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바다에 이는 감정이라는 파도
아이들은 가끔 (??) 이유 없는 짜증을 낼 때가 있다. 아니, 정정한다. 사람들은 가끔 이유 없는 짜증을 낼 때가 있다. 육아를 하다 보면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평정심을 잃게 되는 경우가 잦다.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평정심을 잃게 되기가 쉬운 순간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아이가 이유 없는 짜증을 지속적으로 낼 때이다. 아니, 이것도 정정한다. 이유가 없진 않을 것이다. 다만 내가 그 이유를 알지 못할 뿐. 그래서 우리는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이유를 알면 내가 도울 수 있는 문제 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게 되고, 내가 도울 수 있는 문제라면 네가 그 짜증과 울음을 그치도록 내가 조치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요구한다. 무작정 울고 불고 짜증을 내지 말고, 엄마에게 왜 그런지 말을 해보라고 말이다.
“왜 그래~ 왜 그러는 건데~ 말을 해봐! 말을 해야 엄마가 알지! 말을 하라고!! 징징거리고 울기만 하면 엄마가 어떻게 알아! 왜 그래 왜!!
점점 목소리의 데시벨이 올라간다.
얼마 전 어떤 TV프로그램에서 뇌과학자가 하는 말을 우연히 들었다. (짧은 영상클립으로 본 것이라 그것도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겠다;;) 그는 유독 남편에게 화가 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결혼을 해서 부부가 되면, 우리는 배우자를 타인이 아닌 내 몸의 일부처럼 여긴다. (뇌가 실제로 그렇게 인식한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배우자가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불편하고 화가 나는 것이라고. (내 몸인데 내 맘대로 안되면 화가 나지 않겠는가...) 남편과 30년을 따로 살다가 만나서 부부가 돼도 그를 내 몸처럼 생각하는데, 실제로 내 몸의 일부였다가 나온 아이는 오죽할까. 그래서 아이가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불쑥불쑥 화가 올라오는 것이다. 아이가 투정 부리고 짜증 내고 울면서 난리를 치면, 나도 쉽게 이성을 잃고 만다. 그래서 빨리 이 상황을 끝내고 싶어 아이를 더욱 재촉한다. 왜 그러는지 말해달라고.
오늘 아침에도 둘째가 막 짜증을 냈다. 나는 아침 식사로 에그스크램블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 움직이기가 곤란한데, 아이는 무조건 나더러 와보라고 징징거렸다. 뭐 때문에 그러냐고 물어도 일단 무조건 자기 방으로 오라는 아이. 엄마가 이거 다 만들고 가겠다는데도 내 바지를 잡아당기며 당장 오란다. 그 짜증을 다 받아내며 겨우 에그스크램블을 만든 뒤 인덕션을 끄고 아이를 따라가 보니, 자기가 찾는 미니카가 없어져서 짜증이 난 것이었다. 아이 미니카들을 정리해 넣어두는 트롤리를 다 뒤져봐도 없다. 엄마가 나중에 찾아둘 테니 아침을 먼저 먹자는데도 아이는 막무가내다. 당장 찾아내라는 거다. 가뜩이나 늦잠을 잔 데다 첫째가 유치원에서 숲체험을 가는 날이라 얼른 준비를 하고 가도 늦을 것 같은데, 아침 먹을 생각은 않고 장난감을 찾는 아이에게 나도 짜증이 올라온다. 소파 밑에까지 다 뒤져도 안 나온 것을 첫째가 엉뚱한 데서 찾아다 주었다. 그래서 상황이 일단락된 줄 알았는데, 아이는 계속 짜증을 부렸다. 똑같이 나눠준 에그스크램블을 두고, 자기 것이 더 양이 적다며 징징… 그래서 내 것을 더 덜어주었는데도 아이는 더 짜증을 부릴 뿐이었다. 결국 첫째가 자기 것을 나눠주었다. 그런데도 뭐가 맘에 안 드는지 눈물을 보이며 짜증을 부리는 둘째…그 모습을 보자 나도 욱 하고 짜증이 올라온다.
“다 먹지도 못하고 남길 거면서 왜 자꾸 욕심을 부려!! 엄마 것도 나눠주고 누나 것도 나눠 줬잖아! 근데 왜 안 먹고 울어!! 아까부터 왜 이렇게 짜증이야!! “
그런데 그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짜증이 뭐 이유가 있어서 나나. 일단 그냥 짜증이 나는 거지.’
