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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Jul 11. 2020

나는 힘들지 않아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여행을 가는 차 안에서였다. 남편과 오롯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때는 아이가 자고 있을 때 뿐 이다. 아이가 잠이 든 차 안, 서로가 옆자리에 앉아 있고 신경 쓸 것은 이따금씩 가야할 방향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뿐. 부부가 이야기를 나누기 생각보다 좋은 환경이다. 음악 소리를 낮추고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는 푸념이 되었고, 푸념은 원망이 되었다. 그렇다.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이 '육아'가 너무도 버거웠다.


곧 출산을 앞둔 친구 부부네 놀러갔다. '육아'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고, 우리 부부는 얼마 전의 '대화'(라고 쓰고 '싸움'이라고 읽는다.) 이야기를 꺼낸다. 육아 이야기는 넓어져 '결혼생활'로 이어지고 친구 부부와 서로 앞 다투어 에피소드를 꺼내며 또 다시 이야기는 푸념이 되었고, 푸념은 원망이 되었다. 바꿀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서로가 애를 쓰고 있음에도 모두가 상처로 얼룩지는 힘든 이야기들이었다.


친구네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남편은 나에게 '그래도 친구들에게 털어놓으니 마음은 편해졌냐'고 묻는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편해지기는커녕 더 답답해진 듯하다. 그러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차창 밖을 내다보고는 있지만, 내가 무얼 바라보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는데, 문득 떠오는 문장이 있었다.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 언젠가, 아마 인터넷에 떠도는 짧은 영상으로 본 듯한 내용. 남편에게 이야기하니 같은 영상을 봤던 것인지 남편은 배우 박신양의 영상이었던 것을 기억해 내었다. 다시 찾아보니 박신양이 러시아 유학 시절 너무 힘든 나머지 선생님께 러시아어를 배워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선생님 나는 왜 이렇게 힘든가요?" 대답 대신 러시아 시집을 건네주신 선생님. 그 시집에 나온 말이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였다는 것. 그 말에 충격을 받았었다는 그는 청중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 했다. "당신의 가장 힘든 시간까지 사랑하는 법을 배우세요"


나도 무의식중에 나에게는 불행이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나보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 대학 때는 '가정'을 전공하기까지 했었기에, 내가 가정을 꾸리면 무조건 행복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나보다. 그러니 작은 불행도, 작은 힘듦도 받아들이지 못했으리라. '그럴 리가 없어!' '이건 뭔가 잘못된 거야!'하며 다른 누군가를 원망했었다. 나의 육아생활에도 나의 결혼생활에도 '불행'과 '힘듦'이 올 수 있었던 것인데, 나 혼자 그것을 인정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싫었던 모양이다. 언젠가 "TED"에서도 행복은 '불행'을 얼마나 잘 받아 들이냐에 달렸다는 강의를 들은 기억도 떠올랐다.


내가 해야 할 것은 이 힘든 상황과 내게 주어진 불행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내가 행복해 질 수 있었다.


그렇게 떠오른 생각들을 옆에서 운전하는 남편에게 이야기 했다. 내가 그랬던 것 같노라고, 그리고는 나의 진짜 마음을 말해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내가 진짜 필요했던 것은 나의 힘듦을 인정해주고 내 편에 서서 이야기 해주는 당신이었다고... "네가 힘든게 당연해. 상황이 아주 거지 같지... 네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 도와주지 못했던 것이 미안해"라고 이야기 해주면 좋겠다고... 그렇게 해주면 나도 이 상황을 훨씬 더 잘 받아들이고 견딜 수 있을 것 같노라고 이야기 했다. 남편은 운전 중이었지만 한 손으로 내 손을 잡아주었다. 알았다고 했다. 앞으로는 그렇게 이야기 해주겠다고, 나는 늘 당신 편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집에 도착해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나눈 대화에서, 나는 결국 남편도 '내 편'이 필요했음을 느꼈다. 나와 똑같이 이해받고 자기편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음을 알았다. 우리는 연애 때부터 서로의 번호를 '내 편'으로 저장해왔었다. 하지만 어려가지 어려움에 흔들려 더 이상 서로의 편이 되어주지 못했던 듯하다. 혼자서는 도저히 버텨내기 힘든, 기쁠 때 보다 힘들 때가 더 많아 '힘들 때'를 사랑하지 못하면 내 삶을 사랑하기 힘든 그런 인생살이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어쩌면 '진짜 내 편'이 한 명 이라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아닐까.


결혼살이 고작 3년이지만, 앞으로 가장 오래 볼 '내 편'이 '남편'인데 서로에게라도 '진짜' 내 편이 되어줘야지. 그리고 같이 행복해야지 싶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힘듦'이 만연한 일상으로 돌아왔고, 또 그 힘듦에 이따금씩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이지만 그래도 '내 편'이 있음으로 인해 서로 조금이라도 더 단단해졌기를 이 '힘듦'을 더 잘 받아들이고 결국은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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