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진짜로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 아침에 이상한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유실물종합관리시스템]이라는 제목의 문자였다. 내용을 보니 이러했다. 내 가방을 지구대에서 보관 중이니 안내된 번호로 연락해서 찾아가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으레 보이스피싱 문자겠거니 하고 무시하려고 했다. (일단, 내 이름이 ‘장새미’인데, ‘장세미’라고 잘못 적혀 왔다.) 그러다 주변 지인들에게 이런 이상한 문자가 왔다며 문자 내용을 캡처해 보여주었다. 그런데 동생이 이상하다며 진짜 해당 지구대 번호가 맞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문자에는 가방 브랜드 이름이 함께 적혀 있었는데, 아는 언니가 저런 가방이 있냐기에 저게 무슨 브랜드인가 하고 검색을 해보았다. 그렇게 그 브랜드 홈페이지에서 가방들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아차!!!!‘ 퍼뜩 떠오르는 내 가방이 하나 있었다!
까만색 손가방이었는데, 어제 들고나갔던 가방이었다! 나는 부랴부랴 집안을 둘러보며 그 가방을 찾아보았다. 없다!!! 가방이 없다!! 그렇다면 이 문자가 보이스피싱이 아니란 말이야?!!!! 갑자기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어떻게 가방을 두고 왔을 수가 있지?! 나 자신을 의심하면서도 더 소름이 돋는 것은 내 가방 안에 아이패드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아!! 아이패드!!!!’ 이번엔 온몸에 피가 쏙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 어떡해ㅠㅠㅠ…. 아이패드랑 지갑이랑 다 들어있는데 ㅠ 어떡해!!!!!ㅠㅠㅠ’ 빠르게 어제의 상황을 되돌아본다. 집 근처 공원 놀이터였다. 거기서 둘째 어린이집 친구를 만나 놀다가 다 같이 우리 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더랬다. 애 셋에 자전거 두대, 아이 유치원가방, 그리고 아이들이 벗어놓은 잠바까지 정신없이 챙기다가 내 가방을 놀이터 앞 벤치에 두고 온 모양이었다. 하…. 하필 어제 공원 근처 미용실에서 둘째 커트를 하느라고 아이패드를 챙겼었는데… 아이패드도 들었으니 가방을 더 잘 챙겨야지 생각까지 해놓고는 정작 공원을 떠날 때 내 손에 가방이 없다는 걸 몰랐다니… 몰랐다니… 몰랐다니!!!!! 망연자실이라는 말은 여기서 쓰는 것일 테다. 아 어쩌지!!!
문제는 그 시각 나는 둘째 등원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애가 자꾸만 자기 머리에 분무기로 물을 뿌리며 장난을 친다.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버럭 큰소리를 냈다. “머리에 물 그만 뿌리라고 했지!!!” 갑자기 커진 언성에 아이가 놀라 분무기를 팽개치고 눈물을 보인다. “엄마가 나한테 화내써ㅠㅠㅠㅠ 안아줘 ㅠㅠ 엄마ㅠㅠㅠ안아줘 ㅠㅠㅠ” 하…. 신이시여 ㅠㅠㅠ 울고 싶은 건 나라고!!!ㅠㅠㅠ 일단은 해당 지구대 번호를 검색해 보고 전화를 걸었다. 오늘 아침에 문자를 받았고 까만 가방이라고 했더니, 안타깝게도 내 가방이 분실물로 들어온 것은 맞는데 좀 전에 지구대에서 경찰서로 인계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경찰서 해당 관할 부서 번호를 받아 적어야 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진짜로 궁금한 것은 그 가방 안에 아이패드가 있었는가 하는 사실이었다. 나는 혹시 가방 내용물 중에 아이패드가 있었냐고 공손히 물었고, 천만다행이도!!!! 아이패드가 있었다고 답변을 해주셨다 ㅠㅠㅠㅠ 흐엉 ㅠㅠㅠ 그럼 됐다ㅠㅠㅠ 할렐루야 아멘이다!!ㅠㅠㅠㅠ
일단은 한시름 놨지만 나는 여전히 제정신은 아니었던 것 같다. 우선 등원을 시켜야 하는 둘째를 준비시켜 나왔다. 그런데 비가 오는데 자전거를 타고 가겠다고 우기는 둘째ㅠㅠ 첫째 등교 할 때는 비가 거의 안 오긴 했는데 ㅠ 그래도 비가 올지 모르는데 자전거라니 ㅠㅠㅠ 나는 둘째와 실랑이할 에너지도 없었다. 일단 자전거 갖고 엘리베이터 타! 하고 1층에 내려왔는데 아까보다 빗줄기가 굵어졌다. 제법 비가 오는 걸 보고도 둘째는 자기는 비 맞는 거 좋아한다며 말도 안 되는 소릴한다ㅠㅠㅠ. 도저히 맞고 갈 양은 아닌 것 같아 아이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올라갔다. 자전거를 두고 내려와 우리는 차를 탔다. 그렇게 차로 둘째를 데려다주고 나는 경찰서로 향했다. ‘아이패드도 있다는데, 지갑도 있겠지?ㅠㅜㅠ‘ 하면서 떨리는 마음으로 경찰서에 다다랐고 나는 무사히 가방을 찾을 수 있었다. 담당 직원분도 이렇게 중요한 물품이 많이 든 가방을 어쩌다 두고 가셨냐며 걱정 어린 미소를 보이셨다. 나는 아이들 챙기다 저도 모르게 두고 왔던 거 같다고… 실은 문자가 오기 전까지 가방이 없어진 것도 몰랐다고…. 이렇게 정신없는 나를 탓하는 듯 한 답변을 드렸다. 그런 내가 안쓰러우셨는지 “아이들 안 잃어버렸으면 됐지요^^;” 하고 웃으신다. 