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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Jan 21. 2024

주간 새미일기

2024.01.15(월)~2024.01.21(일)

2024.01.15 (월)

치과에 스케일링을 받으러 갔다. 자리를 안내받고 앉았다. 내 뒤에서는 어느 노부부가 선생님과 진료에 대해 상담을 받고 계셨다. 치아를 어떻게 치료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는데, 할머니는 한 말씀도 안 하시고 할아버지가 주로 그동안의 치료 과정 및 자신이 아는 부분들을 차근히 설명하시길래 할아버지가 치료를 받으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옆자리에 눕는 건 할아버지가 아닌 할머니셨다. 아내가 병원이라면 그렇게 겁을 낸다며, 잘 부탁드린다는 뜻인 듯 살짝 웃어 보이시던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의자에 앉고 간호사 선생님께 안내를 받을 때에야 비로소 진료실 밖으로 발걸음을 떼셨다. 그렇다면 아까 상담받을 때도 그동안의 할머니의 치료 과정 및 현재의 상태에 대해서 할아버지가 대신 말씀해 주셨던 것이었고, 얼핏 들었을 때는 할머니가 받을 치료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공부하고 오셔서 치료 방법을 선택하는 데 있어 신중하고 싶어 하시는 모습을 보이셨다. 할머니는 나와 비슷한 시간에 치료를 마치셨는데, 치과를 나서기 전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역시 할아버지의 몫이었다. 나는 종종 저렇게 사이좋은 노부부를 보면 부럽다. 똑같이 사이가 좋아 보여도 젊은 커플들은 별로 안 부러운데 오래된 커플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든다. 애정이라는 것이 그렇다. 함께 '살다 보면' 늘 뜨겁기 힘든 (아니 따뜻하기도 힘든) 것이 애정인 것 같다. 왜냐하면 같이 살다 보면 서로의 못난 모습까지 다 들춰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관계가 '부부'다. 그런데 그런 생활을 저렇게까지 오래 한 사이라면,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시간들을 겪은 후에도 저렇게 서로가 따스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 그래서 그런 할머니 할아버지 커플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든다. 상대를 약한 면을 얕보지 않고 다정하게 감싸주는 관계. 기꺼이 상대의 일에 진심으로 함께 해주는 관계. 서로의 진짜 '보호자'가 되어주는 사이. 나와 남편도 그런 노부부가 될 수 있을까...? 글쎄... ㅎ 노력을 많이 해야 할 테다...ㅎ


2024.01.16 (화)

나는 요리에 정말 흥미가 없다. '요리'라는 행위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문제는 내가 주부라는데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밥을 해줘야 하는 사람인데 밥 하는 걸 안 좋아한다는 큰 딜레마를 안고 있다. 그래서 나는 시판 제품을 잘 사 먹는다. 그런 내가 큰맘 먹고 불고기를 재웠다. 물론 시판양념으로 재웠다. 그래도 내 딴에는 애를 썼다는 얘기다. 그런데 아이가 잘 먹지 않는다. 그랬더니 짜증이 났다. 내가 요리를 했는데 안 먹으니, 내가 요리하지 않고 사 먹였을 때와 달리 짜증이 확 났다. 남이 한걸 안 먹을 땐 별로 화가 안 났는데, 내가 한걸 안 먹으니 화가 났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 이래서 사 먹여야 하는 거구나...(가 결론이면 너무 이상한가...?ㅎㅎㅎㅎ 내가 직접 해줬는데 잘 먹으면 기쁨도 두 배 세배겠지.... 만... 하기 싫다.... 고 안 하면 안 되지... 만...)


2024.01.17 (수)

여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는 같은 반에 남자아이가 딱 2명이 있다. 그중 한 명이 여름이고 또 한 친구가 있는데 오늘은 그 친구를 집으로 초대했다. 이번이 두 번째 초대였는데, 나는 사실 좀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왜냐하면 첫 번째 초대했을 때 여름이가 (제 집이라 그런지 더 기세가 등등해서는) 친구를 막 밀치고 때리고 장난감도 잘 양보하지 않으려 하고 그랬었기 때문이다. 기껏 놀러 오라 초대해 놓고는 밀고 때리고 하니 내심 미안했었다. (게다가 여름이는 자기주장이 강한 편인데, 그 친구는 순하고 얌전한 친구라 더 그랬다.ㅠ) 그런데 그런 나의 걱정과는 무색하게 여름이가 친구와 너무 사이좋게 잘 노는 것이었다. 친구 이름을 부르며 졸졸 쫓아다니고, 장난감도 함께 나누고, 간식도 챙겨주며 노는 모습에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그새 또 컸구나 싶었다. 심지어 밤 9시까지 놀고 친구가 집에 가려는데 입술을 삐죽이며 나한테 안기면서 "아쉬워ㅠ"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아쉽다는 말을 아는 것에서 한 번 놀라고, 친구가 가는 것을 이렇게 아쉬워한다는 것에 또 놀랐다. (여름이는 친구보다 자동차를 더 좋아하는 아이라 생각했는데...ㅎㅎㅎㅎ)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요즘에는 여름이가 친구들이랑 엄청 사이좋게 잘 논다고 하셨다. 원래 어린이집에서도 종종 친구들을 밀고 때리고 해서 약간 걱정이었는데 참 다행이다^^ 앞으로도 친구들과 더 사이좋게 그리고 재밌게 놀자 여름아~^^ 


