톤을 뛰지 않으면, 포기라는 둥 도피라는 둥 온갖 부정어를 사용하는 걸까?


사실 누군가의 선택이 부러웠던 게 아닐까?


내가 하기 힘들고 망설였던 선택을 누군가 쉽게 했을 때(사실 쉽지 않았을 수도),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것 이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아는데서 오는 박탈감까지. 그래서 상대를 깎아내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우리는 누군가의 선택을 '포기'라는 한 단어로 정의 내릴 자격이 없다.


누군가 내가 (힘들게) 내린 결정에 인내심 부족, 끈기 부족, 포기라는 단어를 쓰면 기분 좋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요즘애들은 끈기가 없다"라고 이야기하는 라떼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좋았으면 그만뒀겠니? 똥 밟을까 봐 무서워서 빨리 피한 겁니다.





언아더 일상 @coco._.sam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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