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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Feb 05. 2024

주간 새미일기

2024.01.29(월)~2024.02.02(금)

2024.01.29 (월)

여름이가 유치원에서 기른 것이라며 콩나물을 한 줌 가져왔다. 정말 한 줌이었다. 아니, 한 줌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아이는 하원하고 집에 오는 길에도, 그것만은 꼭 제 손으로 들겠다고 했다. 그 적은 콩나물로 무엇을 할까 하다가 나물로 무치면 한 젓가락 밖에 안 될 것 같아서, 콩나물국을 끓이기로 했다. 일부러 다듬는 것도 아이들과 함께 다듬었다. 아이는 자꾸만 콩나물 머리를 부러트렸지만 뭐라 하지 않았다. 콩나물 하나하나 소중히 다듬어 국물을 내고, 파도 넣고 액젓도 넣었더니 제법 맛난 콩나물국이 되었다. 아이는 그것을 맛있게 먹었다. 집에서도 그러고 어린이집에서도 국에 있는 건더기는 다 빼달라고 하는 아인데, 젓가락으로 콩나물을 제 스스로 막 건져 먹었다. 첫째도 잘 먹었다. 심지어 콩나물을 리필해 달라고 했다. 아이들이 잘 먹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깟 콩나물 한 줌이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만들었다는 게 신기했다. 새삼스러웠다. 사실 행복이란 게 참 별것 아닌 것에서 만들어질 때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아이들에게 거창한 무언가를 해주려고 애쓰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된다. 콩나물 한 줌 덕에 즐거운 저녁식사를 했다.

2024.01.30 (화)

첫째가 새벽에 구토증세를 보여서 유치원을 보내지 못하고 가정보육을 했다. 그런데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다행히 아이는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혼자 잘 놀고, 이따금씩 심심하다고 했지만 나는 그냥 아이가 심심하게 두었다. 그럼 아이는 또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 하고, 나도 내 할 일을 했다. 만 5세의 육아란 이렇게 수월한 것인가 새삼 감탄스러웠다. (물론 가을이는 더 어린 나이에도 육아가 어려운 아이는 아니었다. 아주 무던한 편이다.) 그랬더니 우리 집 만 2세에게도 뭔가 희망이 보였다. 작년만 해도 작년 초에 둘째를 보는 것과 작년 말에 둘째를 보는 것은 난이도 매우 달라지는 것이었다. (갈수록 수월해졌다는 얘기다.) 얘도 만 5세가 되면 이렇게 편해지겠지 기대를 해본다. 물론 애들마다 편차가 있겠다만 (우리 집은 둘째가 육아 난이도가 더 높다. 까다로운 타입.) 너도 갈수록 덜 힘들어지겠지 생각한다.


2024.01.31 (수)

우리 집에는 내가 치는 '피아노'가 있다. 그래서 첫째도 종종 그 피아노를 치면서 놀고는 한다. 언젠가부터 아이는 피아노로 연주를 하고 싶어 했다. 자기가 아는 노래를 피아노로도 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나도 피아노를 배운 적만 있었지 가르쳐본 적은 없는터라 무엇을 어떻게 알려주어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가장 기초가 되어 보이는 듯한 교제를 사서 아이와 함께 진도를 나가보았다. 아이는 그 책을 통해 '떴다 떴다 비행기' 동요를 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 교제로는 나조차도 별로 피아노에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렇게 흐지부지 되었다가 어떤 '어플'을 알게 되었다. 그 어플은 내가 피아노 연주하는 것을 '듣기도'하는 어플이라, 나름대로 쌍방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어제 그 어플을 받아 처음 아이와 해보기 시작했는데, 고작 '도', '레' 두 음계를 배우는데도 자꾸만 틀리는 아이가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다. 나의 싸늘한 태도에 아이는 결국 눈물을 보이며 그만하고 싶다고 했다. 나조차도 그만하고 싶었다. 그 어플을 삭제할까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아이에게는 혹시 또 하고 싶은 마음이 들거든 언제든지 이야기하라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 아이가 또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별 기대 없이 그 어플을 켜주고 어제 배운 부분을 다시 복습을 해보게 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는 어제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내 입장에서 답답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어제처럼 미칠 지경은 아니었다. 게다가 아이는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하고, 다시 하기를 아주 여러 차례 반복했다. 물론, 자꾸만 틀리자 본인도 그게 너무 속상했는지 눈물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제처럼 금방 포기하지는 않았다. 한바탕 울고 나서도 틀린 부분을 또 해보고 또 해보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자꾸만 틀리는 것이 속상해 우는 아이에게 이렇게 얘기해 주었다. "가을아, 연습할 때는 틀리는 게 당연해. 아주아주 많이 틀려봐야 안 틀리고 칠 수 있게 되는 거야. 엄마도 연습할 때는 백번도 더 틀려. 처음부터 안 틀리고 치는 사람은 없어. 많이 틀려야 그다음에 더 잘할 수 있게 되는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틀리는 게 흥미로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속상한 아이도 이해가 된다. 그래서 사실 조금 하다가 말 줄 알았다. 그런데 내 생각과 달리 아이는 제법 오랜 시간 그 피아노를 붙들고 연습을 했다. 도, 레, 미 고작 세 음계를 배운 것이 다 지만, 각각의 음계가 악보에서 어떻게 다르게 생겼는지부터, 피아노에서의 위치는 어디인지, 어떤 손가락으로 쳐야 하는지까지 생각보다 많은 것을 고려하며 연주해야 하는 것이기에 아이에게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테다. 아이는 여전히 음계들을 헷갈려하고, 손가락을 틀리고, 박자도 잘 못 맞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포기해버리지 않았다는 것이, 어제보다는 분명히 더 나아졌다는 것이 대견했다. 나도 가만 보면 늘 잘하는 것만 하려고 한다. 잘 못하는 것은 시도조차 잘하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런 나를 돌아보면 아이가 보여준 모습은 멋지기까지 하다. 너의 (피아노라는) 여정에 박수를 보낸다.