2024.01.18 (목)

요즘 짬짬이 읽고 있는 책이 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는 책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는 이야기는 그 유명한 '스크루지 영감'이 나오는 이야기다.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고 어릴 적 그 이야기로 만든 애니메이션도 여러 번 봤었었다. 그런데 어릴 땐 그저 '아 착하게 살아야지'하는 정도의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내가 다 커서 이 이야기를 다시 읽으니 다 알고 있는 뻔한 내용이었음에도 새롭게 다가오는 부분들이 있었다. 특히 스크루지영감과 대비되어 등장하는 가난한 가정의 모습이 마음에 많이 남았다. 책에서 그 가족을 묘사한 한 부분을 가져오자면 이렇다. "결코 특별한 거라곤 없는 가족이었다. 그들은 잘생긴 사람들도 아니고 옷을 잘 차려입은 것도 아니었다. 신발은 하나같이 방수가 되지 않는 것이었고 옷들도 허름하기 짝이 없었다. 피터는 전당포 내부라면 제 집만큼이나 훤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행복했고 감사했고 서로에 대해 만족해했으며 함께하는 시간을 즐거워했다." 나는 형광펜으로 이 구절에 밑줄을 그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가족들에 비하면 가진 것이 정말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그들처럼 행복하고, 감사하고, 가족구성원들에 대해 만족하고, 함께하는 시간을 즐거워하고 있는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가졌으니 그들보다 더 감사하고 행복하고 즐거워할 것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러지 못할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참 안타까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사실 그런 건 내가 마음만 좀 고쳐먹으면 얼마든지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나부터 조금씩 노력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족들을 위해 이전까지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요리를 하기 위해 장을 보고, 그 재료 들로 저녁을 만들고, (내가 얼마나 요리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지는 앞서 말해서 알 것이다.) 퇴근해서 서 돌아온 남편을 안아주고, 유달리 몸이 안 좋고 피곤해하는 남편을 쉬게 해 주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놀이를 함께 해주었다. 물론 내가 그렇게 한다고 갑자기 모두가 너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나만큼은 그렇지 않았던 다른 날보다 훨씬 기분이 좋고 즐거웠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 책에서도 스크루지영감에 대해 조카가 이런 말을 하는 부분이 나온다. "난 삼촌이 안 됐어, 아무리 미워하려고 해도 화가 안 나. 그분의 고약한 성미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누구겠어? 언제나 당신 자신이지." 맞다. 똑같이 가사와 육아를 해도 왜 나만 고생해야 하는지 불평하다 보면 결국 내가 괴로운 것이고, 기꺼운 마음으로 섬기면 내가 즐거운 것이다. 물론, 그렇게 잘 나가다가 여름이가 12시까지 잠을 안 자고 버티는 통에 아이에게 몇 번이나 버럭 화를 내기는 했다. 저녁시간 내내 잘 보내고 잠들기 전 아이에게 화를 낸 것은 나도 속상하지만, 나도 연습하다 보면 언젠간 그마저도 '그러려니~'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 이러나저러나 내 곁에 있는 가족들에 대해, 그리고 내가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늘 잃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이 책을 읽어야 하나 싶다. 시린 겨울 따뜻한 책을 읽어 감사하다.


2024.01.19 (금)

'크리스마스 캐럴' 이야기의 영향으로, (아직도 그 이야기의 여운이 맘 속에 남아있다.) 오늘 가족들의 선물을 샀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저렴하게 세일을 하고 있기도 했고 또 필요한 것들이기도 해서 옷과 신발들을 샀는데 내 맘대로 '선물'이라 칭하기로 했다. 그렇게 오늘 하루 내가 가족들의 산타가 되어주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선물을 사는 내마음도 마치 다시 크리스마스가 된 것처럼 신이 났다. 내 것은 하나도 사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신발과 옷가지들을 사들고 집에 돌아와서는 (크리스마스 패턴 포장지가 많이 남았기도 해서) 그 선물들을 포장까지 했다. 그렇게 하니 더 산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단한 선물은 아니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날에 깜짝 선물을 받고 좋아할 가족들을 생각하니 내가 다 설렌다. 선물은 역시 주는 사람이 더 큰 기쁨을 맛보는 것 같다. 아이들은 하원해서, 남편은 퇴근해서 내 선물을 받아볼 시간이 기대된다. 


