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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Jul 11. 2020

엄마가 된 딸, 딸이었던 엄마

딸이 엄마가 되고 나서야 딸이었던 자신을 찾아간다는 것

과거의 나를 가장 많이 떠오르게 하는 존재는 19개월 된 나의 딸이다. 나와 닮은 존재. 그녀는 내가 그녀와 같이 작았을 때를 자꾸만 떠올리게 한다.


그 일에 누구보다 일조하는 것은 우리 엄마다. 내가 육아에 대한 작은 푸념만 해도 엄마는 바로 반박에 나선다. 그것은 나를 키우던 엄마의 오래된 푸념 같은 것이다. 주로 “너에 비하면 가을이(내 딸의 이름이다. 그렇다 가을에 낳았다.)는 키우기 수월한 거다”가 주 내용이다. 내가 잠을 잘 자지 않아 얼마나 엄마를 힘들게 했는지, 내가 밥을 잘 먹지 않아 얼마나 엄마를 애타게 했는지에 대해 다양한 에피소드를 곁들여 끊임없이 이야기해 주신다. 얘기를 듣다보면 엄마가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나를 키워주신 것에 감사하면서도, 내가 그렇게 힘든 딸이었다는 게 자랑스럽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엄마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때의 나에 대해 이야기 해줌으로써 왠지 모르게 내가 나를 더 알아가게 되는 기분이 들었다. 잃어버렸던 나의 조각들을 찾아가는 것 같다고나 할까?


새로이 알게 되는 것 외에도 잊고 있던 기억들을 다시금 찾아오게 하는 순간들도 있다. 사진이나 비디오를 통해 가끔씩 꺼내보던 순간들이 내 아이를 보며 갑자기 팝업이 될 때가 있다. 내 실내화를 신고 있는 아이를 보면 엄마 구두를 신고 집안을 돌아다니던 내가 떠오르고, 놀이터에서 언니오빠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아이를 보면 같은 모습의 나의 어릴 적이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마음이 묘하게 뭉클했던 때는 내가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인형을 내 아이에게 주었을 때다.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그 인형을 내 아이가 똑같이 가지고 놀 때면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 아이가 만나는 것 같은 짜릿함이 온다. 그 때문에 장난감 가게에서 내가 어릴 적 좋아하던 인형과 같은 인형을 발견했을 때 기뻤을 테고, 내 아이가 다른 인형들이 아닌 그 인형을 골랐을 때 더 기뻤을 테다. (와우 그러고 보면 그 캐릭터는 얼마나 그 인기가 오래가는 것인지!!) 이 신기한 경험들을 아이 덕분에 한다.


그러다 보면 문득 내가 아이가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나는 엄마의 ‘딸’이었고 지금도 그런데, 그런 나에게 ‘딸’이 생기다니! 내가 앉아 있었던 엄마의 무릎에 내 딸이 앉아 있는 모습이 생경하면서도 우리 세 사람이 그 모든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게 된다. 딸의 딸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분명한 것은 딸보다 손녀가 훨씬 예쁘다고 하셨다.ㅋ)


어느 날 내가 가을이에게 밥을 먹이고 있는데, 엄마가 가을이에게 대뜸 그러시는 거였다. “가을아 할머니는 네 엄마의 엄마야. 얘는 내 딸이야.” 하시면서 내 볼에 뽀뽀를 해주셨다. 그 때 문득 깨달았다. 맞아 나도 엄마가 밥을 먹여주던 딸이었지. 그 시간들에 사랑이 켜켜이 쌓여 부족한 내가 ‘엄마’라는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거겠지. 내가 가을이를 보며 엄마가 아닌 오직 딸이었던 나를 떠올리는 것처럼, 엄마도 그런 나를 보며 엄마가 된 내가 아니라 딸이었던 나를 떠올리시는가보다.


딸이 엄마가 되고 나서야 딸이었던 자신을 찾아간다는 것. 그 귀한 경험을 하게 해준 나의 딸 그리고 또 누군가의 딸이었을 엄마에게 고마운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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