2024.02.01 (목)

오늘은 여름이가 어린이집에서 키즈카페를 가는 날이다. 어제 어린이집에서도 선생님이 미리 이야기를 해주신 모양이었다. 하원하면서 “우리 내일 어디 가지?” 하는 선생님의 질문에 “키즈카페!”라고 대답을 한다. 집에 오는 길에도 내일 자기 키즈카페 간다고 자랑을 한다. 그래서 미리 키즈카페 가서 먹을 간식을 사두었다. 당장 먹고 싶다고 여러 번이나 냉장고 문을 열고 달라는 아이였지만 “내일 키즈카페 가서 먹어야지~ 키즈카페 안 갈 거야?”라고 하면 “키즈카페 갈 거야!”하며 간식을 여러 번이나 다시 단념하는 아이였다. 오늘 아침에 등원 준비를 하는데도 나에게 재차 확인을 한다. “오늘 어디가?” 하고 나에게 물으면 “키즈카페 가지~”라는 나의 대답에 아이는 신이 난다. 원복 입는 걸 싫어하는 아이는 (사실 어떤 옷이던 입는 걸 싫어한다;) 키즈카페 이야기에 못 이긴 척 옷을 입는다. 어린이집을 가는 길, 원 앞에 벌써 노란 버스가 와서 서있다. “저 버스를 타고 가나보다 여름아!”했더니, 아이는 버스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냥 보기만 해도 좋은 버스를 타고 간다니!! 등원길이 이렇게 신날 수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원에서도 선생님이 버스 타고 간다고 얘기하자 방방 뛰고 야단법석이었단다. 나는 새삼 아이가 제법 컸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땐 어디 좋은 데를 데려가도 뭘 잘 모르니 그냥 그러려니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컸다고 키즈카페 가는 것을 ‘기대’도 하고, 그것 때문에 간식을 먹지 않고 ‘인내‘도 하고, 버스 타고 간다는 말에 ‘흥분’도 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아이가 이렇게 말을 알아듣고 다양한 감정을 보일 때 새삼 아이가 컸다는 것을 느낀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이 아닌 것도 (현재가 아닌 미래에 일어날 일도) 아이가 인식하고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다. 신기하게도 둘째는 이런 게 보인다. 일기를 써서 신기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 걸 지도...


2024.02.02 (금)

나는 우리나라 화가 중에서 ‘장욱진’이라는 화가를 좋아한다. (사실 아는 화가가 별로 없지만;;;) 덕수궁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의 회고전을 한다기에 아이 둘이 등원했을 시간에 다녀왔다. 그의 미술관에도 여러 번 다녀와 봤지만, 이렇게 그의 작품이 많이 모인 전시는 처음이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개인소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시관만 4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는 가족, 아이, 나무, 까치, 집, 동물들을 주로 그렸다. 그런 그의 작품들을 잔뜩 보고 나오는데, 마음이 참 따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가슴 안에 무언가를 한가득 채워 넣고 나온 느낌이랄까. 마음이 부자가 된 느낌 말이다. (돈 말고 사랑, 애정, 기쁨, 따스함 이런 걸로 말이다.) 결국 그것이 그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단순한 그의 그림들이 이런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것에 나는 매번 감탄하곤 한다. 나는 우리 가족이, 우리 아이들이, 그리고 내가 그의 그림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순수하고, 정직하고, 단순하지만 알록달록하게. 억지로 꾸미지 않고, 이것저것 더하지 않아도 단순히 자신이 가진 것으로 아름다운 모습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른 이의 마음을 풍성하게 채워줄 수 있는 사랑이 그 안에 있기를 바란다. 나는 정말 그러기를 바란다.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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