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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Jan 09. 2024

주간 새미일기

2024.01.01(월)~2024.01.04(목)

2024.01.01 (월)

어제 교회에서 '2023년 올해의 키워드'를 작성해 보라고 하셔서 적어보았다. 올해의 사람, 올해의 도전, 올해의 단어, 올해의 후회 등등을 적어보면서 한 해를 돌아보는데 가장 많이 떠오르는 건 여름이였다. 올해 부쩍 말이 많이 는 네가 처음으로 뱉은 무수히 많은 말들이 나의 '올해의 단어'가 되었고, 울고불고 오지게 떼써서 나를 힘들게 했던 네가 '올해의 후회'가 되기도 했다. 단연코 나에게 '올해의 사람'이 있다면 여름이 네가 아니었을까. 아이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한다는 건 참 짧은 시간에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하고 많은 감정들을 겪게 하는 것 같다. 1년 사이에도 아이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처럼 시시각각 변하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올해 7살이 된 (만 5살) 첫째만 해도 엄청난 변화들이 느껴질 만큼 크지는 않는 것 같다. 아니, 많이 컸는데 둘째에 비해서 그 변화가 크지 않아서 내가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 그만큼 둘째의 성장은 크고 빨랐다. 너의 그 순간들 사이사이에 구석구석 빠짐없이 내가 함께 했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의미였던 한 해였다. 올 한 해는 나에게 내내 여름이었다.


박물관에 도착했는데 잠든 여름이

2024.01.02 (화)

오늘은 아이들이 방학이라 둘 다 등원을 하지 않는 날이다. 아이들과 무얼 하며 하루를 보내야 하나 고민하다가, 여름이가 좋아할 것 같아 매번 가봐야지 하고 벼르고 있던 국립항공박물관을 가보기로 했다. 아이 둘 데리고 밖에서 끼니까지 해결할 자신은 없어서 오전에 일찍 갔다가 집에 돌아와서 점심을 먹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10시 오픈 시간에 맞춰 가려고 분주하게 준비를 하는데, 여름이가 나를 쫓아다니면서 안으라 난리다. 그냥 좀 조르는 정도가 아니라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울며 불며 안고 있으라는 아이를 잠깐 안아주었다가 첫째 머리 묶어주느라 내려놓고, 또 안아 올렸다가 옷을 입혀주느라 잠깐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억지로 억지로 애 둘은 준비를 시켰는데 내가 세수도 못했다. 내가 세수하고 뭐라도 찍어 바를 동안 기다려줄 둘째가 아니다. 욕실까지 쫓아 들어와서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빨리 안아~ 빨리 안아~” 오열을 한다. 이런 식이면 준비가 안될 것 같아서 아이를 욕실밖으로 나앉히고 문을 잠갔다. 아이는 문을 두드리며 목청껏 울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를 뒤로하고 세수를 하는데 문득 자괴감이 들기 시작한다. 나는 너 좋으라고 그 박물관에 데려가려는 건데 이렇게 너를 울려가며 준비하는 이 상황이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맞나.... 내가 뭐 하는 거지 이게....‘ 싶은 생각도 잠시, 얼른 준비를 마치고 나가 아이를 안아 올렸다. 아이는 차에 타서야 진정이 되었다. 그 시각이 10시. 준비시간은 우는 아이덕에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30분가량 운전을 해서 가야 하는 곳이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진짜 비행기들을 보면 아이가 얼마나 신나 할까 내가 다 기대가 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박물관에 도착해서 아이는 차에서 내려주려는데, 읭??? 잔다고???? 둘째가 곤히 자고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잠깐만!! 너 때문에 왔는데 네가 자면 어떡해!!! 누나는 유치원에서 와본 적 있는 박물관이란 말이야....ㅠ 너 때문에 누나까지 한 번 더 데리고 온 건데....ㅠㅠㅠㅠ 자다니... 자다니...ㅠ 얼른 구경하고 집에 가서 점심 먹어야 하는데 자다니...ㅠㅠㅠㅎ 어쩔 수 없이 유아차에 태우고 박물관에 들어갔다. 심지어 중간에 한 번씩 깨워보기까지 했는데 아이는 깊이 잠이 들었는지 미동도 없다. 아... 그래서 준비할 때 그렇게 울었구나... 졸려서 그렇게 안으라고 난리였구나... 근데 왜 이렇게 일찍 졸린 거니...ㅠㅠㅠ 타이밍 무슨 일이야....ㅠㅠㅠㅠ 어쩔 수 없이 첫째 하고만 오븟이 박물관을 구경했다. 둘째는 진짜 이렇게 잠만 자다가 집에 돌아가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내가 어찌할 방도는 없었다. 그 사이 첫째는 새로 산 인형을 잃어버려, 전시관을 다시 거꾸로 돌아다니며 찾아다니는 소동까지 있었으나 둘째는 그 와중에도 꿈속을 헤매었다. 그래도 다행히 1시간쯤 푹 잔 뒤에 둘째가 일어났다. 박물관은 3층까지 있었는데 3층을 관람을 하던 중 둘째가 일어나, 우리는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두 번째 관람을 하고, (인형 찾아 돌아다닌 것까지 하면 박물관을 얼마나 여러 번 돌아다녔나 모르겠다.) 옥상 전망대까지 야무지게 구경하고서 뿌듯한 마음으로 박물관을 나섰다. 방학. 그래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다 ㅋㅋㅋㅋ


