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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Jul 11. 2020

3살까지의 효도

"아이는 태어나서 3년 동안 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

"아이는 태어나서 3년 동안 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는 말이 있다.

3살까지가 제일 예쁘다는 말 일수도 있고, 3살 이후로는 자아가 강해져 소위 말하는 '떼'가 느는 것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이렇게 해석했다. "아이에게 효도라는 것을 기대하지 마시오!"

생각해보라 3살까지 하는 효도라는 게 무엇이겠는가? 자식 된 입장에서 효도가 플러스이고, 불효가 마이너스라면 30년 넘게 엄마 아빠의 딸로 살고 있는 나조차 아직도 마이너스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은 것은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부모 입장으로 오면 또 달라진다. 내 아이를 돌이켜보면 그 아이는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을 웃음 짓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것도 '효도'라고 말 할 수 있다면 아니, 그러고 보니 그것만한 효도가 없는 것 같은데??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어른이 되면 굉장히 하기 어려운 효도가 아니던가. 어른이 아니라 중학생부터도 무척 드물어지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평생 할 효도를 그런 존재일 때 다 한다는 그 말이 굉장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내 아이는 20개월. 나도 3년 이후로는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으므로

그 후의 효도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치자.


얼마 전 나의 할머니는 (내 아이에게는 증조할머니) 발목이 부러져 수술을 하셨다.

수술 후 입원기간을 거쳐 이제는 집에서 지내고 계시는데,

거동이 어려워 엄마와 고모가 격일로 번갈아가며 할머니를 돌봐드리고 계신다.

엄마가 할머니 댁에 가는 날, 나도 병문안 겸 딸아이와 함께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그리고 도착과 동시에 아이는 그 '효도'라는 것을 시작한다.

웃을 일이 없는 시공간에 웃음을 뿌리고 다니는 이 존재는,

등장과 함께 엄마(아이에게는 할머니)에게 안기어

"할머니~"라고 말하는 것으로 엔돌핀을 가득 충전해 드린다.

엄마는 10kg의 아이를 안고도 발걸음이 가볍고, 보는 것만으로 배가 불러 웃음이 나온다.

기운 없이 누워 계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를 일으켜 세우는 것도 아이다.

아이의 등장으로 집 안은 형광등을 켠 듯 밝아지고,

아이의 말 한마디에 어른들은 열 마디 말을 보태며 즐겁다.

집 안을 뽈뽈 거리며 돌아다니는 아이를 보며 뭐 대단히 재미있는 구경이라도 난 듯 즐겁고,

아이가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과자를 받아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른들은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이것은 30대의 손녀(그리고 딸)는 해드릴 수 없는 종류의 효도이다.


심지어 우리는 가서 하는 것도 없이 점심밥에 저녁밥까지 얻어만 먹었는데,

감사 인사를 받는 건 도리어 우리 쪽이었다.

지루하고 힘든 시간이 아이 덕분에 빠르게 흘러갔다는 말,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 즐거웠다는 말,

아이를 데리고 먼 길 와주어 고맙다는 말들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이 덕분에 이런 감사 인사를 참 많이도 들어왔다.

내 아이가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는 공원에 어느 아저씨.

오랜만에 내 아이를 만나 행복했다는 카페 사장님 등등.

나는 아이와 함께 갔을 뿐인데, 이런 말들을 얻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것이야 말로 '이중효도'다.

그 어른들에게도, 그리고 (감사인사를 받는) 나에게도

이중으로 효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나는 아이에게 '효도'를 바라지 않아야 한다는 주의의 사람이다.

그것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에게 이보다 부담인 것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 아이는 나에게 계속해서 '효도'를 하고 있었다.

아이 덕분에 나는 그런 감격적인 말들을 듣는다. 그것도 자주, 많이.

늘 아프고 고생스럽고 힘들다고 생각했던 '육아'였는데,

나는 아이 덕분에 많이 웃었다.

평생에 느껴보지 못한 '다른' 종류의 사랑과 기쁨, 즐거움을 아이 덕분에 느끼고 있다.

오늘도 아이가 킥보드를 혼자 타는 것에 감격하고 말았다.

그것은 나의 성취가 아닌 아이의 성취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게 뭐라고 설레고 뿌듯하다.

내 아이는 지금 평생의 효도를 부지런히 하고 있다.

16개월 남았다. 앗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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