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충전이 필요해
예견된 일이었다. 아이가 5살이 되고 유치원에 입학하고 나면 한동안은 적응하느라 고생할 거라는 걸 말이다. 순하고 무던한 첫째도 유치원에 가서 낮잠시간 없이 새로운 곳에서 적응을 할 시기에는 2~3달간 하원 후에 좀 짜증을 부렸던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경력자로서, 둘째에게도 올 그런 시기를 예상하고 있었다. 다만 내가 예상치 못했던 것은 첫째가 좀 짜증을 부리는 것에 그쳤다면, 둘째는 울고불고 난리난리를 칠 것이라는 것이었다. 둘째는 그랬다. 평소 투정을 부리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원래는 아이도 원하는 바가 확실한 타입이기에 나도 웬만하면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만, 안 되는 것에 대해서는 안된다고 하고 적당히 무시하면 아이도 포기할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은 분명히 자기가 봐도 안 되는 상황인데도, 그래서 내가 알아듣게 설명을 해줬는데도 (이미 저질러진 상태라던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 끝까지 “아니이~~~!!!!!!” 하면서 윽박을 지르고 더 크게 울며 끝까지 떼를 썼다. 나중에는 앞뒤 없이 “엄마아!!!!” 하면서 고함을 지르며 울기만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아이와 분리해 생각하려고 애썼다. ‘지금 아이가 저렇게까지 짜증을 부리는 것은 아이가 원래 성정으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낮잠도 없이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느라 저도 피곤해서 저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아이의 짜증을 50%는 무시하고, (아이의 울음과 짜증을 무시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50%는 잘 달래주며 받아주었다. 그리고 요 며칠 나는 그것을 잘 해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 자신이 퍽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오늘 오후, 나는 그런 나에게도 한계점이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제 하원 후 놀이터에서 한 시간 반 넘게 놀고 저녁식사를 하러 집에 들어가려는데, 아이는 공원에 가서 더 놀겠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더랬다. 나는 그런 아이를 50% 무시하고, 50% 달래며 겨우 집에 돌아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짜증을 그치지 않는 아이를 들쳐 안고 저녁을 차려야 했다. 그래서 오늘은 하원 후에 공원에 가겠노라 약속을 했었다. 그리고 나는 약속을 지켰다.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 갔고, 저녁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을 것을 감수하고도 아이들에게 (공원에 있는 매점에서) 과자와 음료수를 사주었다. (공원에 도착하기 전부터 아이가 졸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시간 넘게 공원에서 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또 둘째의 말도 안 되는 짜증이 시작되었다. 그 이유는 이랬다. 자기가 누나보다 더 빨리 달려가고 싶은데, 누나가 멈춰서 기다려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평소에도 그것을 분하게 생각하긴 했지만, 오늘은 그 정도가 심했다. 아이는 소리를 지르고 울기 시작했다. 이미 저질러진 일이었고, 단지 둘째가 속상해한다는 이유만으로 첫째에게 맨날 둘째 뒤로 걸어가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평소에 첫째는 그런 둘째를 배려해 뒤에 걸어가 준 적이 많았다.)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데 아이는 계속해서 “엄마아!!!!” 하면서 울고 소리를 질렀다. 자전거를 타고 보도블록 턱을 넘어 올라오지 못하는 아이를 잡아주려는데 아이는 아니라며 화를 냈다. 잡아주는 것도 싫고, 안 잡아주고 가는 것도 싫고.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울 뿐이었다.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몰라 나도 결국 큰소리를 냈다. ”엄마 뭐!! 엄마 왜!! 엄마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야!! 울지 말고!!! 엄마한테 어떻게 말해야 돼?!!!! 뚝해!! 너만 소리 지를 줄 알아?!! 그렇게 하면 엄마 갈 거야!!”
