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인 나도 해주지 못한 것들.
둘째까지 하원시키고, 아이 둘을 데리고 나는 놀이터 원정을 갔다. 우리 집에서 좀 거리가 있는 곳에 있는 놀이터였지만, 짚라인 놀이기구가 있는 놀이터라 첫째가 좋아하는 곳이었다. 골목 안쪽에 있는 곳이라 그런가, 주변에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 없는 건가 매번 갈 때마다 사람도 없어서 아이가 짚라인을 실컷 탈 수 있었다. 오늘도 역시 모래놀이를 하는 어린아이 하나와 그의 할머니뿐 짚라인을 타는 사람은 없었다. 첫째는 신이 나서 짚라인 놀이기구를 타기 시작했다. 둘째는 아직은 짚라인 놀이기구를 좀 무서워했다. 그래서 혼자서 타지는 못하고 내가 잡은 상태로 끝까지 갔다가 와주어야 했다. 아이는 기구를 타면서 날더러 손을 놓지 말고 끝까지 잡고 있으라고 당부했다. 나는 당연히 그렇게 해주었다. 하지만 둘째는 한 번 타고는 말아버렸다.
한참을 놀이터에서 이것저것 하고 놀다가 내가 이제 해가 지면서 추워지니 그만 집에 가자고 했다. 아이들은 아쉬워했다. 나는 아쉬워하는 아이들에게 짚라인을 한 번씩 더 타고 가자고 했더니 아이들은 신이 나서 짚라인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의외로 둘째가 날더러 짚라인을 두 번 타고 가면 안 되겠냐고 하는 게 아닌가. 또 금방 아이는 말을 바꿨다. “아니, 5번!” 나는 무서워서 혼자 타지도 못하면서 5번 더 타겠다고 하는 둘째가 의아했지만 그러라고 했다. 괜히 집에 가기 싫으니까 타지도 않을 짚라인을 많이 타겠다고 우기는 거라 생각했다. 그러고는 나는 바로 앞 다른 놀이기구에 걸터앉아 아이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나는 아이들을 보고 좀 놀랐다. 둘째가 짚라인을 타는 게 아닌가! 첫째가 둘째가 기구에 앉는 것을 잡아주며 도와주긴 했지만, 둘째가 앉은 뒤에는 기구를 밀어주고는 손을 놓았다. 둘째 아이는 그렇게 짚라인에 매달려 혼자 줄 끝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누나가 손을 놓아도 전혀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까는 날더러 손을 놓지 말라며 겁을 먹은 것 같았었는데, 몇 분 사이에 겁이 없어진 건 왜일까?
그러고 보니 아까 내가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사이 아이 둘은 짚라인에서 놀고 있었다. 아마 동생을 잘 챙겨주는 첫째가 둘째를 태워줬을 것이다. 그런데 둘째의 무게도 있고 짚라인이 움직이는 속도도 있어서 첫째가 끝까지 짚라인을 탄 둘째를 잡아주고 있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아이는 손을 놓았을 테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둘째는 혼자 짚라인을 타게 된 것일 테다. 그런데 막상 타보니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 한 번의 경험으로 아이는 짚라인을 전처럼 무서워하지는 않게 되었다보다. 누나 덕분이었다.
그렇게 신나게 짚라인을 타는 아이들을 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둘째가 계속 나랑만 둘이 짚라인을 탔더라면? 나는 아이를 위해 끝까지 짚라인을 계속 잡아주었을 테고, 결국 아이는 혼자서 짚라인을 타는 재미를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누나랑 둘이 있으면서 아이는 짚라인을 혼자 탈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어린이는 더 할 줄 아는 것이 많은 어른과 함께 있을 때보다, 더 할 줄 아는 것이 적은 어린이와 함께 있을 때 성장하는 것은 아닐까? 어른인 나는 내가 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가 서툰 것들을 바로바로 대신해줄 때가 많다. 그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해결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어른인 내가 대신해 줌으로써 아이는 스스로 해 볼 수 있는 (잘하지 못하더라도) 기회를 박탈당한다. 그러니 스스로 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같은 어린이랑 함께 하면 그 어린이도 모든 것을 도와줄 수는 없음으로 아이는 스스로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 기회를 통해서 아이는 어떠한 것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조금 아까는 그런 일도 있었다. 놀이터에 있는 운동기구들 중에 말안장처럼 올라앉을 수 있게 생긴 기구가 있었다. (아마도 올라앉는 게 아니라 스트레칭할 때 쓰는 기구 같았다.) 아이들은 그게 버스라며 올라타서 놀고는 했는데, 둘째는 아직 키가 작아 혼자 올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안아 올려 앉혀 주었다. 한 번은 첫째가 둘째를 들어 안아 올려주려고 애써보았지만 역부족이었고, 첫째는 둘째에게 ”엄마를 기다려야겠다. “라고 말했다. 그런데 한 번은 내가 잠깐 다른 것을 신경 쓰고 있는 사이 아이들이 “버스놀이 하자!” 하면 그쪽으로 뛰어가버렸다. 내가 뒤늦게 뒤따라가보니 둘째가 이미 그 기구에 올라앉아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올라갔어? “ 하고 물었더니 ”내가 혼자 올라왔어!”하고 별 것 아니라는 듯 대답하는 둘째. 누나랑 둘만 있는 상황이 되자 아이는 스스로 붙잡고 기어올라가는 도전을 했던 것이다. 그 역시 어른인 내가 없었기 때문에 아이는 스스로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나의 짧은 생각으로는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할 줄 아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알려주고 도와주어야 그가 성장할 것 같지만(즉 어른이 어린이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고 도와주어야 할 것 같지만) 아닌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때로 어린이는 어른이 아닌 다른 어린이랑 있을 때 더 많은 것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도와줄 수 있는 어른과 함께 일 때 보다 (다) 도와주지 못하는 어린이와 있을 때 아이는 비로소 성장한다. 그것이야 말로 값진 배움이 아닌가! 무언가를 스스로 할 수 있게 되는 것. 그 얼마나 짜릿한 성취감인지! 어린이를 성장시키는 어린이! 역시 오늘도 어른인 나는 어린이들에게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