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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Dec 11. 2023

주간 새미일기

2023.12.04(월)~2023.12.09(토)

2023.12.04 (월)

여름이와 가을이가 연속으로 열감기를 앓고 지나가고 둘 다 정상등원을 하기 시작하자 곧바로 나의 컨디션이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애 둘 간호로 무리했던 몸이 그 긴장의 끈을 놓자마자 나에게도 감기가 찾아왔다. 하... 꼭 그랬어야만 했나... 누가 나한테 감기를 주고 간 것도 아닌데, 알 수 없는 대상에게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생리까지 시작됐다. 하... 이번주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 주 이사 준비로 이래저래 몸도 마음도 바쁜데... 에너지가 있어도 모자랄 판에 자꾸 맘 몸도 맘도 가라앉는다. 하도 신경을 썼더니 이젠 소화도 되지 않는다. 후... 자꾸만 크게 숨을 몰아쉬게 된다. 이러면 안 되는데... 큰일이다...


2023.11.05 (화)

열감기를 앓고 난 뒤 여름이는 다시 안아병이 도졌다. 지나치게 계속 안아달라고 보채고, 바로 안아주지 않거나 해달라는 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눈물콧물을 쏟으며 오열오열을 했다. 내가 컨디션이 좋아도 열받을 행태였다. 거기다 내가 컨디션이 바닥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콧물을 하도 훌쩍여 머리가 띵하고 몸살기운에 온몸이 아프고 소화는 안되고, 생리통으로 배랑 허리가 쑤셨다. 이런 내가 아침 등원 준비를 하며 가을이 머리를 묶어주고 있는데 여름이가 생떼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도 달라는 음료도 타주고, 잠깐 안아주기도 하고 몇 번 받아주었는데 여름이는 계속 자기를 안고 있으라는 거였다. 안된다고 누나 머리 묶어주는 중이라고 말해도, 안된다는 말을 내뱉기 무섭게 아이는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TV로 좋아하는 만화도 틀어주었지만 그마저도 날더러 자기 옆에 앉아서 같이 보라는 식이다. 내가 다시 자리로 돌아와 가을이 머리를 묶어주자 TV 안 본다며 다시 쫓아와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운다. 미칠 노릇이다. 결국 나도 이성의 끈을 놓고 말았다. "대체 어쩌라는 거야!!!! 날더러 어쩌라고!!!! 어떻게 내가 너만 안고 있어!!!! 대체 왜 그래 왜!!!! 말이 되는 떼를 써야지!!!! 왜 그렇게 사람을 힘들게 해!!!!!" 등등... 사실 뭐라고 말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정말 미친 사람처럼 여름이를 붙잡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그런 내 모습을 내가 보기에도 '미쳤구나' 싶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럴수록 아이는 더 큰 소리로 울면서 더 나에게 매달렸다. 그런 아이를 뿌리치며 가을이 머리를 묶어주었다. 어떻게 나머지 준비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정신이 돌아온 것은 둘째를 등원시킨 뒤, 첫째를 유치원에 들여보내면서였던 것 같다. 가을이가 의외의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유치원 앞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나를 붙잡고 내 뒤에 숨으면서 엄마랑 같이 있고 싶다고 유치원에 들어가기 싫다는 듯 울먹거리는 소리를 했기 때문이다. 유치원 처음 적응할 때도 그런 적이 없는 아이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나처럼 선생님도 당황스러워하셨다. 가을이를 꼭 안아주며 "엄마가 좀 일찍 데리러 올까?"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어디 아프면 선생님께 꼭 말씀드리라고 한마디 덧붙인 뒤 유치원 문을 나서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갑자기 애가 왜 그러나 했더니, 내가 아침에 소리소리를 지른 것에 아이가 무서웠구나 싶었다. 그래 내가 나를 보아도 미친 사람 같았는데... 너는 또 그런 내 모습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제야 아이 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육아는 정말 나의 바닥이 어디까지인지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작업인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이렇게 나의 바닥을 보았고, 그 바닥을 아이들에게도 내보인 것에 또 한차례 자괴감이 밀려왔다. 가방 메고 걸어만 다녀도, 말 몇 마디만 해도 귀여워 죽겠는 내 아이에게 나는 왜 그렇게 못난 말들을 내뱉은 건인지... 나도 알 수가 없다. 육아가 그만큼 힘든 일인 거라고 애써 나를 위로한다. 아침의 그 일 덕분에, 나는 첫째를 좀 일찍 하원시켜 슈크림 붕어빵을 사주었고 저녁 내내 아이들에게 싫은 소리 없이 놀아주었다. 그렇게라도 오늘의 아침은 만회하고 싶었나 보다.


2023.12.06 (수)

나는 피곤하면 입안에 구내염이 나거나 입술에 포진이 나곤 한다. 입술 포진은 별로 아프진 않지만 겉보기에 좀 흉하다. 초반에 약을 안 바르고 건들게 되면 빠르게 번지는데, (나도 이런 적은 처음이지만) 이번엔 포진이 코에 번졌다. 자면서 잠결에 내가 윗입술이랑 코를 같이 막 건드린 모양이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코에까지 빨갛게 포진이 생겨 진물이 나고 있었다. 몸이 고단했다는 것을 이렇게 눈으로 다시 한번 확인을 하고 나니, 더없이 기운이 쪽 빠졌다. 이사하는데 뭐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고, 아이들도 컨디션이 괜찮아졌고, 언제든 달려와 도와주는 친정엄마와 동생도 있는데 나는 뭐가 이렇게 힘들어서 이 꼴인가 싶은 게 나 자신이 미워졌다. 감기야 원래 기본 일주일은 가는 병이고, 생리도 때가 되면 끝날 일인데 몸이 영영 회복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입맛도 없어서 대충 때우니 면역력도 바닥을 친 것 같고, 운동도 계속 못 가다 보니 온몸에 근육이 쭉쭉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어디 큰 병이라도 난 사람처럼 삶의 의욕이 없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는 것도, 일기를 쓰는 것도 다 손을 놓았다. 내가 왜 이러지 싶다. 


