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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Jul 11. 2020

넌 나의 소중한 보물

아이의 그림책에서 얻는 위로

나는 하루에도 여러 권의 책을 읽는다.

이렇게 '다독(多讀)'이 가능한 이유는 아이 덕분이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기 때문이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책을 읽어주지는 못해도, 아이가 읽어달라고 가져오는 책은 꼭 읽어주려고 한다.


20개월짜리 아이가 읽는 책이 그러하듯이 대부분 한 페이지에 한 문장 이상이 담겨있지 않은 책들이지만, 읽는데 드는 에너지는 상당하다. 큰 목소리와 몸짓으로 읽어야 함은 물론이요, 책에 나오는 활동(?)들도 따라해야하고 무엇보다 아이의 끊임없는 질문("이거 뭐야?")에 끊임없이 대답을 해주며 읽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줄거리보다 그림에 집중할 때가 많다. 특히나 동물이나 곤충들이 나오면 하나하나 다 짚어가며 무엇인지 물은 뒤 대답을 들으려 한다. 게다가 아이는 한 권 읽어주기 시작하면 대체로 연속 4~5권의 책을 가져오는데, 한 권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 주기를 원할 때도 있기 때문에 단순한 책을 흥미롭게 읽어주고자 애쓰는 엄마의 입장에선 결코 쉬운 일이라 할 수 없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이는 나에게 책을 들고 와 "이거도요~(읽어줘요~)"한다. 내 책을 읽던 중이라 "엄마 이 부분만 마저 읽고 읽어 줄께~" 했지만, 아이는 이미 내 앞에 책을 펼쳐 놓고 내 손가락을 가져가 잡는다. 무언가 보니, 오늘의 첫 책은 '꼭꼭꼭'. 아이가 좋아하는 책이다. "아빠 손가락을 잡고서 꼭꼭꼭". 이 책의 첫 문장이다. 아기가 아빠 손가락을 잡고 있는 그림. 그래서 내 손가락을 가져가 잡은 것이다.


이어서 "엄마처럼 팔 벌려 팔랑팔랑", "통통한 아가 볼이 말랑말랑", "자그마한 코에 코코코", "귀여운 이마에 쪽쪽쪽" 이 나온다. 그러면 아이는 팔을 흔들고, 볼을 만지며, 코를 가리키고, 나에게 이마를 가져다 댄다.


처음에는 이 모든 내용을 스스로 따라하는 아이가 신기하고 기특해서 동영상을 연신 찍어댔었다. 이제는 능숙하게 따라할 뿐더러 배경 그림으로 나오는 나비의 색깔까지 이야기 하는 수준이 되었다. (나비를 나비라고 말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색깔까지 말한 것은 사실 오늘이 처음이다.) 이렇게 익숙해 질 정도로 수없이 많이 읽은 책이지만, 나를 늘 기분 좋게 하는 것은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너는 나의 소중한 보물 꼬~옥"


엄마가 아기를 두 팔로 꽉 안아주고 있는 그림. 이 문장이 나오면 아이는 나에게 와서 안긴다. 나도 아이를 꼭 안아주며 이야기 한다. "너는 나의 소중한 보물~" 그러면 그 순간 정말로 아이는 나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 된다.


사실 아이는 언제나 나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순간은 사실 드물다. 익숙함에 속아 잊어버리는 것도 있겠지만 이 소중한 보물은 이불 위에 오줌을 싸고, 밥투정을 하며, 나에게 매달려 칭얼거리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네가 얼마나 나에게 보물과 같이 소중한 존재인지 이야기 해 주기보다는, "안 돼!" "하지 마!" "왜 그러는 거야?!" "김가을!!!" 등의 말을 훨씬 더 자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말들 뒤에는 물결이나 하트 보다는 느낌표 여러 개나 물음표+느낌표가 붙게 된다.


그런데 고맙게도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잊고 있었지만 그 어느 것 보다 중요한 것을 되새기게 해준다. "너는 나의 소중한 보물" 그리고 그것을 아이에게 나의 언어와 목소리 그리고 몸짓으로 전해줄 수 있게 된다. 종이에 누워있던 글자들이 목소리를 통해 입 밖으로 나가게 될 때,  그 문장은 더 강력한 무언가를 가지게 된다. 마법 같은 일이라고나 할까.


아이도 그 마법과 같은 순간을 좋아하는 것일까? 이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 말이다. 사실 그 문장을 통해 더 위로받는 쪽은 나다. 아이를 품안에 안아보며 다정하게 말을 건넬 때, 실은 내 마음이 더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 아이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다시금 되새기며, 이 고단함을 상쇄해 가는 것. 책을 읽어줄 때가 아니더라도 이 마법의 문장을 이따금씩 아이를 안아주며 말하게 되는 것은 아이보다는 나를 위한 행동일거다. 잊지 않기 위해, 이 사랑스러운 존재를 잊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익숙함에 속아 잊어버리지 말자. 나의 보물은 늘 내 곁에 있었다는 걸.


코로나 때문에 독박육아가 더욱 독박이 되어, 아이와 한 껏 밀착된 시간들이 쉽지 만은 않은 요즘. 나에게 정말 필요한 문장은 이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위해 읽던 책에서는 받지 못했던 위로를 아이의 그림책에서 얻었다. 그리고 그 문장을 내 아이가 내게로 가지고 왔다. 읽어달라고. 늘 내가 아이에게 주기만 하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나도 아이에게 많은 것을 받고 있다.

고맙다. 너에게도 이 책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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