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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Feb 28. 2024

주간 새미일기

2024.02.19(월)~2024.02.24(토)

2024.02.19(월)

어젯밤 여름이가 자꾸만 깨서 울었다. 뭐가 그렇게 서러운 건지 자꾸만 울면서 안으라 했다. (안고 서라는 거였다.) 나도 한 번 애를 안고 한동안 서서 돌아다니고, 남편도 한 번 애를 안고 한동안 서서 돌아다녔지만 다시 눕기만 하면 일어서라고 울고 불고 난리였다. 자다 깨는 거야 이젠 뭐 익숙한데, 이렇게 막 우는 건 제법 오랜만이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춥다고 보일러를 확 틀어놨더니 방안이 후덥지근하고, 밖에는 비까지 내려서 꿉꿉하기까지 했다. 적절치 못했던 온습도 때문이었을까... 혼자 나름의 추측을 해본다. 너무 울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끈적해진 몸으로 잠들었다가도 자꾸만 칭얼거리는 아이였다. 보일러 온도를 낮추고 아이에게 부채질을 해주었다. 아이가 갑자기 웃으며 "따뜻하다~"라고 한다. 말을 한창 배우고 있는 아이는 반대어를 쓸 때도 많았다. "따뜻한 게 아니라 시원한 거지~" 했더니, "시원하다~"라고 얼른 고쳐 말한다. 한참을 그렇게 부채질을 하다 졸다 했다. 이후로도 너는 몇 번 더 깨서 울곤 했다. 이런 밤이면 내가 잠을 잔 건지 안 잔 건지 확실치가 않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네가 안방 침대 밑에서 베개를 베고 잠들어있다. 그런 너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그래, 너답지 않게 늦잠을 자는 걸 보면 너도 밤새 잠을 잔 건지 안 잔 건지 확실치 않았던 게지... 결국 너의 밤이 곧 나의 밤이었던 것이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그중에도 유독 잠이 없는 편에 속하는 너를 키우면서 나는 통잠이라는 걸 자본 적이 별로 없다. 네가 못 자면 나도 못 자는 거니까 너의 밤과 나의 밤은 결국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의 밤과 나의 밤이 이렇게 같은 것도, 네 덕에 내가 이렇게 너와 생생한 밤들을 보내는 것도 이때뿐이겠지 하는 생각. 클수록, 네가 밤에 날 찾아오는 일은 줄어들 것이고 더 커서는 나와 전혀 다른 공간에서 밤을 보내겠지. 그러니 너와 나의 밤이 같은 이 날들을 나는 소중히 함께 해야지 하는 생각. 언젠간 나도 너희들 없이 통잠을 자겠지. 그때는 거꾸로 너와 나의 밤이 같았던 이 시간들을 혼자서 추억할지도 모를 일이지. 내 품에 안겨 살랑살랑 부채 바람에 웃음을 짓던 네 얼굴을, 내 한 팔에 폭 들어오던 작고 몰랑몰랑한 너의 몸을, 내 볼을 간지럽히던 너의 머리카락에서 나던 향기를, 나는 모두 그러워할지도 모를 일이지. 너와 나의 밤이 같다는 건 무척 피곤한 일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네 존재를 한껏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니까... 할 수 있는 한 누려야지. 그래야지.


2024.02.20 (화)

여름이랑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고 있었다.

나: 여름아~ 사랑해~^^

여름: 아라떠~

나: 사랑해~~~

여름: 아라떠~~~

나: 알았어가 뭐야~ 너도 사랑해~ 해야지~

여름: 어, 사랑해주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엎드려 절 받고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둘이 한참을 웃었다.


