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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Feb 19. 2024

주간 새미일기

2024.02.12(월)~2024.02.16(금)

2024.02.12 (월)

여름이가 요즘 너무 예쁘다. 너무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 죽겠다. 그만 컸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다. 원래는 주말 이틀만 애들이랑 보내도 월요일이 너무 기다려지고 그랬었는데, 이번 설연휴 4일 동안 아이들이랑 있는데 힘들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름이랑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소중하고 행복했다. 사실 나에게 이런 감정은 낯설다. 여름이 키우면서 이런 생각한 적이 거의 없었는데, (아 한 번도 없었나;;ㅋ) 이번엔 왜 그랬을까? 나도 3일 차에는 의아한 마음이 들어 생각해 보았다. 음... 그러고 보니 요즘 안아달라고 조르는 일이 거의 없어진 여름이였다. 한동안 안아병이 도져서 뭐만 하면 하루종일 안아달라고 조르는 통에 너무 힘들었었는데, (어떤 날은 자려고 누우면 팔이 아파 잠이 안 오는 지경이었다.) 어느새 안아병이 잦아든 것이었다. (사실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랬다.) 그동안 나는 늘 여름이가 가을이보다 더 키우기 힘들다고 생각했었다. 둘째는 울어도 예쁘다던데, 나는 그런 생각한 적이 거의 없었다. 첫째에 비해 더 울고 떼쓰고 고집부리는 둘째가 예쁠 리 만무했다. 가을이가 워낙 순하고 무던한 아이였던 터라 (그때는 몰랐지;;) 가을이보다 여러모로 더 예민하고 고집이 센 여름이가 난 늘 힘들었다. 그래도 더 어린 아기니까 귀여워하는 건 있었지만, 가을이보다 더 예쁘다고 느낀 적도 별로 없었고 아들이라 그런가 특별히 더 기대하는 마음도 없었다. (커서도 나랑 친구처럼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딸에게는 좀 있는데 아들에게는 별로 안 생기더라;;) 정말 힘들 때는 괜히 둘째를 낳아서 이 고생을 하고 있구나, 가을이만 키웠으면 훨씬 편했을 텐데 하는 생각도 자주 했었다. 그런데 요 며칠 뜻밖에도 여름이가 그렇게 귀엽고 예쁠 수가 없었다. 어떤 순간에는 가을이보다 여름이에게 마음이 더 동하기도 하고 그랬다. 태어나 함께 한지 30개월 만에 여름이에게 가장 큰 애정을 느껴본 시기였던 것 같다. 감히 육아 황금기라 하겠다. (그동안 황금기는 없었다;;;ㅋㅋㅋㅋ) 물론 육아에는 늘 ups and downs가 있는 것이니 이 또한 지나가고 힘든 시기가 오겠지만, 지금의 이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하련다. 아이들 키우다 힘들고 버거울 때 이때를 기억하며 잘 버텨낼 수 있도록...ㅎㅎ 


2024.02.13 (화)

오늘은 뭔 바람이 불었는지 하루종일 집안일 하는 나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좀 찍어봤다. 물론 밖에 나가 장을 보고, 세탁소에 세탁물을 맡기는 일 등은 찍지 못했다. 집에서 했던 일들 중에서 순간순간 처리한 일들은 동영상을 찍지 못한 일도 많았고 (수시로 아이들 요구사항 들어주기 같은), 열심히 찍는다고 찍어도 한 절반 정도밖에 촬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찍은 동영상들만 다시 돌아봐도 하루종일 내가 정말 많은 일을 했구나 싶다. 작정하고 할라치면 끝도 없이 할 일이 늘어서는 것이 '집안일'이고, 해도 해도 끝나지 않고, 해도 해도 티나 나지 않는 일이 바로 '집안일'이다. 그런데 왜 나는 '주부'가 '집에서 논다'는 수식어가 붙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직장에 다니지 않는 전업주부라고 하면 대게 '집에서 논다'라고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내가 전업주부가 되고 보니, 그 수식어는 당최 말이 안 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집이 일터가 되어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집안일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 하는 일인지 모를 수가 없다. 나는 어제 명절에 입었던 한복을 세탁소에 맡겼다. 한복 3벌 (상의하의 총 6개)를 맡기는데 거의 4만 원 가까운 돈을 지불했다. 물론 한복은 특별히 세탁이 까다로운 옷이긴 하지만, 남의 손에 맡기니 상당한 돈을 지불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집안일 전체를 다 남의 손에 맡긴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엄청난 액수의 돈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거기다 육아까지 더하면 뭐 말할 것도 없다. 그런 노동을 내가 다 감당하고 있는데 나는 돈을 받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회가 가사노동과 육아노동을 너무 평가절하하고 있다고. 그 평가절하하는 이유는 그동안 여성이 그 노동을 '무료'로 다 대신해 주었는데, 그동안의 그 노동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사와 육아 노동의 가치를 계속 평가절하해야만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사노동이나 육아노동은 매우 가치 있는 노동 중 하나이다. 특히 육아로 가면 더욱 그렇다. 생명을 만들어 내고 키워내는 일만큼 가치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감히 말하지만, '나사'에서 우주선을 만들어 내는 일보다 가치 있는 일이라 나는 믿는다. 하지만 우주선을 만드는 사람은 돈을 많이 받지만 애를 키우는 엄마는 돈을 받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육아노동 혹은 가사노동은 돈을 생산하는 활동이 아니게 되므로 늘 사회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게 되고, 육아노동과 가사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그 일을 즐겁게 혹은 자부심을 갖고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애를 안 낳고 결혼을 안 한다.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일에 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붓는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조차 그렇다. 이렇게 집안일만 하고 애만 키우다 늙는다고 생각하면 무섭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 스스로 자위하며 버티고는 있지만 쉽지 않다. 특히, '집에서 논다'는 식의 말을 들으면 그렇게 김이 빠지고 화가 날 수가 없다. 가사노동을, 육아노동을 가치 있다 여겨주자. 그 일을 전담하는 사람을 두고 적어도 논다고 표현하지는 말자. 돈도 안 벌면서 한가하게 카페에 모여 떠드는 아줌마들이라 욕하지 말자. 그들이 하는 노동이 이 사회에서 설령 돈을 받지는 못할지언정, 돈으로 받을라치면 상당한 돈을 받아야 하는 노동을 하는 자들이다. 그들이 그 일에 쏟는 에너지와 시간과 감정을 귀하게 여겨주자. 제발 좀. 제발 좀.