2023.12.07 (목)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생리도 끝나가고 조금 기운을 차린김에 오늘은 꼭 운동을 가야겠다 싶어 아이들 등원준비를 하면서 나도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운동을 하고 나니 오히려 더 기운이 좀 나는 기분이었다. 아프다고 집에만 누워 있었더니 더 더 가라앉기만 하는 것 같았는데, 나와서 바람도 쐬고 운동도 하니 한결 기분이 좋고 뿌듯하다. 운동의 순기능을 이렇게 체감하는 내가 되다니! 운동이랑은 담을 쌓고 살아온 지난날의 나로서는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얼마 전 '근테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죽기 전에 생에 의료비의 1/3을 사용하는데, 이를 역산해서 계산해 보니 근육 1kg의 가치가 약 '1300만 원'이더라는 얘기였다. 즉, 근육을 쌓는 것이 노후를 위한 엄청난 재테크라는 얘기다. 나이가 들수록 느끼는 것이지만, '운동'은 날씬한 몸매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젠 정말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된 것 같다. 


2023.12.08 (금)

어제 기운이 좀 나서 운동을 다녀온 것이 화근이었나... 아침에 일어났는데, 온몸이 근육통이 말도 못 했다. (오랜만에 운동 갔다고 좋아했는데... 이게 뭔가...) 좀 나아진 것 같던 감기는, 다시 내 두 코를 꽉 막아 버리는 것으로 아직 건재함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내가 아픈데 애가 둘이라는 사실이었다. 어젯밤, 여름이는 좀처럼 잠들려 하지 않았다. 원래도 잠드는데 시간이 상당히 드는 스타일이라 1시간쯤 옆에 누워있는 건 다반사였지만 어제는 더 심했다. 9시 반쯤부터 재우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10시 반 11시가 넘어도 아이는 잘 생각이 없었다. 잠들었나 싶어 나오려고 일어나면 재깍 고개를 들고 "엄마 어디가?" 하는 통에 나도 울화통이 터졌다. 11시 반쯤 나는 아이들 침대를 그냥 박차고 나왔다. "몰라! 너가 혼자 자든지 말든지! 엄마는 엄마침대 가서 잘 꺼야!" 하며 방을 나서자마자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 와중에 깨지 않고 그 옆에서 자는 가을이도 신기하다.) 오열오열 하며 방에서 나온 아이는 거실 소파에서 자고 있던 아빠에게 가서 안아달라고 울고불고 난리였다. 남편은 아이를 안아주지 않았다. 이사준비로 남편도 스트레스가 상당했고, 한 번 안아주기 시작하면 좀처럼 내려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자 아이는 방방 뛰며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안방 침대에서 씩씩 거리고 있던 내가 결국 다시 거실로 나왔다. 아이를 안아주자 아이는 울음을 금방 그쳤다. 아이를 데리고 다시 아이들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랑 침대에 누워자자~"하면서 아이를 안은 채로 침대에 누웠다. 눈물 콧물 다 쏟은 아이는 금방 잠이 들었고, 나는 11시 45분쯤엔가 아이들 방을 나왔다. 그렇게 자정이 다돼서야 안방에 돌아오고서도 나는 밤새 코가 막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그래도 등원준비는 해야 한다. 이사 준비 때문에 트리도 못 꺼냈는데... 이것 참 우울한 연말이다. 우울한 하루다.


2023.12.09 (토)

오늘 저녁에 수원 살 때 자주 가던 북카페에서 함께 책모임을 하던 멤버들을 오랜만에 만나기로 했었다. 그런데 오늘도 몸이 천근만근이라 오전에 북카페 사장님께 모임에는 참석 못할 것 같다고 연락을 드렸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생각했는데, 저녁이 되자 컨디션도 조금 나아졌고 무엇보다 남편이 다녀오라고 나를 부추겨주었다. 이런 기회 아니면 또 언제 그렇게 시간 내서 가겠냐며 다녀오라고 해주는 남편 덕에, 아이 둘을 맡겨두고 나는 수원으로 차를 몰았다. 연말이라 일정들이 많아 많이들 참석하지 못했지만, 오랜만에 북카페 사장님과 나 그리고 같이 책모임을 했던 다른 한 분 그렇게 셋이 모여 앉았다. 각자 준비해 온 음식들을 내어놓고 나누어 먹으며 그간 어떻게 지내왔는지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 재미난 그림책도 읽고 앞으로의 계획도 이야기했다. 정말 오랜만에 일상에서 벗어나 (나의 일터인 집에서 벗어나)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즐거웠다. 무엇보다 그곳이 편안했다. 익숙한 곳이지만 반가운 곳. 그런 곳과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게 감사했다. 서로가 함께 아는 사람들에 대해 소식을 나누고, 각자가 읽었던 책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따뜻했다. 이사준비로 연말을 그저 분주하게만 보내고 있던 요즘 몸상태도 좋지 않아 계속 기분이 가라앉기만 했었는데, 오랜만에 사는 즐거움을 느낀 시간이었다. 수고하는 나를 위한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연말 선물로 책도 잔뜩 샀다! 사장님이 만든 파운드케이크와 모임 멤버였던 해진 님의 남편분이 키우셨다는 샤인머스켓까지 한아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캄캄하고 안개 낀 밤길 운전조차 기운 나게 하는 것이었다. 어제는 우울했지만 오늘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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