사실 내가 그런 타입이다. 나는 머리보다 감정이 앞서는 사람이라 일단 어떤 감정들이 올라오고, 그 감정들이 다 지나가고 나면 나중에 머리로 그 감정들을 납득할만한 이유들이 떠오른다. (이유를 나중에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있던 이유를 늦게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나도 이유 없이 짜증을 내는 사람은 아니지만, 짜증을 내는 그 순간에는 사실 나도 그 이유를 말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정확히 인지하고 있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데 만 3살짜리 아이가 그게 가능하겠느냔 말이다. 30년을 훌쩍 넘게 산 나도 못하는걸 내가 지금 3살짜리 아이에게 하라고 요구하는 격인 것이다. “지금 너의 그 감정을 당장 말로 납득되게 표현해!!” 그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나는 매번 아이에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 순간 나는 아이에게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은 적이 없고, 아이의 짜증에 내 짜증까지 얹어 한바탕 난리통을 치르고야 마는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아이에게 짜증이 나지 않았다.
나는 둘째 옆 식탁의자를 빼고 앉아, 아이에게 에그스크램블을 먹여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도 눈물을 닦고 진정을 했다. 오른쪽 눈 밑에 미처 닦아내지 못한 눈물 한 방울을 달아둔 채로 아이는 내가 주는 에그스크램블을 받아먹었다. “먹고 더 먹을 거야” 괜히 투정 섞인 한마디로, 아이는 아까의 짜증을 합리화하는 동시에 내가 더 화를 낼 것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는 듯했다. 나는 더 화를 내지 않았다. 다만 차분한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여름아… 다 먹지도 못할 걸 왜 울고 불고 때를 썼어? “ 그러자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몰라…“
그래… 모르는 게 당연하지… 너도 모르겠으니까 더 짜증이 났겠지… 맞아. 사람이 그냥 짜증이 날 때가 있지… 아까 미니카를 빨리 찾고 싶은데 엄마가 얼른 도와주지 않아서 속상했는데 그 마음이 미처 가시지 않은 채로 넌 식탁에 앉았고, 엄마가 아침밥을 네 것을 더 적게 준 것 같아 심통이 났고, 언제는 맨날 많이 먹으라 그러면서 더 달라 그랬다고 엄마가 너에게 화를 내는 것이 억울했겠지… 그래… 너도 너만의 이유가 있었지만, 그걸 말로 표현하긴 어려웠겠지… 일단 눈물이 나기 시작했으니까… 그냥 엄마가 괜찮다고 말하며 네 눈물을 닦아주고 안아주길 바랐겠지…
파도가 철썩 쳐서 온몸이 다 졌었다. 그 바람에 짧짤한 물을 한 움큼 마신 나는 쿨럭거리며 짜증을 낸다!! 이게 뭐야!!! 그런데 몸에 뭍은 모래들을 털며 고개를 들어보니 바다다. 아… 바다라서 파도가 친 거구나. 그걸 알게 되면 짜증은 나지 않는다. 감정이란 건 그런 것 같다. 잘 모르고 겪으면 곤욕이지만 내가 그 감정들이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우리는 파도를 즐기며 물놀이를 할 수도, 서핑보드를 탈 수도 있다. 나는 바다다. 그러니 내 안에는 늘 감정의 파도가 치는 것이다. 파도가 세게 치는 날도 있고 잔잔한 날도 있고 그런 것이지만, 파도가 없는 날은 없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에게 파도가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도 있고, 너에게도 있다. 우리는 서로의 파도를 잘 인식할 필요가 있지만, 파도가 바다는 아니라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나라는 바다에서도 내가 파도를 가르며 서핑보드를 타지 못하는데, 내가 너의 바다에서 파도를 즐기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냐만은… 고개를 들어 너라는 바다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네 철썩 거리는 파도에 당황스럽다가도 얼른 정신을 차리고 그 파도 너머의 너라는 바다를 볼 수 있기를… 그리고 내 안의 파도를 넘어 나라는 바다도 볼 수 있기를… 내가 그런 시선을, 마음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파도 너머의 너는 얼마나 멋진 바다일지 상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