2024.01.20 (토)

작심삼일 이라던가... 아니 나의 작심은 3일도 못 가 무너졌다. '크리스마스 캐럴'이야기를 읽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건만 이틀은 그럭저럭 착하게 잘 살았는데... 3일째 아침, 그러니까 오늘 아침 나는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이번주 내내 내가 아이들을 재우느라 고생했고 (둘째가 재우는데 1시간 넘게 걸리는 건 물론이요 심지어 12시 넘어서 잔 날도 있었다.) 남편은 회의다 회의식이다 이래저래 바빴기 때문에 오늘 아침 나에게 늦잠을 잘 수 있도록 배려해 주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늦잠은 무슨, 아침 댓바람부터 무슨 되지도 않는 만화주제곡을 거실 블루투스 스피커로 요란하게 틀어놓고는 본인이 더 요란하게 만화주제곡을 집안이 떠나가라 불러대는 것이었다. 아니 늦잠을 자게 해 주겠다고 했으면, 애들이 떠드는 거야 애들이니까 어쩔 수 없다 치고 (하다못해 안방 문이라도 좀 닫아주던가) 왜 본인이 더 나서서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난리냔 말이다. 너무너무 피곤해서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은 마음에 한참을 참고 듣고 있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화가 솟구치는 것을 나는 막지 못했다. 결국 거실로 나가 남편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이기적인 인간아!!! 늦잠을 자게 해 주겠다고 했으면 좀 조용히 하려는 노력이라도 보여야지!! 이게 일어나라고 시위하는 거지!! 자라고 배려하는 거냐!!!!!"를 비롯해 뭐라고 했는지는 잘 생각 안 나지만 아무튼 저런 맥락의 이야기들로 한참을 윽박을 질렀다. 아... 착하게 살기란 정말 힘든 것이구나... 요 며칠 내가 그렇게 친절을 베풀고 배려와 배려를 거듭해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이에 하고 싶은 잔소리도 20392403번은 참고 그랬는데) 그 배려에 대한 보답이 고작 이것이라는 것에 나는 분노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풀어야 하지만, 나는 아직 그 정도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나 보다. 물론 오전이 지나기 전, 나는 화를 낸 것에 대해 사과를 했고 남편과 화해도 했다. 그런데 어쩐지 하루종일 좀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나 보다. (남편도 맡은 일 때문에 예민해져 있었다.) 역시 '지랄 총량의 법칙'은 여전히 유요한가보다. 일주일치 지랄의 양을 다 쓰지 못하고 괜히 착한척 했다가 주말 시작부터 그야말로 지랄지랄을 했다... 난 언제쯤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2024.01.21 (일)

말이 늘고 있는 둘째가 오늘도 새로운 말을 했다.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둘째가 자꾸만 날더러 자기 방에 가자고 한다. 아침 좀 먹고 가겠데도 내 손을 잡고 끌며 막무가내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아이 손에 이끌려 방에 들어가자 앉으란다. 자기가 갖고 있는 주차타워 장난감을 가지고 같이 놀자는 것이다. 그러더니 날더러 이렇게 말했다. "나랑 함께하자!" 나랑 함께하자. 이 얼마나 교과서적인 표현인가. 일상생활에서 정말 잘 안 쓰는 표현 아니던가. 우리는 주로 같이하자고 하지 함께하자고는 잘 안 하지 않던가? 나도 그런 말은 잘 안 쓰는데,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워왔는지 날더러 함께하잔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당장 남편에게도 말해주었다. "여보! 여름이가 뭐랬는줄 알아?ㅎ '나랑 함께하자!' 이랬어 ㅋㅋㅋ" 가을이도 쪼르르 쫓아와서는 무슨 대단한 말을 했기에 그러냐는 듯 물었다. "왜 왜? 엄마 여름이가 뭐랬는데?" "자기랑 함께하자네ㅋㅋㅋㅋ" 대단한 말일 리가 있는가. 그저 지극히 평범하고도 평범한 말이건만, 아이의 입을 통해 처음 뱉어진 (처음은 아닐지 모르나 나는 처음 들었으니까ㅎ) 말들은 왠지 모르게 특별하다. 함께하자는 말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와서 콕 박힌다. 함께하자니... 함께하자니... 그래... 함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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