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새미 Mar 03. 2024

주간 새미일기

2024.02.26(월)~2024.03.03(일)

2024.02.26 (월)

오늘은 아이들 둘 다 등원시키지 않고 이모네 (아이들에게는 이모할머니) 놀러 가기로 했다. 아이들과 아침을 먹고, 부엌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집정리를 할 동안 아이들은 방에 들어가 놀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정신이 없어서 애들이 뭘 하고 있었는지는 신경 쓰지 못했다. 육아를 하면서 집안일을 할 때는 스피드가 생명이기 때문에, 애들이 나를 안 찾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지경이다. 무얼 하고 노는지까지 신경 쓸 정신은 없다. 그렇게 뒤도 안 돌아보고 집안일을 하다가도 문득 너무 조용하면 뒷골이 서늘할 때가 있다. 애들이 놀고 있는 상황이라면 시끄러워야 정상인데 조용하다는 것은 사고를 치고 있거나, 이미 사고를 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용히 아이들이 있는 방을 들여다보았다가, 뒷골에서부터 서늘하게 내려왔던 냉기가 따뜻하게 바뀌어 심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가을이가 여름이와 침대 위에 앉아, 여름이가 좋아하는 책을 읽어주고 있는 게 아닌가. 글씨를 다 읽지는 못하지만, 이미 외운 내용은 줄줄 읊어주고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문장은 또박또박 한 글자씩 읽어보기도 하면서 책장을 한 장씩 넘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여름이도 누나가 읽어주니 옆에 앉아 얼마나 집중을 잘하던지...ㅎ 자기 나름대로 질문도 하고 그랬다. 혹여나 방해가 될까 싶어, 조용히 그 모습을 찍어두고 자리를 피했다. 둘의 이 모습은 정말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몰래 들여다보느라 책 읽어주는 것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가을이에게 얘기를 들으니 3권이나 읽어줬다고 한다.) 머릿속 한구석에 액자처럼 걸어놨다가 육아가 힘들어질 때면 한 번씩 꺼내어 재생해보고 싶은 모습이었다. 예쁘다 너희 둘.


2024.02.27 (화)

이 일기를 쓰려는데 문득 내가 여름이가 잠을 잘 안 잔 일로 일기를 몇 번이나 썼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앞으로 또 몇 번을 더 쓰게 될까도 생각해 본다... 오늘도 그랬다. 남편이 늦게 퇴근해서 평소보다 더 피곤한 날이었는데, 애가 잘 생각을 안 한다... 옆에 누워 있으면서 "눈감아라." "노래 부르지 마라." 잔소리도 해보고,  "빨리 안 자면 엄마 간다." 협박도 해보고, 아예 아무 반응도 안 하고 자는 척도 해보았지만 재우는데 실패했다. 애를 재우려고 캄캄한 방에서 하염없이 누워있는 것이 한 시간이 넘게 되면 슬슬 현타가 온다. 이젠 정말 아까부터 했던 협박을 실행에 옮겨 보기로 한다. 안 자고 꼼지락 대는 애를 두고 방을 나왔다. "너 안 자면 엄마 간다고 했지?!" 아이는 울기 시작했지만 무시했다. 그리고 아이는 금세 문을 열고 나를 따라 나왔다. 하지만 내가 받아줄 것 같지 않았는지 소파에서 자고 있던 아빠에게로 방향을 돌렸다. 이미 잠이 든 아빠는 별 반응이 없다. 그러자 아이는 거실에 있던 장난감통에서 부스럭부스럭 자동차 장난감들을 꺼내는 게 아닌가. (안방에서 소리를 들어 알았다.) 갑자기 화가 났다. 거실로 나가 아이를 장난감통에서 떼어놓으며 윽박을 질렀다. "잘 시간에 안 자고 뭐 하는 거야!! 빨리 들어가서 자!" 아이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내가 막 소리를 지르는데도 남편은 깨지 않았다. 아이를 억지로 다시 침대로 데려가 눕혔다. 다시 재우기를 시도했지만 나는 또 실패하고 말았다. 아이는 결국 반 11시 반에 대변을 보았다. (어쩐지 저녁부터 계속 엉덩이가 아프다고 하더라니) 변을 보지 못해 잠을 자지 못했던 걸까. 아무튼 아이는 기저귀를 갈고 거의 12시가 돼서야 잠이 들었다. (이렇게 늦게 퇴근을 하면 내 시간이란 없다.) 아이가 잠을 안 잘 때마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이럴 땐 정말 마취총이라도 쏘고 싶다. 그런데 더 짜증 나는 건 왠지 그 난리통에서도 꿈적 않고 자는 남편이다. (소리를 못 들었을 리 없다. 애 우는 소리야 못 듣는다 쳐도 내 목소리를 못 들었을 리 없다.) 남편에게는 마취총이 아니라 권총을 쏘고 싶다. 탕탕!!! 한놈은 안 자서 마취총을 쏘고 싶고, 한놈은 자서 권총을 쏘고 싶은 밤이다. 탕탕탕!!!


