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알기는 어렵고, 그것을 전하는 건 더 어렵기에.
작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회 소그룹에서 한 주간의 근황을 나누는 자리였다. 나는 남편과 같은 소그룹이었는데, 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자기는 어떻게 지냈어요?“ 그런데 나의 그 질문이 같은 소그룹 멤버였던 동생에겐 굉장히 신선했었나 보다. (그때 그 친구는 미혼이었다.) 그 친구는 같이 사는 부부 사이에 어떻게 지냈냐고 질문을 하는 것이 제법 놀라웠다고 했다. 왜냐면 내가 형식적으로 묻는 게 아니고 진짜 (몰라서) 궁금해서 묻는 거라고 했기 때문이다. 진짜 나는 남편이 한 주를 어떻게 지냈는지 잘 알지 못했다. 물론 언제 무슨 일을 했는지는 대부분 알고 있지만, 그래서 어땠는지는 얘기를 나누지 못했다. 부부사이여서 함께 한 지붕 아래 살아도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대화 시간을 갖기란 생각보다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아이 둘을 키우면서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됐다.
지난 글에 나는 가방을 잃어버리는 사건을 통해, 남편과의 대화시간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썼다. 그리고 우리는 그 주 주말에 아이들을 맡겨두고 데이트를 했고, 오랜만에 둘에게만 집중하여 제법 긴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시간을 서로 좁혀지지 않는 의견을 두고 논쟁을 하는데 쓰고 말았다. 카페 마감시간까지 계속되는 논쟁에도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우리는 서로의 생각이 얼마나 달랐는지에 대해서만 더 뚜렷하게 확인하고는 아이들을 다시 데리러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후로 한동안 우리는 다시 그날의 논쟁거리들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나는 계속해서 마음속 한켠에 무거운 돌덩이를 얹고 사는 느낌이었고, 그 돌덩이를 내려놓고 싶었지만 내려놓을 방법을 쉽게 찾지 못했다. 서로 바쁜 일정 가운데서 섣불리 그 논쟁거리들을 다시 꺼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말을 아꼈다. 하지만 언젠가 어떻게든, 무슨 말이든 하긴 해야 했다. 그렇게 열흘이 지났고, 나는 문득 편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랑하는 남편 한규에게
안녕 여보. 요즘 어떻게 지내?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말 몰라서, 궁금해서 묻는 것이다. 부부 사이라 해도 깊은 대화 없이는 서로가 ‘진짜로’ 어떻게 지내는지 알기 어렵다.) 주말도 정신없이 지나고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눌 시간도 없었네. 나는 요즘 이상하게 마음이 불안해. 생리를 시작해서 호르몬의 영향으로 더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그 불안은 지난번 데이트에서 당신과의 대화가 그렇게 끝난 후로 계속되었던 것 같아. 나는 요즘 당신과의 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해.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이 관계에 만족하는가 등등. 지난번 A네 집에서 대화할 때 내가 그런 말을 했어. “나는 당신을 그만큼까지는 사랑하지 않는가 보다.” 다른 말로는 “당신을 그렇게까지 의지하지는 않는가 보다.” ‘사랑한다는 건 의지하는 것일까?‘하는 생각도 해보고 말이야. 그런데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맞지 않을 수도 있는 것 같아. 사랑에는 다양한 모양과 형태가 있으니까 말이야. 즉, 정답은 없는 거지. 내 불안은 아마도 당신과의 관계가 불안하다고 느끼는데서 기인한 것 같아. 내가 당신에게 내 솔직한 마음을 다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해. 사실 나는 내가 당신을 많이 의지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아닌 것 같아. 나는 당신에게 제법 의지해. 나는 혼자 씩씩하게 내게 주어진 일들을 다 잘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나 봐. (물론 그 생각이 틀린 건 아니지) 그런데 그게 잘 안되고 내가 바보 같은 실수를 할 때마다 (가령 에어컨 청소 일정을 착각했다거나 하는) 나 자신이 너무 싫고, 내 일상이 엉망인 것 같아서 싫어져… 그럴 때 나는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당신이 필요했던 것 같아. 삶이라는 게 사실 완벽하게 굴러가지 않고, 내 생각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가 참 많잖아. 그럴 때 말이야. 내 옆에서 날 도닥여주며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 나에게 당신은 늘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 그리고 나는 그런 당신이 필요해(하트)
이제는 내 일상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이 당신이고, 내가 제일 대화를 나누고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 사람도 당신이고, 내가 제일 의지하는 사람도 당신인 것 같아. 그런데 그동안은 내가 워낙 내 시간이 중요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많고, 내가 나를 많이 사랑해서 내가 그 사실들 (당신을 사랑하고 필요로 한다는 사실들)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 같아. 지난번 왜 당신은 B처럼 C앞에서 내 편을 들어주지 못했느냐고 원망했을 때도 말이야.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 봤는데 그때 당신의 그 행동이 아주 좋은 대처는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우리로써는 최선이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했어.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당신 탓인 것처럼 말해서 미안해. 그 문제에 있어서는 나도 받았던 상처들이 커서 냉정하게(?) 감정 없이 그 문제를 바라보기는 아직도 여전히 힘든 것 같아. 나는 늘 당신이 내 편이었다는 것을 알아. 그래서 고맙게 생각해. 그래서 이렇게 생각해 봤어. 그럼 나는 B 같은 남자랑 결혼하고 싶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아니더라고. 나는 당신을 선택했고, 그 이유는 당신이 무수히 많은 좋은 점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걸 다시금 생각했어. 설령 나와 C의 관계 안에서 당신의 대처에 조금 미숙하고 아쉬운 점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상쇄할 수 있는 다른 많은 장점들을 당신이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랑 지금껏 살고 있는 것 같아. 누구보다 다정한 당신이잖아. 그 다정함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당신의 보석 같은 면모지. 살아갈수록 파트너가 가지는 다정함이 관계에 얼마나 큰 윤활유 역할을 하는지 나는 많은 순간들에서 자주 느끼고는 해. 그리고 당신은 아이들에게도 그 다정함으로, 참 편안한 아빠지. 내가 우리 아빠랑 맺었던 관계보다 당신은 우리 아이들과 더 깊고 즐거운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나는 그 점에 무척 감사해.