2024.02.21 (수)

여느 아침과 같이 아이들과 등원 준비가 한창이었다. 좀 늦잠을 잔 탓에 시간이 촉박하기는 했다. 아침을 먹고, 아이들 옷을 입히고, 첫째 머리를 묶어주고 나니 이젠 정말 나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부랴부랴 세수를 하려는데 문득 아이들 등원 가방을 싸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아 맞다!!! 가방 싸야 하는데!! 에휴!!!” 나도 모르게 급한 마음에 한숨이 나왔다. 가방을 먼저 쌀까 세수를 먼저 할까 순간적으로 고민을 하는 나에게 가을이가 다가왔다. “내가 가방 쌀께 엄마!!” 나의 조급한 마음을 알아차린 것이었을까. 아이는 자기가 스스로 가방을 싸겠다고 나섰다. ”어? 그래줄 수 있어?! “하고 나는 화장실로 향했지만, 아이가 진짜 가방을 온전히 싸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첫째 유치원 가방에는 물통만 챙기면 되는 것이었지만 물을 채워가야 했다. (우리 집은 브리타 정수기를 쓴다. 버튼만 누르면 물이 나오는 게 아니라 주전자에서 따르듯이 큰 물통을 기울여 물을 따라야 했다.) 둘째 가방은 챙길 것이 훨씬 많았다. 식판, 식판 주머니, 수저를 넣은 수저통, 빨대컵, 수건을 챙겨야 했다. 세수를 하고 크림을 바르는 나에게 첫째가 한두 번 도움을 구하러 찾아오긴 했지만, 아이는 진짜로 자기 유치원 가방과 동생 어린이집 가방을 완벽하게 쌌다. 식기세척기에서 챙겨야 할 것들을 척척 꺼내 챙겼고, 정수기에서 물도 잘 따라 넣고 물통도 세지 않게 뚜껑을 잘 닫았다. 새삼 좀 놀랐다. 사실 그렇게까지 혼자 다 해낼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그동안 내가 원 가방 싸는 것을 어깨 너머 지켜보았던 모양이다. 이후로도 아이는 동생과 자신의 가방을 직접 챙겼다. 나중에는 나에게 찾아와서 도움을 구하거나 뭘 물어보는 일도 줄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을 나서기 전 아이들 가방을 한 번씩 열어 확인해 보았지만 아이는 내가 쌀 때와 전혀 다를 것 없이 가방을 잘 싸놓았다. 심지어 가방을 싸고 중문 앞에 딱 가져가 놓는 것까지 나와 똑같이 했다. 기특했다. 별 것 아닌 일일지 몰라도, 바쁜 아침에 (등원이라 불리는 전쟁 속에서) 아이가 가방을 싸주니 맘이 한결 여유로웠다. 내가 잔뜩 칭찬을 해주니 아이도 스스로 하는 것에 대해 즐거움을 느끼는 듯했다. 나도 새삼 아이가 이만큼 컸다는 것이 제법 놀랍고 기특했다. 이번에도 나는 가을이 덕에 ’ 갓생 산다.’ 고맙다. 이렇게 멋진 딸이어 줘서. 가방 하나 싼 것 가지고 너무 유난인가.ㅎㅎㅎ 앞으로도 네가 스스로 헤쳐나갈 많은 것들을 응원한다.


2024.02.22 (목)

간밤에 눈이 잔뜩 내렸다. 어젯밤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비가 눈으로 바뀌는 것 같다고 생각을 하긴 했는데, 아침에 창밖을 보니 그야말로 ‘겨울왕국’이 되어있었다. 나무들이 가지 하나하나 온통 새하얗게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아직 꿈인가 싶은 풍경을 쏟아내고 있었다. 겨울이 끝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때아닌 설국에 아이들은 등원길이 설렌다. 장갑도 끼고 목도리도 하고, 눈오리집게도 꺼내 들고 얼른 나가자고 성화다. 등원하다 말고 눈오리를 만들고 눈사람을 만들고 이렇게 저렇게 눈놀이를 하느라 신이 났다. 아이들이 한창 눈오리를 만들 동안 내가 작은 눈사람을 하나 만들었더니 가을이가 얼른 작은 나뭇가지를 주어와 팔을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제법 한참 눈놀이를 즐기고 아이들은 등원을 하였다. 등원 후에도 어린이집 친구들과 눈놀이를 나온 여름이는 내가 만든 눈사람을 두고 우리 엄마가 만든 거라고 자꾸만 얘기를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오후가 되고 아이들과 하원을 하는 길, 따뜻한 날씨에 바닥에 쌓였던 눈은 거의 다 녹았고, 내가 아침에 만들었던 눈사람도 누가 놀다가 부서졌는지 녹아 없어져있었다. 여름이는 그게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었다. 눈사람을 만들어 놓았던 그 길을 지나는데, 먼저 막 달려가 눈사람을 찾는다. “엄마! 눈사람이 없어졌어!!” “응~ 날이 따뜻해서 다 녹았나 봐~” “음... 다시 만들어줘!!” 그렇게 해서 벤치에 남아있던 눈들을 모아 아침에 만들어준 눈사람과 비슷한 크기의 눈사람을 다시 만들어주었다. 그랬더니 그 눈사람을 집에 가지고 가겠다는 여름이. “에?? 눈사람은 집에 못 가져가~ 집안은 따뜻해서 눈사람을 데려가면 금방 다 녹을 거야~ 눈사람은 밖에 있어야 해~“ 내가 이렇게 3번 정도 설명을 해준 뒤에야 아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럼 여기에 두고 가겠다고 했다. 나는 들어 올렸던 눈사람을 다시 화단에 예쁘게 올려놓았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눈사람에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눈사람아 잘 있어~“ ”내일 또 만나~“ 반복되는 인사말이나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에서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비쳐온다. 어쩌면 아까 아침에 자기가 거기 두고 간 탓에 눈사람이 녹아 없어졌다고 생각하고 이번에는 집에 데리고 가서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 눈사람도 사람이라 그런가. 눈도 코도 없는 눈사람을 마치 친구처럼 생각하며 짧은 만남에도 더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나, 헤어지고 싶지 않아 하는 아이의 마음이 따뜻했다. 대충 만든 눈사람이 이렇게 뿌듯하기는 또 처음이다.


