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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Jan 06. 2024

주간 새미일기

2023.12.25(월)~2023.12.30(토)

2023.12.25 (월)

가을이가 종이에 무언갈 끄적이며 놀자, 여름이가 갑자기 자기도 종이를 달란다. 그래서 수첩을 꺼내 주었더니  날더러 “떠블유가 뭐지?”라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알파벳 W를 써주었다. 그러자 바로 “꺼꾸루!” 하길래 W를 뒤집은 모양인 알파벳 M을 써주었다. 그런 다음엔 왼손을 구부려 보이며 “이건 뭐지? 하길래 알파벳 C모양인 것 같아서 C를 써주었는데, 자꾸만 아니라고 하면서 구부린 손모양을 재차 보여준다. ‘아 혹시 L을 말하는 건가?’ 싶어서 알파벳 L을 써주었더니 맞단다. 정말 이렇게 4개의 알파벳을 아는 걸까? 아니면 그냥 우연의 장난이었을까? 모르겠다. 알파벳을 따로 가르쳐 준 적은 없다. 다만, 지난번에 이케아에서 사 온 알파벳 모양 쿠키를 먹으며 계속 “이건 뭐야? 이건 뭐야?‘하길래 몇 가지를 가르쳐준 적은 있었다. 설마 그때의 기억으로 맞춘 것일까? 모르긴 몰라도 신기하긴 했다.


2023.12.26 (화)

오늘은 가족과 함께 평창으로 여행을 가는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준비하고 9시 20분쯤 차를 타고 출발을 했다. 오전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아이들은 잠을 자지 않았다. 한참을 가자 여름이가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목 뒷덜미가 간지럽다는 둥, 벨트가 답답하다는 둥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울기 시작했다. 얼마 후 자동차 충전을 위해 휴게소를 들려야 했으므로, 나는 아이패드로 만화를 보여주며 아이의 울음을 모면해 보았다. 휴게소에 도착해 화장실도 가고 만쥬도 사 먹으며 차가 충전되기를 기다렸다가 충전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여름이가 잠이 오지 않자, 본격적으로 떼를 쓰기 시작했다. 카시트가 답답하다고 벨트를 풀고 나오고 싶다고 엉엉 울었다. 엉엉 울어도 어쩌겠는가 달리는 차 안에서 아이를 카시트에서 내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자, (일부러 대꾸도 안 하고 무시했었다.) 아이는 소리를 지르고 발길질을 하며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반응을 해주지 않았다. ’ 10여분 정도 저러다 말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10분... 20분... 이 지나도 여름이는 울음을 그칠 생각을 하지 않고 점점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30분 정도 되자 나도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어 뒤돌아 여름이를 설득도 해보고 뒷좌석으로 옮겨 앉아 아이를 달래주기도 했으나, 여름이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이쯤 되자 만화고 뭐고 아무것도 통하지 않았다. 여름이는 카시트에서 내릴 때까지 그렇게 울 작정이었던 것이다. 정말 그랬다. 숙소 도착까지 1시간 동안 정말 악을 쓰면서 울었다. 덕분에 졸려하던 가을이도 한숨도 자지 못했다. 아이가 악을 쓰며 우는 걸 1시간 동안 듣고 있으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내가 왜 얘를 낳아서 이 난리통을 겪고 있는 것인지 후회가 밀려들기도 하고, 화가 났다가 애가 안쓰럽다가 짜증이 났다가를 반복하게 된다. 어이가 없는 건 숙소에 도착하고 카시트에서 내리자마자 여름이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는 데 있다. 마치 아까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내린 것처럼 아이는 도착한 여행지에 무척이나 설레고 신나 했다. 나는 결국 두통약을 먹었고, 남편은 저렇게 우는 체력과 끈기가 대단하다며 뭐라도 되겠다고 말도 안 되는 긍정마인드를 보였다. 뭐라도 되든지 말든지 난 나만 안 힘들게 하면 되는데 말이지... 와 진짜 내 아들이지만 다시 한번 두 손 두 발 다 들었던 시간이었다. 집에 돌아갈 때는 꼭 낮잠 잘 시간대에 가야겠다고 다짐한다.