2024.01.03 (수)

오늘은 가을이와 둘이서 지하철을 타고 수원에 가보기로 했다. (우리 집은 부천이다.) 가을이가 어릴 적 수원에 살 때 제 집 드나들듯이 가던 북카페를 오랜만에 같이 가보려고 한 것이다. 출발 직전에 비가 내리길래 차를 타고 갈까 잠시 고민을 하긴 했지만, 원래 계획대로 지하철을 타고 가보기로 했다. 지하철로만 1시간 반이나 걸리는 데다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나름 장거리 여행이었다. 그래도 지하철 인심은 생각보다 훨씬 따뜻했다. 매번 열차를 탈 때마다 아이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시는 분들이 계셨다. 지하철을 매일 타던 대학시절과 직장인 시절 젊은 나는 양보를 받을 일이 없었지만, 아이와 함께 타니 나보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른 분들이 계속 양보를 해주셔서 머쓱하면서도 감사했다. 사실 여름이가 태어난 뒤로는 가을이와 단둘이 어딘가를 갈 일이 잘 없었을뿐더러 가을이의 손을 잡고 걷는 일은 드물었다. 늘 아무 대로나 가버리는 여름이를 붙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하철을 타고 가니 가을이를 하루종일 붙잡고 있었다. 특히 갈아타야 하는 역에서는 사람이 많고 붐비는 터라 아이를 잃을까 손을 꼭 붙잡고 이동을 했다. 그렇게 긴 시간 지하철 여행을 한 것은 나에게도 왠지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아이와 그렇게 길게 지하철을 탄 것이 처음일뿐더러, 둘이서만 오랜 시간 색다른 곳에서 색다른 일을 해보았다는 것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오래만이다. 가을이와의 둘만의 추억. 여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늘 가을이와 단둘만의 추억이 일상이었는데 말이다. 지하철 탄 게 별일은 아닌데, 왠지는 모르게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2024.01.04 (목)