그리고 당신이 나에게 건네는 그 다정한 말들도.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잘했어요.” 등등 물론 때로는 습관적으로 할 때도 있고, 별로 큰 의미를 두고 하는 말들은 아닐 때도 있을 수 있지만 일상 속에서 사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그 짧은 인사말들로 인해서 내가 얼마나 지지받고, 응원받고 있다고 느끼는지 당신은 모를 거야. 사실 나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 때가 많아. 늘 당신이 당연하게 해주는 그 말들에 나도 익숙해져서 소중하게 느끼지 못할 때도 많지. 하지만 내 일상 속에서 당신이 해주는 그 말들이 사라진다면 내 삶은 건조해져서 내가 쉽게 바스러질지도 모르지. 그래서 다시 한번 나는 당신의 그 다정함이 감사해.(하트) 그리고 늘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당신도 고마워.(하트) 내 탓을 하지 않고, 내 부족함을 지적하지 않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당신이 있어서 나는 다시 힘을 내고 일어서고, 그렇게 내가 서 있어야 할 곳에서 서 있을 수 있는 것 같아.(하트) 결혼반지도, 해외여행도 사실은 우리 관계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들이 아닌데, 비본질적인 그런 것들이 본질적인 것들을 (우리의 관계, 마음, 사랑 이러한 본질을) 망가트리고 속상하게 한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고 불편했어. 그래서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사실 이 편지에 적은 이런 이야기들이었던 것 같아. 우리 두 사람 모두 실수할 때도 많고, 완벽하지 않을 때도 많지. 당신이나 나나.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이 만나 함께 손잡고 사는 것이 아닐까 싶어. 그리고 나는 그런 나의 짝꿍이 당신이라서 참 좋아.(하트) 이 말을 하고 싶었어. 진심을 알아간다는 건 그리고 그 진심을 상대에게 전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 그래서 나는 이 편지를 쓰는 내내 그렇게 많이 울었나 봐.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 나눴더라면 더 좋았을까? 아마 우느라 제대로 말을 못 했을지도 몰라ㅋ 이 편지로 내 마음이 온전히 전해질까? 그것도 나는 장담할 수 없지만 당신이 내 맘을 알아주리라 믿어. 당신은 나를 사랑하고 나도 당신을 사랑하니까.(하트) 사랑해! 고마워! (하트)
-당신의 사랑 새미가-
나는 이 편지를 쓰면서 비로소 열흘간 고민하던 내 진심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많은 눈물을 동반했다. 그 눈물은 아프기도 했지만, 시원하기도 했다. 슬프면서 동시에 기뻤다. 눈물에 맛이 있다면 몇 가지 맛인지 세다가 손가락이 모자랄 그런 맛이 나는 눈물이었다. 그렇듯 내가 내 진심을 알아가는 것도, 그 진심을 전달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다. 무수한 감정이 눈물이 되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고, 그 눈물을 닦아내며 종이에 적어 내려 가는 문장들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완벽하게 진심이었다. 나는 이 편지를 남편에게 전했고, 남편은 내 진심을 제대로 받은 듯했다. 그 이후로 내 맘속 돌덩이는 사라졌고, 우리의 관계는 다시금 따스해졌다. 어쩌면 우리는 부부사이 이기 때문에 서로의 진심을 알 것이라 착각할 때가 많다. 그러다 우리는 뜻밖의 대화에서 서로의 생각이 상당한 거리가 있었음을 느끼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나도 ‘제대로‘ 알기 어려운 내 마음인데, 가족이라는 이유로 상대가 당연하게 알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그래서 때로 위험하다.
그렇게 때문에 (매일 보는 사이여도) 우리는 서로에게 종종 물어야 한다. 어떻게 지내냐고. 그리고 나는 어떻게 지낸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말해주어야 한다. 영화 러브레터의 대사처럼 말이다. ”오겡끼데쓰까? “ “와타시와 겡끼데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