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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Dec 25. 2023

주간 새미일기

2023.12.18(월)~2023.12.24(일)

2023.12.18 (월)

'주간 새미일기'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한 주를 빼먹었다. (내 기억으론 처음인데, 아닌가;) 그건 바로 지난주였다. 지난주에 나는 '이사'를 했다. 이사라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분주한 일이었다. 이사를 하기 전에는 이사를 준비한다고 살림을 정리하고, 이사를 한 후에는 그 집에 맞추어 또 살림을 정리해야 한다. '살림', 그야말로 한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에는 또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 세간살이들이 필요한가. 그것들을 손톱깎이 하나까지 다 끄집어내었다가 다시 다 정리해서 제자리를 찾아 집어넣는 일은 상당한 시간과 노동력을 요한다. 게다가 단순히 원래 있던 물건들을 자리를 바꿔 정리하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 에어컨이나 인터넷연결처럼 사람을 불러 설치해야 하는 일도 있고, 그 집에 맞추어 커튼이나 블라인드, 유아겸용 변기커버 등을 새로 사서 설치해야 하는 일들도 있다. 나는 심지어 같은 아파트의 다른 동으로 이사한 터라 같은 평수에 구조까지 같은 집으로 이사했음에도, 인테리어를 달리 한 집이기에 미묘하게 치수들이 달라 전 집에서 쓰던 것을 그대로 가져다 쓸 수가 없게 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 (그것은 퍽 당황스러웠다.) 문제는 집이라는 게 '생활'을 해야 하는 공간이라는데 있다. 이사를 했으니 정리할 시간을 따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사 당일부터 그 집에서 네 식구가 바로 일상생활에 돌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씻고, 잠을 자고, 등원준비를 하고, 식사를 하고... 그리고 그 생활을 하다 보면 설거지와 빨래, 청소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그 모든 것을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해 '임시적인' 정리가 선행되어야 하고, 아이들이 등원했을 시간에 비로소 이 집을 찬찬히 돌아보며 물건들의 '영구적인' 자리를 찾아주는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정리'를 좋아하는 데다 잘하는 편인데도, '이사'라는 대대적인 작업은 나에게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안겨주었다. 그래서 지난주에 일기를 못썼다는 변명을 이렇게나 장황하게 한다. 변명인지 하소연인지 모르겠지만...ㅎ


2023.12.19 (화)

'육퇴'라는 말이 있다. '육아 퇴근'의 줄임말이다. 엄마들은 아이들이 밤에 잠들고 나면 '육아 퇴근'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아이들에게서 잠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퇴근했다고 신나서 떠들면 안 된다!) 그런데 나는 요즘 '퇴근'이라는 게 없는 일상을 살고 있다. 여름이가 자꾸만 자다가 깨기 때문이다. 신생아 때부터 그렇게 잠을 안 자서 사람을 힘들게 하더니 요즘 다시 신생아 시절이 떠오르려고 하는 지경이다. 이유가 없이 깨서는 울고불고 난리다. 내가 옆에서 같이 자도 깬다...ㅠ 그나마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대상은 '어금니'다. 요즘 어금니가 나고 있던데 그것 때문에 이앓이를 하느라 깨나 싶다. 하지만 이앓이와 같은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지라도 자다가 자꾸 깨는 건 정말 사람을 너무 힘들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해해주고 싶지 않다.) 요즘 부쩍 말도 늘고, 애교도 부리고, 엉뚱한 행동을 하곤 할 때 너무너무 귀여운데 퇴근이 없으니 너무 힘들다...ㅠ 애를 낳고 키우면 '3년은 못 잔다'라고 생각하라던데, 3돌 지나면 좀 나아지길 간절히 바라본다ㅠㅠ 앞으로 7개월 남았다! 엄마 통잠 좀 자자 여름아~!!!ㅜ


2023.12.20 (수)

