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딸을 키우고, 딸은 엄마를 키운다.

아이 둘을 입학시키며 고군분투하는 육아성장기.

by 장새미

첫째가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둘째는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에 입학했다. 몰아치는 졸업과 입학준비에 나는 몸도 마음도 분주했다.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보는 건 처음이라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처음 가보는 길이라 그런 걸까,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기에 한 발짝을 떼면서도 이게 맞나 싶다. 마음은 한 술 더 떠서 분주함과 함께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헐떡 거렸다. 결국 찾아온 입학식 날. 나는 둘째 실내화를 준비하지 못한 것을 깨달았고, 그런 둘째의 유치원 가방에 집에서 신기던 실내화를 대충 욱여넣어준 다음 유치원 안 간다고 우는 아이를 아빠 손에 등원시켜 버렸다. 아, 경력자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첫째 입학 준비에 온 신경을 쏟느라 둘째 입학을 세심하게 챙겨주지 못했다. 왜 이런 건 다 내가 혼자 준비해야 하는 건지 괜히 남편도 한 번 원망해 본다.


긴장한 탓일까. 나는 아이들 입학식이 있는 날 아침도 먹지 못했다. 속이 받아주지 않을 것 같았다. 왜 내가 아이보다 더 긴장을 한 걸까. 나는 네가 걱정이었을까. 내가 걱정이었을까. 아마도 나는 ‘내가‘ 훨씬 더 걱정이었던 것 같다. 아이는 그동안 어린이집, 유치원에서도 그래왔듯이 초등학교에서의 새로운 생활도 잘 적응해 나갈 것임을 나는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학부모로서 내가 너를 잘 도울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초등학교는 준비물이 많았다. 나는 연필, 색연필, 사인펜, 물감 하나하나에 다 너의 이름표를 붙였다. 실내화주머니에는 네가 좋아하는 연보라색 실로 네 이름을 수놓아주었다. 다 준비를 하고도, 빼먹은 것이 없나 나는 가정통신문(?)을 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어느 날, 가을이가 대뜸 나에게 너무 고맙다는 것이었다. 나는 “뭐가? “하고 물었다. 아이는 자기를 위해서 이 모든 것을 준비해 줘서 고맙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나를 알아주는 네가 고마웠다. 학교생활 준비에 아등바등하는 나를 알아준 것 같았달까? 엄마로서 준비물을 챙겨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걸 콕 집어 고맙다고 표현해 주는 너에게 내가 도리어 고마웠다.


입학식을 무사히 치르고, 첫 정식 등교날. 어제까지만 해도 “내가 교실을 잘 찾아갈 수 있을까?” 묻던 너에게는 “그러엄!! 할 수 있지!” 하고 자신 있게 대답해 놓고서는 정작 나 자신은 내가 준비물을 다 제대로 챙긴 건가, 방과 후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는 건가 머리도 마음도 바쁘게 굴러가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아침부터 갑자기 유치원에 (어린이집에서 쓰던) 빨대컵을 가져가고 싶다고 통곡을 하는 둘째를 들쳐 안고 등굣길에 나섰다. 우는 둘째를 데리고 허둥거리면서도, 아이의 첫 등교 모습은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어서 나는 씩씩하게 걸어 들어가는 첫째를 다급하게 불러 세웠다. “가을아!!!” 그랬더니 뒤를 돌아보며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어주며 손으로 브이까지 만들어주던 너. 고맙다. 설레는 발걸음으로 학교에 들어가는 네 모습에 나도 힘을 얻어 둘째를 잘 달래 등원을 시켰다.


첫 등원 날은 울고불고하는 통에 원장님께 안겨 들어갔다는 둘째는 다행히 유치원에 들어가서 금방 진정되어 잘 놀았단다. 게다가 다음 날은 눈물 없이 웃으며 등원을 했고, 점심시간에 선생님과 김치도 먹었단다. (둘째 인생의 첫 김치였다. 내가 아무리 권해도 절대 안 먹던 김치를!!!) 기특하다. 그런데 사실 나는 울며 들어간 둘째보다, 첫째가 더 신경 쓰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생활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교실은 잘 찾아갔을까, 밥은 잘 먹고 있을까, 방과 후 수업은 잘 갔을까, 친구는 사귀었을까. 이것저것 궁금했을 나를 알고 있다는 듯이 너는 하교 후에 학교생활이 어땠는지 무얼 했는지 조잘조잘 이야기해 준다. 덕분에 나는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긴장해 굳어있던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너의 첫 시작이 마치 나의 첫 시작인 양 나는 호들갑을 떨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 나에게 오늘 하루 너무 즐거웠다고 하는 너의 말은, 괜한 긴장감에 오늘 하루 어땠는지 감히 묻기도 망설여지는 나를 도닥여준다.


나의 육아는 네가 처음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서툴렀고, 무서웠고, 어설펐고, 힘들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나를 붙잡아 주는 것은, 언제나 너의 말이었다. 내 육아의 대상인 너 말이다. 엄마인 나를 키워주는 것은 언제나 딸인 너였다. 육아는 사실 아이를 키우는 것을 넘어서, 아이도 부모를 그렇게 ‘서로를 키워주는 것‘이 아닐까. 아니, 나는 그렇다고 확신한다. 너도 초등학교 생활이 처음이고, 나도 초등학교 학부모는 처음이다. 우리 지금처럼 이렇게 서로 처음 가는 이 길 위에서도 서로를 키워주며 나아가면 좋겠다. 여전히 나는 너보다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지만, 나에게는 네가 있으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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