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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Feb 16. 2024

새미 주간일기

2024.02.05(월)~2024.02.08(목)

2024.02.05 (월)

작년 중순부터였던가 가을이는 부쩍 글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요즘은 스스로 읽고 쓰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해진 듯하다. 하지만 아직 한글을 다 익힌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는 글자들은 혼자서 읽고 쓰지만, 아직 잘 모르는 글자들을 쓰고 싶을 땐 나에게 와서 알려달라고 한다. 커다란 종이에 한참을 열심히 그림을 멋들어지게 그린 가을이는 그 그림 안에 '제목'을 써넣고 싶었던 모양이다. 가을이가 쓰고 싶어 한 문구는 이거였다. "새콤달콤 티니핑 퍼레이드 쇼" 제법 긴 제목이라 나에게 도움을 구하기에, 다른 종이에 그 문구를 적어주었다. 그럼 가을이가 내가 쓴 문구를 보고 따라 쓰는 거였다. 글자를 잘 따라 쓰던 가을이는 마지막 글자에서 문제가 생겼다. 마지막 글자를 쓸 자리가 모자랐던 것이다. 한 줄 안에 다 쓰고 싶었는데, 마지막 한 글자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지자 아이는 울상이 되었다. 밑에 줄에 쓰거나, 그림 밖에다 쓰는 것을 제안해 보았으나 아이의 짜증만 돋우는 일이었다. 마지막 '쇼' 한 글자였다. 그래서 내가 마지막 글자가 없어도 말이 되니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했는데도 아이는 결국 울기시작했다. 색연필로 쓴 터라 지우고 다시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지우고 써보겠냐고도 해보았지만,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을 것을 안 아이는 싫다고 했다. 이럴 땐 정말 난감하다. 같은 색인 다른 종이에 다시 써서 붙여보자고도 해보았다.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방법이란 방법은 다 얘기해 보았지만 아이는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어지간히도 짜증이 났던 모양이다. 속상한 마음을 알기에 달래주려고 한참을 애써보았지만 아이는 더 크게 울고 짜증을 냈다. 결국 나도 한계점에 다다랐다. 나는 아이에게 방에 들어가서 울고 나오라고 했다. 아이는 방에 들어가서 소리를 지르며 울다가 나름대로 진정이 되어서 나왔다. 조용히 자기의 작품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가더니 어느새 그 작품을 자기 방 문에 떡하니 붙여놓았다. 나중에 가서 보니 '퍼레이드'라는 단어를 지우고 그 위에 다른 색연필로 '퍼레이드 쇼'라고 다시 써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결국 아이는 문제해결을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냥 자신의 마음을 달랠 시간이 필요했을 뿐. 그런데 나는 이번에도 계속 해결책만을 제시하다가, 나의 해결책들이 먹히지 않자 아이에게 (조용히) 화를 냈던 것이다. 아이의 짜증 섞인 울음은 정말 듣고 있기가 힘들다. 내 온 신경이 뒤틀리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나도 그저 그 울음을 멈추게 하기 위해 아등바등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 마음을 달래는 것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 또한 아이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다. 나는 그저 기다려줄 뿐. 아이를 키우면서 정말 쉬우면서도 정말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이 '기다려 주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일은 육아에서 생각보다 자주 해야 하는데, 그건 정말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다. 얼마 전 책모임에서도 그런 얘기를 했었다. 우리가 힘들 때 하나님을 찾아도 하나님이 아무 대답도 없고 아무런 개입을 하시지 않을 때가 생각보다 많다고. 그래서 우린 그것을 괴로워하고 때로는 원망하곤 하는데, 하지만 아이를 키워보니 알겠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려주는 것이 진짜 사랑일 때가 많고, 그것은 정말 정말 힘든 일이라는 걸...


2024.02.06 (화)