2024.02.23 (금)

둘째가 오늘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수료식을 했다. 한 해를 함께 했던 '꽃잎반' 친구들과는 모두 같이 한 살 윗 반인 '풀잎반'으로 올라가지만, 선생님은 바뀐다. 아이들은 꽃잎반 선생님을 '엄마선생님'이라 불렀다. '엄마선생님'은 두 단어를 합쳐놓은 말이지만, 강조점은 앞에 단어인 엄마에 맞춰져 있는 듯했다. 나중에는 "여름이 누구 아들이야~" 하는 선생님의 질문에, 선생님을 바라보며 "엄마 아들!"이라고 대답하는 아이였으니까. 아이는 어린이집에 있는 엄마, 그리고 집에 있는 엄마, 두 명의 엄마를 갖고 있는 셈이었다. 선생님은 정말 엄마처럼 아이들을 대해 주셨다. 아니 어쩌면 엄마보다 더 친절하고 다정했을지 모르겠다. 진짜 까칠한 아이들에 비하면 무던한 편에 속할지는 몰라도, 첫째가 워낙 무던했던 터라 이것저것 좀 예민하게 구는 둘째가 난 종종 불편했다. 옷도 아무거나 안 입고, 처음 보는 것은 일단 거부하고 보는 편인 데다(그런 면에서 겁이 많다.), 그 때문에 먹는 것도 가리는 게 제법 많았다. 싫고 좋은 게 분명해서 싫은 건 절대 안 하고, 좋은 건 울고불고 떼를 써서라도 얻어내는 아이. 그런 아이를 선생님은 늘 기다려 주셨다. 여름이가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모두 지켜보고 있지 않았어도 난 알 수 있었다. 아이도 그걸 알았을 테다. 그러니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이의 첫 사회생활을 그런 사랑 넘치는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다. 어쩌면 평일에는 엄마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인데 이렇게 사랑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그러니 이 헤어짐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가을이 선생님께도 감사한 것은 마찬가지다. 지금 다니는 유치원에서 5살 반이었을 때도 그리고 이번 6살 반이었을 때도 다 선생님들이 너무 좋았다. 아이를 사랑하고 예뻐해 주시는 마음을 내가 느낄 정도였으니 아이는 그 안에서 얼마나 즐겁고 편안했을 텐가. 하지만 더 아쉬웠던 것은 두 분 다 이번을 마지막으로 유치원을 떠나게 되신 것에 있었다. 마지막인데, (유치원을 졸업하는 게 아니라 그런가. 봄 방학 때도 등원을 해서 그런가.) 내일도 본다니 마지막인 것 같지 않아서 이 마음이 뭔지도 모르고 6세 담임 선생님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더랬다. (어제였다.) 그런데 오늘 하원할 때는 5살 때 담임을 해주셨던 선생님이 마중을 나오셨다. "선생님 오늘 마지막.... 이 시죠...?" 하는 내 질문에 선생님은 "네~"하며 고개를 푹 숙이며 웃으셨지만 눈을 글썽거리셨다. 서로 짧은 인사와 감사와 덕담을 나누고, 선생님이 아이를 마지막으로 안아주셨다. 그 모습을 보는데 나도 울컥했다. "제가 왜 눈물이 날까요"하는 나의 말에 선생님도 "저도요~"하시며 눈을 훔치신다. 그렇게 눈물이 흐를세라 서둘러  유치원을 나서서 집으로 오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가을이를 유독  예뻐해 주셨는데...(나만 유독이라고 느낀 걸 테다. 선생님은 모든 아이를 원래 다 이뻐하셨다.) 두 해 동안 내 아이가 그렇게 사랑을 받았는데... 뭐라고 인사해야 할지 몰라 형식적인 몇 마디만 얼레벌레 주고받았다는 것이 죄송한 지경이었다. 담임 선생님께는 카드라도 썼는데, 5살 반 선생님께도 카드를 쓸걸 그랬나 뒤늦은 후회도 해본다. '선생님'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다. 기억력이 무척 가난한 나에게도 떠오르는 얼굴들이 여럿 있다. 그 선생님들이 해주셨던 말들 행동들이 인상 깊게 남아 있기도 하다. 만나는 인연 중에 가장 중요한 인연 중 하나가 사제지간이 아닐까. 아이들에게 주어졌던 선생님들과의 인연에 감사하며, 앞으로 만날 선생님들을 생각해 본다. 내가 수료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이 온갖 감정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2024.02.24 (토)

