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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Jul 11. 2020

공원에 가면 좋은 사람이 된다.

나무, 물, 하늘, 햇살의 힘

코로나 확진자 문자가 하루에도 한 두 개씩 꾸준히 오고 있지만,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마음에 그래도 마스크를 끼고 기어이 공원에 나간다. 나무, 물, 하늘, 햇살 이런 것들을 보지 않으면 내 안의 인간성을 잃어버릴 것만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도 그러한지 주말이면 텐트에 돗자리에 이고지고 '기어이' 나온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바람을 맞으며 연을 날리기도 하고, 햇볕에 마음을 말리기도 하며, 호수를 바라보며 물멍을 때리기도 하고, 손에 든 맥주보다 눈앞의 초록의 싱그러움에 취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더욱 격하게 이 날씨를 만끽한다. 풍력발전기처럼 움직여야만 충전이 되는 냥 이유 없이 뛰어다녀도 즐겁고, 색색의 킥보드를 타고 연신 발을 구르며, 비눗방울을 쫓아 다니기에 여념이 없다. 아마도 햇빛으로 충전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른들은 다 그늘을 찾아 들어가 있는데, 아이들은 얼굴이 벌게지도록 햇볕에 나가 있는걸 보면...


나무, 물, 하늘, 햇살 이런 것들을 보고 마음이 충전된 사람들은 저마다의 친절함이 자연스럽게 묻어 나온다. 사실 그늘에 있는 어른들 보다 햇볕에 있는 아이들에게서 그런 친절함이 더 많이 묻어 나오는데, 그것은 나의 딸아이가 그들 곁에 가서 묻혀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20개월, 한창 언니오빠들이 신기하고 좋을 나이. 아이는 모르는 언니오빠들에게도 서슴없이 다가가 인사를 한다. 혹은 옆에서 뚫어져라 구경을 하고 같이 놀고 싶다는 마음을 그렇게나 내비친다. 그러면 어김없이 언니오빠들은 아이와 함께 해준다. 꽃을 꺾어 아이의 머리칼에 꽂아주기도 하고, 비눗방울을 일부러 아이 쪽으로 날려 보내주기도 한다. 흙장난을 함께 하고, "이게 뭐야?"하고 묻는 물음에 성심성의껏 대답해준다. 쫒아오는 아이를 위해 일부러 킥보드를 천천히 타고 가며 뒤를 돌아보아 주고,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며, 사탕을 가져와 나에게 아이가 사탕을 먹을 수 있는지 물어본다. 아이는 이런 친절함을 잔뜩 묻혀와 나를 기분 좋게 하고, 그녀 역시 작은 풀을 꺾어 어떤 언니에게 건네면 언니는 "고마워~ 참 착한 아이구나?"하고 인사를 한다. 꽃도 아니고 그냥 풀인데 고맙다니... 착하다니... 그들의 세계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나는 그 세계를 엿보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러다 가끔 그런 '어른'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그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나는 텐트 '그늘'에 앉아 있고, 아이는 아빠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와중에도 까르르르 웃는 내 아이의 웃음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 둘러보니 저 멀리 내 아이가 넘어갈 듯 웃고 있다. '무슨 일이지?' 하고 몸을 일으켜 나도 햇볕으로 나간다. 어떤 커플 주변으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남자분이 계속 비눗방울을 불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딸 아이 머리에 뭍은 비눗방울을 닦아 주는 건 그 옆에 여자분 이었다.) 내 아이도 그들 중에 섞여 있었는데, 까르르 웃어 보이는 건 여자분이 폴짝폴짝 뛰어주기 때문이었다. 뛰는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아이가 막 웃자, 여자분은 아이를 웃겨주기 위해 계속 뛰고 계셨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남편 옆에 가서 나도 그 모습을 행복하게 바라보았다.


아이가 비눗방울을 너무 좋아하자, 그 남자분은 직접 해보라며 비눗방울 스틱을 하나 건네 주셨다. 남편이 비눗방울을 잘 만들지 못하자 어떻게 하면 잘 만들 수 있는지 알려주시며, 비눗물이 모자라 그런 것  같다며 갖고 계신 것에서 비눗물도 나누어 주셨다. 한참을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다가오셔서는 비눗방울 스틱을 아예 그냥 주시겠다는 거였다. 내가 괜찮다며 손을 저어 웃어보이자 인터넷에서 천원 밖에 안 하는 건데 어떠냐면서 아이가 저렇게 비눗방울 하나에 행복해 하는데,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들은 즐거웠으니 되었다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어느 세계의 말인가. 내가 진짜 그 세계 안에 들어와 있는 건가? 아 분명 나무, 물, 하늘, 햇살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런 인간애를 되찾게 된 것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고는 한참을 아이와 즐거웠다. 알고 보니 그 옆에서 놀던 아이들도 그 분들의 자녀가 아니었고, 나머지 갖고 계시던 비눗방울 스틱도 다른 여자아이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그 놀이시간은 마무리가 되었다.


그런데 그러한 친절함은 전염성이 강하다. 나와 남편도 순식간에 '그러한' 어른이 된다. 비록 나도 얻은 것이지만, 비눗방울을 해보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돌아가며 비눗방울 스틱을 빌려주었다. 비눗방울을 잘 만들었다며 연신 칭찬을 해주고 그 누가 부럽지 않을 리액션을 곁들인다. 놀이가 끝난 아이에게는 손에 뭍은 비눗물을 닦으라고 물티슈를 건네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우리가 산 ‘연’도 갖고 나왔다. 남편은 연을 직접 날려보고 싶은 아이들이 연을 날려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아이들은 금세 순서를 정해 줄을 섰고, 내 아이가 아닌 모르는 아이들과 남편은 한참을 연을 날리고 놀았다. 이 얼마나 행복한 모습이고, 이 얼마나 인간적인 광경인가.


신나게 놀고 텐트로 돌아와 남편과 그 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감동받은 것은 나나 남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말이 어쩜 그렇게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하는지, 손에 받아 든 것은 천 원짜리 비눗방울 스틱이었을지 몰라도 마음에 받아 둔 것은 그 값을 매기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저 남자분은 대체 얼마나 많은 나무와 물과 하늘과 햇살을 보았으면 저러 말을 건 낼 수 있게 된 걸까. 나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나무와 물과 하늘과 햇살을 보아야 저런 말을 건 낼 수 있게 될까. 내가 이런 친절함을 받아도 되는 걸까? 내 아이의 웃음에 즐거웠던 건 그 분들이라는데, 사실 내 아이를 웃음 짓게 해준 것도 그 분들이 아니던가. 고맙다 못해, 내가 아이를 낳기를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말이었다. '네가 행복한 것을 보았으니 됐다' 아마도 이 말은 내가 올 해 들은 말 중에 가장 따뜻한 말이 되지 않을까...


마스크를 끼고서라도 공원에 나가길 잘했다. 바깥놀이의 고단함도 잊고, 그 말 한마디에 나와 남편은 완충되어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이 말을 꼭 글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햇살 좋은 날 또 공원에 나가야겠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좋은 사람이 될 것만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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