어제 여름이 어린이집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 친구의 엄마(라고 하니까 이상하다. 편하게 동생이라고 하고 싶은 사람이다.)인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책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 동생은 나에게 어떻게 책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물었던 것 같다. (질문의 정확한 문장은 생각나지 않는다;;) 책에 대해 나의 본질적인 관심을 이야기하려면 나의 아빠가 등장해야 한다. 사실은 내가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우리 아빠는 애서가에 다독가다. 출근해서 회사에 계실 때는 못 보지만, 집에서 내가 보는 아빠는 늘 책을 읽고 계셨었다. 심지어 함께 여행을 가서도, 아빠는 책을 읽으셨다. 아빠의 책 읽는 모습은 나에게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아마도 나는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아, 어른이 되면 저렇게 책을 읽는구나.' 어릴 땐 그게 다였다. (그 모습을 보고 어릴 때부터 책을 읽진 않았다. 아빠도 나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씀하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 차츰 나도 '어른'이라고 불리울 만한 나이가 되자, 자연스럽게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학교에서 공부하느라 보는 책 말고 정말 나 스스로 하는 '독서' 말이다. 나는 그게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빠가 그랬으니까. 아이들 보느라 우리의 대화는 짧게 끝났지만,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자꾸만 상기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여준 아빠에게 새삼 감사했다. 그냥 보여주기만 했다는 것도 감사했다. 만약 나에게 아빠가 책을 읽으라고 자주 권했거나 독서 습관을 길러주려고 노력하셨다면 아마도 나는 지금처럼 책을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책에 진절머리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책을 좋아하고 독서를 즐거워하는 그 모습은 자연스럽게 내가 정말 닮고 싶은 모습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안 해볼 수가 없게 된다.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하는 질문 말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정말 말 그대로 그냥 보여만 주는 것.) 알려주거나 가르쳐주지 않고 보여주는 것. 나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이 깊어지는 부분이다. 나도 그런 닮고 싶은 모습이 있는 부모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내가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꾸준히 하면 되는 것이다. 그냥 나는 그럼 되는 것이다.


2024.02.08 (목)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아이들 등원 준비를 하면서 나도 운동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운동복을 꺼내 입는 것을 보자, 가을이가 내가 항상 운동복 위에 걸쳐 입는 상의를 꺼내주려고 옷장을 열었다. 그런데 아이는 같은 무늬의 다른 바지와 그 옷을 헷갈렸었나 보다. 상의가 아니라 바지를 꺼내려고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그 옷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내 말을 금방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일어나서 원래 입으려던 상의를 손가락 가리키고 나서야 아이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듯했다. 바지걸이에서 반쯤 빠져나온 바지를 다시 걸어달라고 부탁했지만 아이는 제대로 다시 걸지 못했다. 감기 몸살 기운에 너무 피곤했던 나는 순간적으로 좀 짜증이 났다. 내가 해도 될 일을 아이가 건드려서 나만 일이 늘어났다 생각한 것이다. 아이는 다시 내가 입으려던 상의를 꺼내주려고 하였다. 그런데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을 냅다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카디건 형태 상의라 옷걸이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잘 입지 않는 티셔츠가 걸려있는 옷걸이 위에 걸어둔 터라 잡아당겨도 옷이 늘어날 뿐 잘 빠지지 않았다. 그 모습에 나는 순간 짜증을 내비치고 말았다. “가을아! 그렇게 하면 옷이 다 늘어나잖아! 엄마가 할게 그냥 두면 안 돼?!” 내 말에 주눅이 든 아이는 얼른 옷장 문을 닫는다. 거기다 나는 기어이 한 마디를 더 얹고 말았다. ”엄마가 그 옷 꺼내 입어야 하는데 문은 왜 닫아~너 양말이나 신어~“ 나지막한 목소리였지만 누가 들어도 짜증이 배어있는 말투였다. 아이는 조용히 양말을 집어 들고 앉았다. 하... 내가 늘 입는 운동복을 기억해 주고 날 챙겨주려 했던 아이의 다정한 마음을 알면서... 한 번만 더 참고 기다려주지... 왜 그랬을까...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의 첫 장편그림책을 사서 읽는데 이런 장면이 나왔다. 동생이 누나가 만든 그릇을 깨트려 버렸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동생에게 누나가 말한다. ”괜찮아! 어떤 것이든 언젠가는 깨지기도 하고, 잃어버리기도 하는 거야. ‘줄곧 거기에 놓여 있는’ 것보다 ‘함께 뭔가를 한‘ 것이 더 중요하잖아? “ 그래... 옷이 좀 늘어난다 하더라도 네가 나에게 옷을 직접 꺼내주도록 놔두었더라면, 나도 괜찮아! 하고 말했더라면 우리 둘 사이에 기분 좋은 추억이 하나 생겼을 텐데... 나는 결국 말 한마디로 너와의 추억을 하나 잃어버린 꼴이 되었구나... 물론 뒤돌아 나는 너에게 바로 사과를 하였지만, 꼭 네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고는 뒤늦게 밴드를 붙여주는 나란 엄마를 어쩌면 좋겠니... 영화 ‘어바웃타임’의 주인공처럼 내가 시간여행자라면 오늘 하루 중 그 아침시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구나... 그러고는 네가 옷을 꺼내주기를 기다리고, 또 고맙다며 네 볼에 뽀뽀를 해주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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