나는 알고 있었다. 아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넘어져있는 아이의 자전거와 우는 아이를 뒤로 하고, 먼저 앞서 걸어가는 나를 필사적으로 붙잡으며 우는 아이의 표정에서 나는 읽을 수 있었다. “엄마가 나를 달래주고, 안아주면 좋겠어요. 나한테 괜찮다고 말해주며 내 자전거를 챙겨 와 주면 좋겠어요.” 그런데 애석하게도 나는 그런 아이의 마음을 뻔히 알면서도 받아줄 수가 없었다. 내 마음에 그것을 이해해 줄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에게 계속 요구했다. “울지 말고 엄마한테 제대로 말해!” 아이가 자신을 누그러 트리고 나에게 예의 바르게 부탁하기를 바랐다. 아이에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다는 것은 나도 에너지가 없다는 뜻이다. 아이가 지금 이 상황에서 눈물을 그치고 나에게 똑바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도 지고 싶지 않다는 것은 내가 상태가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이도 아이지만, ‘내가‘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아이와의 실랑이를 포기하고 둘째를 안아주었다. (자전거는 첫째가 타고 와주었다.) 아이는 금방 울음을 그쳤다. 하지만 나는 또 아이를 울리고 말았다. 오늘이 내가 자유시간을 갖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는 짐을 챙겨 나가려고 하는데, 아이가 가지 말라며 나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나가야 했다. 반드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그렇게 충전을 해야만 나는 아이를 다시 받아줄 에너지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저녁식사를 하는 내내 나는 아이에게 기분 나쁜 티를 계속 냈다. 아이는 눈치를 채고 나에게 애교 섞인 표정과 몸짓으로 아까는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했지만 나는 그것을 제대로 받아주지도 못했다. “그러니까 엄마한테 울고불고 짜증 부리면 돼 안 돼!” 하면서 아이를 다그칠 뿐이었다. 그런데도 아이는 그렇게 자기를 차갑게 대하는 엄마라도 붙잡고 싶은 모양이었다. 평소에는 일주일에 하루 자유시간을 나가는 내가 익숙하기에 전혀 미련도 없이 나를 보내주는데, 오늘은 버선발로 엘리베이터 앞까지 쫒아나와 울었다.
결국 나는 다시 신발장 앞으로 들어가 아이를 진정시키고 말했다. “여름아 뚝하고 엄마 눈 봐봐. 목요일은 엄마가 자유시간을 갖는 날이야. 그래서 엄마는 나가야 해. 여름이가 아빠랑 집에 있으면 엄마가 있다가 올 거야.” 아이는 몇 초 동안 내 말에 집중을 했지만, 이내 다시 눈물을 보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일분 있다가 와!! 일분 있다가 와!! “ 그 애처롭고 다급한 몸짓과 표정은 마치 내가 아이를 버려두고 떠나는 것과 같은 모양을 띄게 했다. 내 맘도 그만큼 심란했지만, 나는 아빠에게 붙들려 나를 향해 오열하는 아이를 두고 현관문을 닫았다. 마치 몹쓸 계모가 된 기분이었다. 결코 유쾌하진 않지만 나는 이 시간이 나에게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미련 없이 나왔다. 하지만 나는 카페에 도착해서도 한참 동안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다. 이 마음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랐다. 남편에게 둘째가 잠들었다는 카톡을 받고 나서야 차츰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내가 아이와 아이의 감정을 분리시켰듯이, 나도 나 스스로에게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못된 엄마라서, 내가 모자란 사람이라서 아이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낸 것이 아니다. 나도 첫째가 학교에 가고, 둘째가 유치원에 가서 적응을 하듯이 나 또한 그런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느라 에너지를 많이 썼던 것이다. 그래서 나도 조금 지쳤던 것뿐이다. 나는 여전히 아이들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다만 아이들에게 그 사랑을 적절하게 보여줄 에너지가 조금 부족해졌을 뿐이다. 이렇게 나만의 시간을 갖고 충전을 하고 나면 나는 또다시 아이들을 충만히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괜찮다. 괜찮다.
아이를 이해해 주듯이 나를 이해해 준다면 나는 못할 것이 없다!
여름아, 너도 유치원 적응하느라 힘들지?! 엄마도 힘들다 ㅋㅋㅋㅋ 그렇지만 우린 잘 해낼 거야! 엄마 충전 완료다! 엄마 이제 집에 갈게!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