2024.02.14 (수)

가을이가 유치원에서 체육활동 했던 사진이 올라왔다. 유연성 측정을 해보았다며 발 끝에 측정판을 두고 상체를 숙여 발밑으로 손을 뻗어 측정하는 사진이었다. 그런데 가을이의 손은 발끝을 넘어가지 못했다......ㅠㅠㅠ 갑자기 나의 어릴 적 유치원 체육수업시간이 생각났다. 체육시간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바닥에 손을 뻗어 엎드리는 자세를 했었는데, 내가 거의 엎드리지 못하자 선생님이 내 상체를 눌러주셨었다. 그때 너무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사실 나에게는 충격적 일정도로 그 시간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기억력이 진짜 좋지 않은 내가 (유치원 때 일은 기억나는 게 거의 없다.) 그 수업시간 만은 또렷이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말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유연성이 좋지 못했다. 타고났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유연성이라고는 전~혀 없다. 그런데 가을이가 그런 나의 뻣뻣함을 물려받았나 보다^^;; 그런 건 안 닮아도 되는데;; 괜히 좀 미안하다;;;;ㅎ


2024.02.16 (금)

어제저녁에 아이들과 배구경기를 보러 갔었다. 김연경 선수가 있는 흥국생명팀의  홈구장이 가까운 삼산월드체육관인데, 처음으로 김연경선수를 응원하러 가보았다. 맨날 티브이로만 보던 선수가 실제로 경기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너무 설레었고, 경기를 응원하는 일도 무척 신났었다. 긴 시간 아이 둘과 경기를 보는 일이 만만한 일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아이 둘 다 즐거워해서 더 뿌듯했다. 문제는 경기가 다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급격한 체력저하로 남편도 나도 지쳐있는 상태였다. 특히 남편이 유독 힘들어했다. 요즘 회사일도 바쁘고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많아 지쳐 있는 남편이었다. 집에 들어가서 아이들 이 닦이고 잘 준비해서 재우려는데, 여름이도 졸리고 힘들었는지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줄 에너지가 없던 남편은 여름이에게 화를 냈다. "아빠도 피곤하고 힘드니까 징징거리지 마!" 원래의 남편은 누구에게도 거의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다.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짜증을 내는 일이 잘 없다. (육아피로로 짜증 내는 건 주로 주양육자인 나다.) 그런 남편이 저렇게 짜증을 드러내는 걸 보니 피곤하긴 정말 엄청 피곤했던 모양이다. 자기 전 책 읽기도 건너뛰겠다고 하고, 자꾸만 아빠가 화를 내니 여름이는 더 죽어라고 울었다. 나는 얼른 여름이를 달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너무 피곤했지만,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재우는 것까지 도맡았다. 오늘 아침 남편은 어젯밤 화낸 것을 사과했다. 너만 피곤하냐, 그래도 애한테 그렇게 짜증을 내냐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 짜증을 사실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이 나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그래도 그 피곤한 와중에 아이 어린이집 식판 설거지를 해놓고 자줘서 고맙다'라고 말했다. 갑자기 내가 되게 성숙한 사람이 된 기분이다. 사실 나도 어젯밤부터 감기몸살 기운이 올라와 오전에 병원에 가서 주사도 맞고 왔을 만큼 몸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그래도 마음상태는 퍽 괜찮았던 모양이다. 다행이다. 둘 다 몸도 마음도 힘들었으면 분명 싸웠을 텐데 내가 마음상태라도 괜찮아서 말이다. 원래 목요일은 내 자유시간 날인데, 자유시간을 반납하고도 이 모든 것을 감당해 내었다는 것이. 남편의 짜증, 아이들의 짜증에도 짜증으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것이. 퍽 나 스스로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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