2024.02.28 (수)

요즘 집에서 조금씩 기저귀 대신 팬티 입는 연습을 하고 있는 여름이. 지난주에는 팬티에도 그대로 볼일을 보더니 이번주는 볼일을 보기 전에 마렵다고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도 유아변기에 오줌을 누는 데 성공했다. 아직 대변은 변기에 누는 게 어색한지 대변은 성공한 적이 없지만, 소변은 몇 번 유아 변기에 눴다. 그래도 팬티에 싸지 않고 참았다가 변기에 눴다는 것이 아주 기특해 무한 칭찬을 해주었다. 나름대로 배변훈련을 금방 잘하고 있는 것 같아 매우 뿌듯한데, 두 가지 문제점이 있기는 하다. 첫 번째 문제는 자꾸 마려운 신호가 오기 시작하면 엉덩이나 음경이 아프다고 표현한다는 것이다. 기저귀를 할 때는 안 하던 표현을 하니 나도 나름대로 유심히 들여다보기는 하는데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여 일단 소변이나 대변이 마려우면 그렇게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소변이나 대변을 누고 나면 아프다는 말을 안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꾸만 아프다고 하니 신경이 쓰이긴 한다;;; 두 번째 문제는 여름이가 변기에 볼일을 보면 남편도 나도 무척이나 칭찬을 해주는데 그걸 첫째가 질투한다는데 있다;ㅎㅎ 첫째도 이맘때는 이런 일로 칭찬을 받았었지만, 지금은 같은 일로 칭찬을 해줄 수 없는 노릇이니 좀 난감하다. 질투가 거의 없는 첫째인데, 둘째가 칭찬받는 일에는 꼭 서운하다는 표현을 한다. 그래서 첫째가 다른 일을 잘했을 때 더 적극적으로 칭찬을 해주기로 한다;ㅎ

/저녁에는 동생이 조카 둘을 데리고 우리 집에 놀러 왔었다. 잘 놀고 밤이 되어 집에 가려고 차를 타러 내려갔는데, 조카가 잘 때 꼭 안고 자는 애착담요를 우리 집에 두고 간 것을 발견했다. 아직 출발 전이라기에 내가 잠깐 내려가서 주고 오려는데, 애들을 집에 두고 가려했더니 첫째가 무섭다고 안된다는 거였다. 원래 잠깐씩 집에 혼자 있는 것도 잘하던 첫째였는데, 밤늦은 시간이라 그랬는지 괴물이 나오면 어쩌냐면서 펄쩍 뛰는 거였다. 안 그러던 첫째가 무서워하니 나도 잠시 당황스러웠는데, 둘째가 그런 누나를 보면서 "무서워? 내가 안아주께~" 하는 게 아닌가 ㅋㅋㅋㅋ 그러더니 자기가 누나를 지켜줬다며 자랑스럽게 얘기하던 여름이 ㅋㅋㅋㅋ 아직은 나이차가 3살이나 나서 누나보다 머리하나는 작은 동생이지만, 그래도 무서워하는 누나를 지켜주려던 여름이가 귀엽고 기특했다. ㅋ