둘째는 화요일부터 등원을 했는데, 첫째는 이번주가 방학이다. 나는 P이지만, 그녀의 방학 동안 무얼 할지 대충의 계획을 세워두었다. 나는 계획 세우는 걸 싫어하는데, 그런 내가 계획을 세웠다는 것은 내가 퍽 신경을 썼다는 얘기다. 오늘의 계획은 동네 있는 아이들을 위한 북카페에서 하는 일일수업을 신청해 듣는 것이었다. 아침부터 아이에게 그 카페에서 하는 여러 가지 수업 사진을 보여주었다. 한글 책수업, 영어 책수업, 만들기 수업이 있었는데 아이는 만들기 수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내심 북카페니까 책수업을 하길 바랐지만, 아이가 만들기 수업을 하고 싶다고 하니 (내 딴에는) 양보를 했다. 그 때문에 아이는 아침부터 신이 나있었다. 북카페 인스타그램에 나와있는 만들기 수업 샘플사진을 아빠에게 보여주며 자기 오늘 이거 만들러 갈 거라고 자랑도 하고 그랬다. 동생도 등원시키고 첫째와 둘이 앉아 그 수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엄마 없이 혼자 들어가서 하는 수업이라는 말에 아이는 표정이 굳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엄마가 어디 다른데 있다가 오는 것도 아니고 같은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고, 수업만 카페 안에 있는 교실에서 한다고 설명을 해줘도 아이는 눈물까지 글썽이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렇게 기대하고 설레어하던 만들기 수업을 엄마 없이 혼자 들어가기가 싫어서 안 하고 싶다는 아이가 나는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적응을 힘들어하던 낯 많이 가리는 아이였으면 또 모르겠는데, 그런 것도 아니고 놀이터나 키즈카페를 가도 혼자 새 친구를 사귀어서 잘 노는 아이다. 그런 애가 갑자기 이 무슨... 당장 2시간 뒤의 수업을 이제와 가지 않겠다니, 나의 야심 찬 (하지만 한없이 연약했던) 한 가지의 계획이 무참히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그 당황스러움은 금세 짜증으로 변했다. "아니 7살(만 5살)이나 돼가지고 엄마 없이는 싫어서 안 하겠다니! 엄마가 같은 북카페 안에서 기다린다니까??! 유치원도 엄마 없이 하루종일 가있잖아! 친구들은 태권도나 피아노학원도 다 혼자 가는데! 아깐 엄청 하고 싶어 했잖아!" 친구들과의 비교는 나 스스로 말을 뱉으면서도 후회했지만 이미 뱉은 뒤였다. 아이는 방에 들어가 침대에 엎드려 울음을 터트렸고, 나는 안방에 들어와 책을 펼쳤다. "그럼 오늘 하루종일 집에 있던가!" 하는 심술까지 부리고 들어온 뒤였다. 나도 내 딴에는 지 방학을 재밌게 보내게 해 주려고 애를 쓰는데, 너무하다 싶었다. 그런데 내가 펼친 책에 바로 이런 구절이 나오는 게 아닌가 "세심하게 보살핌을 받고 사랑으로 길러진 사람일수록 궁핍해도 명랑함을 잃지 않고 역경에 강하며, 더 힘든 고난도 잘 견디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 사람의 가슴속엔 행복과 만족과 평온의 원천이 있기 때문이었다." 에이씨...ㅎ 책을 덮고 아이를 달래주러 갔다.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 옆에 누워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는 가을이가 좋아할 것 같아서 가자고 한 거였는데 가을이가 안 간다고 하니 속상해서 그랬다고, 그래도 그렇게 말한 건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해도 된다고 말하면서 웬일인지 나도 좀 울었다. 아이는 자기도 미안하다고 그런데 그 수업은 안 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괜찮다고 그냥 그 북카페 구경이나 가보자고 했더니 아이도 좋다고 그랬다. 아이가 맘에 드는 옷을 입고, 킥보드도 타고 가고 싶다고 해서 킥보드도 꺼내 타고 우리는 그 북카페로 향했다. (처음 가보는 거였다.) 도착해서는 각자 맘에 드는 음료도 시키고, 아이가 골라온 책도 읽어주고, 색칠하기 놀이도 했다. 원래 신청하려고 했던 만들기 수업 10분 전, 카페 안에 있는 교실에서 다른 수업이 끝난 아이들이 우르르 나왔다. 나는 그 교실을 가리키며 저기서 하는 건데 수업을 들어보겠냐고 했더니 좋단다. 다행히 아직 자리가 남아있어 바로 신청을 했고, 10분 뒤 아이는 전혀 거리낌이나 망설임도 없이 선생님의 부름에 냉큼 교실로 들어갔다. 그래, 이럴걸 아까는 왜 그렇게 싫다고 했는지... 뭐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아이는 만들기 수업을 무척 즐거워했고, 그날 만든 작품을 하루종일 보물처럼 들고 다니며 가지고 놀았다. 그리고 그 후에도 우리는 둘이서 오븟한 데이트를 한참이나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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