날이 많이 추워졌다. 하지만 그 추위에 굴하지 않는 소나무 같은 자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바로 '김여름'. 여름이는 머리에 무언가를 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고로 모자를 쓰지 않는다. 모자의 종류는 중요하지 않다. 모든 종류의 모자를 거부한다. (잠바나 후드티에 달려있는 모자도 안 쓴다.) 근데 머리는 묶어달라고 하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가끔 머리핀도 해달라고 한다.) 게다가 목도리는 물론이요, 장갑도 절대 끼지 않는다. 심지어 킥보드에 다는 장갑도 거부했다. (근데 지난번에 누나 팔찌를 차고 가서는 하루종일 차고 있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즉 여름이는 대부분의 방한용품을 싫어한다. 어른인 나도 추워서 장갑에 귀마개까지 끼고 다니는데, 여름이는 죽어도 싫단다. 사람들이 보면 뭐라 생각할까 싶을 때도 있다. 엄마는 꽁꽁 싸매고 다니면서 애는 손도 귀도 빨개져서 다니니 말이다. 근데 절대 내 탓이 아니다. 나는 늘 설득하지만, 아이가 늘 강력하게 거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여름이가 "추워~"라고 말하면 민망한 마음에 더 큰 소리로 대답한다. (지나가는 사람이 들을 수 있게) "그러게 엄마가 장갑 끼고 모자도 쓰라고 했잖아~~~" 오늘은 아침에 눈이 제법 왔다. 하원하는 길에 가을이는 연신 바닥에 조금씩 쌓인 눈을 만지고 노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 가을이 옆에서 여름이도 눈을 만져본다. 그러더니 손이 시렸나 보다. "차가워~ 차가워~"하면서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섰다. 자기도 누나처럼 눈을 더 만지고 놀고 싶은데 손이 시려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드디어 네 손으로 이 시린 겨울을 몸소 겪어보았으니, 기회다! 나는 얼른 여름이에게 물었다. "여름아, 여름이도 누나처럼 장갑낄까?". 나는 이 질문을 여름이에게 수십 번도 더 던져보았지만, 단 한 번도 여름이는 긍정의 대답을 한 적이 없었다. 말만 들어도 싫다는 듯 아이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 아니!" 재차 거절을 했더랬다. 늘 그랬다. 그런데, 눈을 만져본 여름이는 처음으로 긍정의 대답을 했다. "응!". 할렐루야다. 안타까운 건 내가 그 순간 여름이 장갑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절대 끼지 않는 장갑이니 늘 서랍 속을 벗어나지 못했다. 여름이가 "응"이라고 대답한 그 순간 장갑을 끼워줬더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설렌다. 아이는 정말 장갑을 꼈을까? 영영 모를 일이다. 대신 나는 얼른 약속을 받아내었다. "내일은 꼭 장갑 끼고 나오자? 그래서 누나처럼 눈도 만지고 그러자?" 나의 질문에 여름이는 순순히 알겠다고 했다. 내일이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2023.12.21 (목)

결국 여름이는 (어제의 약속을 잊은 채) 오늘도 장갑끼기를 거부했다. 오늘은 기온이 영하 14도까지 내려간 날이었다. 체감온도는 17.2도라 했다. 


2023.12.23 (토)

나는 올해 큰맘 먹고 로봇청소기를 샀다. 로봇청소기는 가사의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여름이가 지나치게 흥미를 보여 장난감처럼 다룰까 봐 그것이 걱정이었다. 그런데 여름이는 그런 나의 걱정을 무색하게 만드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로봇청소기를 무서워했다. 그것도 조금 무서워하는 게 아니었다. 여름이가 집에 있는 시간에 로봇청소기를 돌리면 아이는 질겁을 하며 방문을 닫고 들어가 계속 안고 있으라는 식이였다. 밤에 잘 때도 꼭 방문을 닫고 잔다. 로봇청소기가 들어올까 봐 그렇다. 어린이집 하원하고 나서나 밖에 있다가 집에 들어갈 때도 자주 묻는다. 로봇청소기가 작동하고 있는지 말이다. 로봇청소기가 작동하고 있을까 봐 걱정되는 것이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여름이는 소리에 민감한데, 로봇청소기는 말도 하고 어느 정도 소음이 있는 데다 혼자 돌아다닌다는 것 자체가 공포감을 불러오는가 보다. 그래서 나도 웬만하면 여름이가 집에 있을 때는 로봇청소기를 돌리지 않는다. 식탁의자나 발매트 등을 치워두고 돌리기 때문에, 나 혼자 집에 있을 때도 주로 외출하면서 돌려놓고 나가는 식이다. 오늘도 아이들과 다 같이 외출할 일이 있었다. 그래서 나가면서 로봇청소기를 돌리고 나가려고 집을 좀 정리하고 있었는데, 여름이가 로봇청소기를 돌리려고 치운다는 것을 눈치채고 겁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서워하는 여름이를 달래주는 것은 가을이였다. 가을이는 매트 위나 소파 위에는 로봇청소기가 오지 못한다고 여름이에게 설명을 해주며, 여름이를 데리고 소파 위로 같이 올라가 있어 주었다. 사실 나는 집안 정리와 외출준비를 동시에 하느라 여름이를 거의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내가 그렇게 분주하게 굴 동안 가을이는 여러 번 여름이에게 무섭냐고 묻고 나름대로 안심시켜 주는 듯했다. 외출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면서도 여름이는 얼른 현관문을 닫으라고 성화였다. 로봇청소기가 현관문 밖으로 쫓아 나올까 봐 그게 걱정이었던 것 같다. 그런 여름이를 아파트(우리 동)를 나서고 나서 까지 손을 잡아주며 챙겨준 것은 가을이였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 사랑스럽다. 여름이에게 의지할 가을이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중에도, 더 나중에도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사이였으면 좋겠다. 