2023.12.27 (수)

오늘은 리조트 스키장 옆에 있는 썰매장에 가서 본격적으로 썰매를 타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 내가 기대하고 걱정하는 바가 있다면 여름이가 장갑을 낄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지난주 일기에도 썼다시피 여름이는 한파에도 장갑과 모자를 거부하던 아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장갑을 끼지 않았었는데, 과연 썰매장에서도 그 고집으로 버텨낼 것인가 하는 것이 나의 주된 관심사였다. 심지어 썰매장에서는 안전상의 이유로 유아들에게는 헬멧을 쓰도록 하고 있었다. 모자도 안 쓰는 앤 데 헬멧이라니... 다행히도 여름이는 개월수가 어려 비싼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되었기 망정이지, 입장료를 내라고 했으면 진심 진지하게 고민했었을 것 같다. 드디어 썰매장에 들어섰고, 튜브썰매와 헬멧을 받아 들었다. 하지만 1차시도 헬멧 거절. 그래서 일단 썰매 타는 곳으로 헬멧을 들고 올라갔다. 썰매를 타기 직전, 나는 여름이에게 헬멧을 써야만 썰매를 탈 수 있으며 헬멧을 쓰지 않으면 너 혼자 걸어내려가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고는 싫다는 애에게 억지로 헬멧을 씌우고는 썰매를 태웠다. 처음부터 무서운 코스를 태워서 그랬나 썰매를 타는 것 자체가 무서워 아이는 헬멧은 잊은 듯했다. 아니면 본인도 헬멧을 써야 안전하겠다고 생각한 걸까? 아무튼 그렇게 아이는 헬멧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 같았다. (이후로도 얌전히 헬멧을 계속 쓰고 있었다.)  손이 시리니 장갑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파에도 안 한다고 고집을 부리더니 온통 눈밭인 썰매장에 와서야 장갑도 끼고 헬멧도 쓰는구나. 추위도 무서움도 직접 몸소 겪어봐야 장갑과 헬멧의 필요성을 깨닫는 것인가. 그래 경험만 한 것이 없지. 김여름 올겨울 장갑 끼우기 최초 성공!ㅋ (헬멧 쓰기도 최초 ㅋㅋㅋ)


2023.12.28 (목)

아이들과의 여행에서는 늘 변수가 많다. 그 대표적인 변수가 '낮잠'이다. 규칙적인 시간에 자던 아이들도 여행을 가면 여행 스케줄에 따라 낮잠시간이 뜰쑥날쑥 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잘만한 시간인데도 자지 않거나, 잘 시간이 아닌데 곯아떨어지기도 한다. 오늘은 점심 식사 후에 곤돌라를 타고 산꼭대기에 올라가 설경을 구경하는 것이 유일한 계획이었는데, 딱 그 시간에 여름이가 잠이 들었다. 아이가 잠들면 모든 것이 일시정지 된다. 여행 중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일시정지가 난감할 순 있겠으나, 어른들에게도 잠시 쉬어갈 시간이 허락된다는 점에 있어서는 윈윈이다. 문제가 있다면 첫째다. 둘째는 잠들었지만 첫째는 낮잠을 자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이 첫째를 데리고 리조트 안에 있는 키즈 실내 놀이터를 가기로 했다. 덕분에 나머지 어른들은 휴식시간을 갖게 되었다. 어른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낮잠을 자기도 하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나는 책 읽기를 택했다. 너무 피곤해서 낮잠을 청하려 했지만, 지나치게 피곤하면 오히려 잠이 오지 않을 때도 있는 듯하다. 단잠을 포기하고 택한 독서였기에 기왕 읽는 거 집중해서 읽자 싶었고, 마침 이야기는 너무 흥미로웠던 터라 아이가 낮잠 자는 한 시간 반 남짓 동안 책을 끝까지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아이들과의 여행에서 챙겨 왔던 책을 다 읽었던 적이 잘 없는데, 뜻밖의 쉬는 시간 덕에 책 한 권을 다 읽어서 너무 좋았다. 잠들 못 자도 좋았다. 둘째가 잠에서 깨서 징징거리는 모습도 싫지 않았다. 잠이 덜 깬 아이를 한참이고 안고 서 있어 주었다.


2023.12.29 (금)

나는 아이들 찍은 사진을 늘 인스타그램에 기록한다. 그리고 그것을 좀 강박적으로 한다. 그날그날의 모습들, 그 주의 어린이집&유치원 생활, 특별한 일정이 있었을 때는 또 그것대로 아이들의 일상을 그리고 나의 일상을 꼼꼼히 기록하려고 애쓴다. 그런데 그런 사진 기록이 부담스러워질 때가 있는데,  그건 바로 여행을 갔을 때이다. 언제 어느 때보다 많은 양의 사진을 찍는데, 또 그 모습들이 자주 겪는 일상적인 순간들이 아니다 보니 특별할 때가 많다. 그렇다면 더더욱이 기록을 할 가치도 필요성도 높은 것인데, 문제는 여행 가서는 사진을 정리할 시간이 평소보다 더 부족하다는 데 있다. 아이 둘과 하루종일 같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가면 밤에 잘 시간을 줄여서라도 그날 찍은 사진을 추리고 추려서 인스타그램에 기록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아닌 '스토리'에 사진을 계속해서 올렸었다. ('스토리'는 24시간만 표시되었다가 사라지는 기능인데, 따로 하이라이트 기능을 사용해 스토리들을 보관을 할 수는 있다.) 처음에는 스토리에는 실시간으로 중요한 사진들만 올리고, 나중에 따로 정리해서 게시물에 기록을 해야지 싶었다. 그런데 여행이 끝날 무렵까지 나는 게시물에 따로 기록을 하지 못했다. 여행 스토리들을 하이라이트로 보관해 두긴 했지만, 어쩐지 게시물로 기록을 하지 않은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리지만 이 방대한 사진과 동영상들을 다시 하나하나 훑어보며 정리할 자신이 없다. 어찌해야 하는 것일까. 나라는 기록중독자는 게시물로 남기지 못한 여행 사진들이 자꾸만 숙제처럼 맘에 남아있다. 휴...ㅎ


