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딸아이의 산타를
‘나는 몇 살까지 산타의 존재를 믿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7살(만 6살)인 나의 딸아이는 아직까지 산타를 믿고 있었다. 날씨가 ‘쌀쌀하다‘가 아니라 ’춥다‘라고 느껴지기 시작할 즈음부터 엄마들이 으레 자주 쓰게 되는 으름장이 있다면 그건 바로 산타할아버지를 이용한 으름장일 테다. “엄마 말 안 들으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주신다. “, ”빨리 안 자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주신다. “, ”어? 친구랑 장난감 사이좋게 안 가지고 놀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안주 실 텐데? “, ”밥 안 먹는 친구는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안 주신대~“ 등등 온갖 생활규칙에서 빠짐없이 등장해 주시는 인물이 산타할아버지다. 이 으름장이 언제까지 먹힐 것인가는 아이가 산타할아버지를 믿냐 안 믿냐에 달려있다. 딸아이는 7살이 되도록 한 번도 나의 으름장에 반기를 들어본 적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본 적도 없었다. 즉, 아직까지는 산타할아버지를 믿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난 크리스마스가 되기 이틀 전, 나는 아이들이 등원하고 집에 없는 틈을 타 크리스마스 선물을 포장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남편이 눈에 들어왔다. (남편은 그날 반차를 쓰고 일찍 퇴근을 해 집에 있었다.) 아이들 선물을 포장하는 일 말고도 해야 할 일들이 많아 가뜩이나 몸도 마음도 바쁜데, 늘어지게 누워 있는 남편이 갑자기 꼴 보기가 싫었다. 애드 크리스마스 선물 뭐 줄까 고민하고, 구입하는 것까지 내가 했으면 포장이라도 좀 도우라며 핀잔을 주었더니 남편이 마지못해 어슬렁어슬렁 와서 돕는다. 그마저도 시간이 촉박해 첫째 딸아이 선물밖에 포장을 하지 못했다. (우리는 초등학교 예비소집이 있는 딸아이를 하원하러 일찍 나가야 했다.) 나는 남편에게 포장한 첫째 선물과 미처 포장을 못한 둘째 선물을 잘 쓰지 않는 안쪽 붙박이 장에 넣어두라고 했고, 나는 선물 포장지와 가위, 테이프들을 후다닥 치운 뒤 (증거인멸) 첫째를 하원시키러 나갔다.
우리는 간단한 예비소집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아이는 겉옷을 걸어두러 방에 들어갔는데, 돌연 “이게 뭐야?” 하고 묻는다. 방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잘 쓰지 않는 (아이가 평소에는 한 번도 열어보지 않는) 안쪽 붙박이장 안을 떡하니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순간 너무 당황스러워 머라 둘러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알고 봤더니 남편이 그 붙박이 장 문을 열어두고 나온 것이었다. 나는 순간 남편을 째려보았지만, 남편은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어이가 없었는지 와하하하하고 웃음이 터졌다. 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닌 것으로 믿게 하기에는 누가 봐도 크리스마스 선물임을 보증하는 빨간색 바탕에 하얀색 눈송이가 그려진 포장 지였거니와 그 위에는 동생이 좋아하는 기차 장난감이 포장도 되지 못한 채 떡하니 놓여있었다. 고로 내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뭐라고 둘러댔든 간에 아이는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 된다.
아니나 다를까, 그 이후로 아이는 태어나 처음으로 산타에 대한 의문을 품는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그 질문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이의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진짜 크리스마스 선물은 산타할아버지가 갖다 주는 것이냐, 엄마 아빠가 사주는 거 아니냐 뭐 이런 맥락이었다. 하… 그래… 결국 알아버렸구나 ㅠㅠㅠ 나는 다시 한번 크리스마스 선물은 산타할아버지가 주는 것임을 주장했지만… 왠지 아이의 의심은 완벽히 걷히지 않았던 것 같다. 크리스마스 아침이 밝기 전날 밤에 나는 몰래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아이들 선물을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첫째는 그때 그 붙박이 장안에서 보았던 그 선물을 받았다. (동생도 그때 자기가 보았던 그 선물을 받았고…)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캐리어를 받고 싶다 해서 준비한 선물… 사이즈도 워낙 커서 다른 포장지로 다시 포장했다 해도 의심을 살만한 사이즈였다… 그 선물 말고도 비밀 선물이 하나 더 있었긴 했던 데다, 아이는 선물을 받고 무척이나 신나 했지만… 왠지 나는 가슴 한편이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빠라는 작자가 딸아이의 산타를 죽였다. 산타할아버지를 철석같이 믿고 설레어하며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였는데… 아빠의 부주의로 아이는 앞으로 전처럼 설렐 수는 없게 되었다… 아… 그래… 괜히 내가 그날 선물 포장은 도와달라고 우겨가지고… 그냥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나 혼자 할걸… 그랬으면 아이의 동심은 아직 살아있을 텐데… 선물 하나도 똑바로 못 숨길 수도 있는 남편이라는 걸 내가 한 번이라도 의심하고 확인했더라면… 아니지… 잘못은 남편이 했는데 왜 내가 내 탓을… 아우… 속 터져… 암튼! 남편이 산타를 죽였다. 다 남편 탓이다. 에휴… 어쨌거나 그 길로 아이는 한 발짝 더 어른이 되었고, 남편은… 언제 어른이 되나 싶다.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