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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Mar 26. 2021

진짜실수는 엄마아빠가 한거야

네 잘못이 아닌데 네 잘못이 되게 해서 미안해

얼마 전 있었던 일이다.

나는 욕실(욕실+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고,

(실은 샤워를 마치고 타올로 머리를 말리고 있었고)

남편이 아이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아이가 쉬가 마렵다며 화장실 앞으로 왔다.

당연히 남편은 욕실에 엄마가 있으니 

아이가 용변을 보는 것을 도와줄 것이라 생각했고,

나는 당연히 아이를 보던 남편이 

용변 보는 것을 도와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이 서로를 ‘오해'하고 있는 사이

아이는 참지 못하고 화장실 앞에서 바지에 오줌을 싸버렸다.

(평소에는 어느정도 잘 참는 편인데 아주 급할 때 왔나보다.)


당황한 나는 소파에서 핸드폰을 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에 화가나 애 안보고 뭐 했냐며 핀잔을 주었다.

마찬가지로 당황스러웠던 남편은 엄마가 화장실에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반박했다.


그렇게 서로를 탓하는 말이 오가는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

바지에 오줌을 싸 본인 스스로도 퍽 난감했을 아이는

급기야 자신의 실수로 인해 다투는 부모를 봐야하는 더 큰 난감함을 겪었다.


결국 아이는 마음이 상했다.

옷을 갈아입고는 방의 구석진 곳에 들어가 (노는게 아니라)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며

자신을 쫓아 들어온 아빠를 외면하고 있었다.

아이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아빠가 괜찮다고 말을 걸었지만 아이는 괜찮지 않았다.

그러고는 실수해도 괜찮다는 아빠의 말에 “아니야 실수하는 건 나빠!”라고 대답했다.


아빠는 아까보다 더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그제서야 ‘진짜’ 실수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바지에 오줌을 싼게 실수가 아니었다.


그것이 설령 실수라 하더라도 그런 실수를 하도록 만든건 부모였다.

아이는 도움이 필요해 왔는데, 

부모 두사람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느라 아이의 요청을 무시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잘못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남편과 서로 심하게 싸운 것도 아니고 몇마디 핀잔섞인 말을 주고 받았을 뿐 

서로 금방 풀어져 (당황해서 그랬던 거라고 미안하다며 서로를 안아주었다.)

상황이 종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아니었다.


아빠의 노력에도 방에서 나오지 않는 아이에게 엄마까지 출동했다.

남편과 서로 눈빛을 주고 받은 뒤, 우리 두사람은 모두 아이에게 사과를 했다.

네 잘못이 아니라고, 엄마아빠 잘못이라고 미안하다고 여러차례 이야기 했지만

아이는 이 주제에 대해 더이상 이야기 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여전히 아이는 우리의 얼굴을 돌아봐 주지 않았다.


뒤늦게 남편과 나는 우리가 진짜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수라는게, 내 실수에 누군가 “괜찮아~”하고 넘어가 줘도 속상하기 마련인데,

내 실수 때문에 누군가가 언쟁을 하게 되었다는 건 속상함이 배가되는 일인 것이다.


상황을 이렇게 만든 자신을 나쁘다고 표현하는 아이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이의 마음이 어떻게 마무리 지어진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그저 미안하다 사과할뿐…


가끔은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이토록 명확하게 표현할 때 당황스럽다.

나와 아이는 같은 상황도 다르게 해석하고 느낄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나의 말과 행동이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것.

언제나 그래 왔겠지만, 이렇게 명확한 피드백이 올 때 그것은 분명해지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순간이 된다.


이제는 의식주를 넘어서는 그 다음 레벨의 육아를 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언제나 육아는 의식주 그 이상이지만) 

아이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안다. 

부모가 언제나 옳은 것이 아님을,

아니, 때로는 부모가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후 방에서 나온 아이에게 다시 사과를 했다.

네 잘못이 아니라 엄마아빠의 잘못이라고, 너를 속상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해 가을아, 엄마아빠가 실수 했어. 네 잘못이 아니야~”


그리고 남편과 약속했다. 아이 앞에서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조심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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