2023.12.30 (토)

오랜만에 친한 동생부부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그 부부도 아이가 둘이라 아이들도 같이 놀릴 겸 자주 왕래하곤 했는데, 연말에 우리 집 이사도 있고 이래저래 두 가정 다 바쁜 일이 많아 오랜만의 회동이었다. 오래만의 만남이 반가워 그랬는지 남편이 술을 많이 마셨다. 저녁식사 후에 간단한 다과와 함께 와인을 마셨는데, 와인도 남남 편이 제일 많이 마신 데다, 집에 있던 다른 술들도 꺼내 마시기 시작하더니 결국 남아있던 위스키까지 다 꺼내 마시고는 횡설수설하기에 이르렀다. 회식자리 말고는 남편이 그렇게 취한 걸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억지로 누가 먹인 것도 아니고 본인이 스스로 잔뜩 마시고 취해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계속하는 것이 볼썽사나웠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건 볼썽사나운 축에도 못 끼는 모습이었다. 동생부부가 떠나고 나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더니 안방 바닥에 벌렁 드러눕는 것이었다. 온갖 장난감의 향현으로 집안이 엉망이라 집안 정리도 해야 하고, 먹은 것들은 많은데 정리는 하지 못해 이것저것 쌓인 부엌도 정리하고, 설거지도 하고, 애들 이 닦고 재우는 것도 해야 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결국 그 모든 걸 나 혼자 다 처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도와주지 못할 거라면 방해는 하지 말아야지. 양심도 없이 사고를 쳐놓은 남편이었다. 화장실에 토를 해놓은 것인데, 문제는 변기에다 한 것이 아니라 바닥에다 죄 토를 해놓았다는 것이었다. "여보~ 여보~ 이거 좀 치워줘요~~~"하며 징징거리는 남편을 무시하다가 나중에 들여다보았더니 남편은 이미 다시 화장실 앞 바닥에 대자로 뻗어 있었고, 화장실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토 냄새는 진동을 하는데 당장 애 둘을 데리고 그 상황을 처리해 줄 자신이 없는 데다 아이들에게 그 광경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일단은 안방 문을 닫고 나왔다. 집 정리를 마치고 아이들을 씻기고 책을 읽어주고는  두 아이를 재우면서 내내 누워서 저 토를 어떻게 치워야 하는지에 대해서 계속 고민을 했다. 잠깐 치우지 말고 그대로 아침까지 둘까도 생각했지만, 지금도 냄새가 심한데 밤새 두었다가는 며칠간 안방에 들어가기조차 꺼려질 것 같아 그만두었다. 양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코는 휴지로 틀어막고, 휴대용 빗자루와 화장실 청소용 브러시를 들고 다시 안방에 들어섰다. 바닥에 널브러진 토사물을 쓸어 담아 변기에 넣고는 물을 내리고 샤워기를 이용해 화장실바닥을 청소했다. 그 작업을 하면서 내내 생각했다. 아... 부부란 이런 것이구나 이런 못볼꼴을 그냥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볼꼴'로 만들어 줘야 하는 사이. 그런 사이에 질려하면서도 내가 이런 것까지 처리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대견했다. 나의 성숙함에 내가 감탄스러웠달까. 그런데 감탄도 잠시, 남편은 얼마 뒤 또 한 번 그렇게 화장실 바닥에 토를 했고 나는 또 고무장갑을 끼고 다시 아까와 같은 일을 반복했다. 그 이후에도 밤새 여러 번 토를 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남편은 변기에 토를 하라는 내 말을 알아 들었고 변기에 토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변기 주변을 청소해야 하긴 했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훨씬 나았다. 새벽동안 남편 뒷치닥거리를 하는 것과 동시에 잠에서 깨 우는 둘째를 두 번이나 다시 재우는 일까지 해낸 나였다. 사람이 적당히 짜증 나게 하면 화가 나는데 그게 도를 지나치면 화도 안나는 것 같다. 그냥 이 상황을 빨리 받아들이는 게 내 정신건강에 좋겠다 판단한 것일까. 아무튼 참 파란만장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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