2023.12.24 (일)

요즘은 여름이 키우는 게 힘들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떼도 늘었지만, 유독 안으라고 떼를 많이 부린다. 게다가 밤에 재우는 것도 너무 힘들고, (재우는데만 1시간 이상씩 걸리는 건 다반사다.) 자다가도 잘 깨서 운다. 그래서 늘 피곤하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에게 자꾸만 여름이에 대해 하소연을 하게 된다. 오늘도 그랬다. 오랜만에 만난 분들의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육아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여름이를 키우면서 힘든 점에 대해서 막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 한 분이 자기 아들도 그랬다며 공감을 해주셨다. 잠을 잘 안 자는 것도 그렇고, 옷도 조금만 까칠하거나 불편하면 절대 안 입는 것까지 비슷했다. 나는 격하게 공감하며 여름이도 그렇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그분이 모든 감각에 예민한 아이라서 그렇다며 그런 아이들이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나는 요즘 여러 가지 굵직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몸도 마음도 분주한데 여름이가 유독 칭얼거리고 잠을 잘 안 자는 것이 불편했다. 그래서 늘 나를 불편하고 힘들게 하는 아이에 대해 쉽게 불평하고, 때로는 조금 원망도 했었던 듯싶다. 그런데 그분의 말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예민한 감각을 타고난 그 아이는 또 얼마나 불편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청각적 시각적 촉각적 등등 여러 가지 자극들을 남들보다 더 크게 받아들이는 아이는 로봇청소기가 너무 무서울 수밖에 없었을 테고, 새로운 집과 상황들의 변화가 낯설고 힘들었을 테다. 그렇게 생각하니 유독 더 안아달라고 보채던 아이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이가 유일하게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안심이 되는 장소는 엄마품이었던 것이다. 그런 아이에게 한 번씩 짜증도 내고 화도 냈었다. 어떻게 엄마가 하루종일 널 안고 있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때로는 울고불고해도 안아주지 않고 내 할 일을 한 적도 많았다. 왜 무서운지 이해가 되지 않으니 안아달라는 게 그저 귀찮고 힘든 일이었는데, 무서울 법했겠다고 생각이 드니 좀 더 사랑으로 받아주지 않은 것이 미안하다. 그렇다고 정말 하루종일 아이를 안고 있어 줄 수도, 로봇청소기를 없애 줄 수도 없는 건 사실이다. (나는 로봇청소기를 없앨 생각이 없을뿐더러 애가 무서워한다고 다 없애줄 수는 없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차피 안아줄 거(안아줄 때까지 울고 불고 난리난리를 치기 때문에 결국은 안아주게 되어있다.) '네가 무서웠겠구나'하며 좀 더 이해하는 마음으로, 그래서 좀 더 기꺼운 마음으로 안아줘야지 싶다. 지금까지로는 여름이가 가을이보다 키우기 힘든 타입인 것은 맞다. 여름이가 가을이보다 예민한 아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민하던 그렇지 않던, 두 아이 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그리고 나는 부모로서 두 아이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해야 한다. 쉽진 않지만 더 노력을 해야 한다. 여름이를 이해할 수 없었던 건지, 이해해주고 싶지 않았던 건지 내 마음을 돌아보게 되는 날이다. 사실 이해하려고 들면 이해 못 할 것도 별로 없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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