그래도 가방을 내용물까지 그대로 찾아서 너무 다행이라고… 맞아요 ㅠㅠㅠ 감사합니다 ㅠㅠ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그래,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 비싼 기기가 들은 가방을 그대로 지구대까지 가져다준 (누군지 모를) 그 착한 시민분께도 곱절 세 곱절 감사드릴 일이다. 그리고 가방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어젯밤이 아니라 오늘 아침에 알게 된 것도 감사했다. 어젯밤에 미리 알았더라면 밤새 한숨도 못 잤을 것 아닌가. 아니면 이곳저곳 찾아다니느라 진땀을 뺐겠지 ㅠㅠㅠ 이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동동거린 것도 놀란 가슴이 쉬이 가라앉지가 않는데 밤새 그랬을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그렇게 나의 가방 분실 사건은 아름답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일을 일기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노트를 펼쳐두고 앉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잃어버린 가방은 찾았는데 말이야… 내가 잃어버렸는데,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고 사는 게 뭐가 있을까?‘ 이런 질문이 말이다. 그 질문을 노트에 적어 놓고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해 낸 답은 이것이었다. [남편과의 대화시간] 그래, 잃어버렸었는데 잃어버린지도 모르고 있었던 그것은 남편과의 대화시간이었다. 남편과 둘이 앉아 대화를 나눈 적이 언제였던가. ‘내 시간’은 어떻게든 확보하려고 남편과 나는 서로 일주일에 하루씩 저녁에 자유시간을 마련해주기도 하고,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어떻게든 읽고 싶었던 책을 읽거나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말이다. 서로의 ’개인적‘ 시간은 이제 제법 잘 챙겨주는 것 같은데, 막상 우리 둘이 함께 하는 시간은 잃어버린 것이 아닌지… 그래 맞아! 내가 잃어버렸는데 잃어버린지도 몰랐던 건 그건 거 같아…. 내 짝꿍과의 시간…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은 이랬다. 그럼 그건 잃어버렸다고 누가 문자로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찾아서 보관해두고 있어 주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찾아야 할까? 대화 시간을? 날짜를? 요일을? 정해두어야 하는 걸까? 음… 그렇게 정해두는 것도 좋은 생각이지만… 음… 그래! ‘데이트 데이‘를 마련하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야 온전히 두 사람이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겠다 싶었다. 문제는 데이트를 하려면 아이 둘을 누군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마 그 이유가 우리가 장기간 데이트를 하지 못하고, 대화시간을 가지지 못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우리의 시간을 위해서 누군가가 대신 고생을 해야 한다는 점 말이다.) 그래도 잃어버린 것을 알았으니,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일단 가장 믿음직한 친정엄마에게 부탁을 드려보았다. 엄마는 주말에 아이들을 봐주시겠다고 했다. 아… 일단 잃어버린 것을 알았고, 찾을 방법도 마련해 두었으니 한시름 놓았다. 다행이다!!
가방을 잃어버렸다 찾은 건 정말 아찔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내 삶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건 아닌지 한 번쯤 돌아보게 했다는 것에서 나는 그 가방을 잃어버렸던 사건이 나에게 준 교훈이 더욱 값졌다고 생각한다. 오늘 아침에는 가방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닫고, 내가 그 가방을 공원 벤치에 두고 왔다는 사실에 (내가 그렇게나 정신이 없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자괴감이 밀려오기도 했으나, 나는 그 덕분에 더 값진 것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그래, 이렇게 가끔 문자가 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삶에서 잃어버렸는데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있는 게 있다면 그것을 찾아가라고 알려주는 문자 말이다. 그럼 문득 멍하니 서서 내가 무얼 잃어버렸더라? 하고 생각을 해볼 텐데 말이다.
가끔 보이스피싱 문자를 받을 때면, 오늘 일을 상기하며 내가 삶에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아야겠다. 어쩌면 우리는 가방보다, 아이패드보다 더 값진 것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