가을이는 27개월쯤에 기저귀를 뗐는데, 여름이가 벌써 30개월이다. 미루고 미루던 배변훈련을 본격적으로 좀 시작해볼까 해서 팬티를 샀다. 어젯밤부터 팬티를 입혀보았다. 다행히 아이는 팬티를 편안해했다. 심지어 잘 때도 팬티만 입고 자겠다는 걸 겨우 설득해서 팬티 위에 기저귀를 입혀 재웠다. 문제는 아이가 팬티와 기저귀를 구분하지 못한다는데 있었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건가;) 아이는 팬티를 입고도 기저귀를 입고 있을 때와 똑같이 행동했다. 즉, 팬티에도 기저귀처럼 그냥 볼일을 보았다. 그래도 소변은 줄줄 흐르니 싸면 티가 날뿐더러 본인도 젖어서 불편하니 옷 갈아입고 싶다고 오는데, 대변은 싸고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아닌가;; 냄새가 나서 보니 대변을 보고 한참을 있던 상태였다. 팬티에 질펀하게 눌어붙은 대변을 떼어내며 현타가 온다. 가을이 때도 이랬나 싶은 게 지금의 이 상황이 너무나 생경하다. 5개 세트로 구매한 '꼬마버스 타요' 팬티는 오전을 채 넘기지 못했다. 한번 싸면 바로 빨래행인 팬티를 아이는 점심도 먹기 전에 5개를 다 써버렸다. 기저귀로 치면 하루 종일도 4~5개면 충분한데, 팬티를 입혀놓으니 애가 왜 그렇게 자주 싸는지;;;; 싸겠다 그래서 변기에 앉혀주면 안 싸고, 주기적으로 싸라고 권해도 그럴 때는 꼭 안 마렵다고 안 싸더니... 기어이 일을 저지르고 엄마를 부르는 아이였다;; 5개 세트 팬티를 하나 더 주문하고, 이게 맞나 싶다....ㅎㅎㅎㅎ 어린이집 같은 반 엄마들에게 하소연하니 그게 맞단다. ㅋㅋㅋㅋ 그러다가 변기에 싸게 된다고...ㅎ 그런 거겠지...?ㅎ 난 왜 둘짼데도 이 상황이 낯선거냔 말이다. ㅋㅋ 가을이는 기저귀 진짜 금방 땠는데, (물론 이런 과정이 있었겠지만ㅋ) 여름이도 금방 떼주기를 바랄 뿐이다...ㅋ 새삼 많이 이컸다 싶었는데, 이 숙제가 남아있었다...ㅎ 파이팅.....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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