2024.02.29 (목)

어제는 정말 각 잡고 집안일을 한 날이었다. 청소, 빨래, 설거지 같은 기본적인(?) 매일 해야 하는 집안일 말고도 미뤄났던 정리들을 많이 했다. 그리고 그렇게 집안일하는 모습을 '타임랩스'로 대부분 촬영을 하였는데, 생각보다 집안일하는 모습을 촬영을 하면 좋은 점이 제법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 나는 집중력이 짧은 편인 데다 일을 벌여 놓고 마무리를 잘 못하는 타입인데, 촬영을 하게 되면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끝까지 해내게 된다.

2. 그리고 누가 보고 있다는 생각에 대충 하지 않고 제대로 깔끔하게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3. 한 가지 일을 몰입해서 하게 되니 일에 속도가 붙고 (속도감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의욕도 생긴다. (가속도가 붙는다.)

4. 난 촬영한 것을 SNS에 실시간으로 올리는데,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어서 더 열심히 하게 된다.

5. 핸드폰으로 촬영을 하니까 일하는 중간에 핸드폰을 할 수 없어서 집중력이 높아진다. (딴짓 불가능)

6. 집안일이라는 게 해도 티가 안 나고 보람되기가 힘든 일인데, 촬영을 하면 내가 열심히 일하는 과정을 눈으로 볼 수 있고, 일의 진척도 눈에 보이기 때문에 뿌듯하다.

7. 나는 일의 결과물이 중요한 사람인데, 영상이라는 결과물이 함께 남으니 일이 좀 더 즐거워진다.

단점이 있다면, 옷을 편하게 입기 힘들 수 있고(노브라나 짧은 옷은 신경 쓰인다.) 보여주기 식이 될 수 있다는 (카메라가 비추는 곳만 깔끔히) 것이 있는데 그런 단점을 상쇄할 만큼 장점이 크기 때문에 앞으로도 집안일하는 모습을 자주 촬영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2024.03.03 (일)

교회에서 소그룹이 편성되어 오늘 첫 모임을 하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다가 마지막으로 올해 어떻게 소그룹이 운영되었으면 좋겠는지 각자의 바람을 이야기해보자 했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즉, 친해지고 싶다는 얘기다.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나의 바람을 이야기했다. 나는 우리가 서로의 이면을 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무슨 얘긴고 하니, 각자의 좋은 모습 말고 안 좋은 모습까지도 보고 싶다는 말이다. SNS에 올릴법한 나이스한 모습 말고, 나의 어두운 면, 나의 부끄러운 모습, 창피한 부분을 드러낼 수 있는 사이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교회에서 매주 보는 사이기에 우리는 어느 정도 제법 친한 관계를 갖고는 있지만, 거기서 한 단계 더 깊은 관계로 간 사람은 사실 몇 없다.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줄 정도로 딱 그 정도만 가까웠던 것이다. 그러다 더 자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 교회 동생이 있었다. 늘 매너 있고, 깔끔하고, 나이스한 동생이었다. 그런 동생이 4살 아들을 돌보다가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 모습을 보자 그 동생이 확 가깝게 느껴지는 경험을 했다. '나도 애 키우다 보면 짜증 낼 때 많은데, 너도 그렇구나!' 하면서 동질감을 느꼈던 것일까? 아무튼 그 친구의 좋은 모습이 아니라 조금은 부족한 모습을 마주했을 때, 나는 오히려 그 안에서 인간미를 발견했던 것 같다. 물론 상대의 단점을 마주하다 보면 그리고 나의 단점을 드러내게 되었을 때, 관계가 더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진짜 관계의 시작은 거기서부터가 아닐까. 우리가 서로의 그런 면까지 마주할 수 있어야 진짜 공동체가 되는 게 아닐까. 그게 정말 가족 같은 사이가 되는 길이 아닐까. 나는 올해 그대들의 이면을 보고 싶다. 그리고 나의 이면을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관계가 그렇게 더 깊어지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간 새미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