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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Sep 20. 2020

아이에게는 쉽고 어른에게는 어려운 것

흔한 말이지만 우리는 잘 하지 않는 말


아이의 말에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이제 고작 두 돌도 안 된 아이다. 아이는 거창한 말을 할 줄 모른다. 그냥 흔하디 흔한 말인데, 이상하게 그 말들이 그렇게 마음에 ‘쿵’하고 진동을 일으킬 때가 있다. 그 말은 바로 “고마워.”와 “미안해.”다. 아이는 이 말을 생각보다 자주 한다. 내가 무언가를 건네주면 “고마워.”, 나와 살짝만 부딪혀도 “미안해.”가 자동으로 나온다. “하우알유?” 하면 “아임파인땡큐앤유?”가 자동으로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 습관적 인사가 왜 감동씩이나 주는 것일까?

당연히 고마워해야하는 일일 때, 당연히 미안해해야하는 일일 때 하는 고맙다는 인사와 미안하다는 사과도 때론 감동일 수 있다. 하지만 진짜 감동은 그 반대의 경우 더 거대하게 몰려온다. 고마워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일 때 말이다. 


아이는 아직도 스스로 하기 어려워하는 것들이 많다. 높은 의자에서 내려주거나, 옷을 입혀주거나, 꺼내기 어려운 물건을 꺼내주었을 때 아이는 나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새로운 반찬 없이 늘 반복되는 메뉴에도 아이는 고마워하고, 어쩌다 사탕이라도 쥐어주면 세상 행복한 “고마워~”를 한다. 하루는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검색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놀아달라는 듯 옆에서 계속 말을 걸고 무언가를 요구하는데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더 이상 나를 귀찮게 하지 않았으면 싶어서, 주변에 아이가 흥미로워할 만한 물건을 찾아 건네주었다. 그런데 아이가 너무 다정하고 즐거운 목소리로 “고마워~”하는 것이 아닌가. 얼굴도 보지 않고 대충 쥐어준 잡동사니에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나는 늘 당연하게 해주어야 할 것을 해주면서도 고맙다는 말을 듣고, 아이를 위해 한 것이 아닌 일에도 고맙다는 말을 듣는다.


하루는 베란다에서 분리수거를 하다가 벽에 이마를 부딪었다. 아픔은 쉽게 분노를 일으킨다. 분리수거를 똑바로 하지 않아 일을 두 번 하게 만든 남편에게 화살이 날아간다.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며 방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아이가 따라 들어와 묻는다. “엄마 아파?” 놓쳤던 이성의 끈을 황급히 붙잡고 아이 앞에 앉아 대답했다. “응 엄마 이마가 너무 아파.” 그러자 아이가 다가와서 내 이마를 만져주며 말했다. “미안해~.” 예상치 못한 답변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그건 네가 미안해 할 일이 아닌데, 오히려 소리를 버럭 지른 내가 미안하지... 네가 왜 사과를 해...’하는 마음들이 채 올라오기도 전에 아이는 내 등을 토닥이며 “괜찮아~”하는 위로의 말을 덧붙인다. 결국 주저앉아 바보 같이 울었다. 이마보다 더 세게 부딪힌건 마음인 것 같다. 이런 위로는 처음이다. 


나는 덜렁거리다 부딪히기를 잘하는데, 아이는 그럴 때 마다 내게 와 아픈 곳을 쓰다듬어주며 “미안해~”라고 말한다. 상황에 맞지 않는 이 말은 들어도 들어도 감동이다. 그 밖에도 아이는 집 안을 돌아다니다 나와 부딪혔을 때, 바로 “미안~”하며 사과한다. 아이와 내가 부딪혀도 사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심하게 휘청이게되고 충격을 받은건 본인인데도 사과는 나보다 더 빠르다. 사촌오빠와 놀다 다투어 오빠가 아이를 밀쳤다. 혼이 난 오빠는 사과하라는 엄마 말에 아이 앞에서 삐쭉거린다. 그러면 아이는 다가가 오빠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미안~” 본인에게 사과하라는 말로 오해해 그렇게 말한 것일 수도 있지만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기꺼이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아이는 어떻게 저런 말들을 저렇게 자연스럽게 구사하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그 원인은 나였다. 내가 아이에게 그 두 마디를 참 많이 구사했던 것이다. 아이가 물건을 건네주면 그게 내가 부탁한 물건이 아니거나 필요 없는 것을 엉뚱하게 가져와도 고맙다고 인사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어도 도우려는 의도를 가지고 한 행동이라면 “고마워.” 하다못해 오줌을 쌌는데 그게 이불 위가 아니라는 사실에도 고마워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어떨까? 내가 아이의 말을 잘 못 알아들었을 때 “미안해.” 나 때문에 다친게 아니어도 “미안해.” 아이가 다칠 뻔 하기만해도 “미안해.” 내 탓이 아니어도 미안하다는 말을 참 쉽게 했다.


그렇다면 아이의 습관적 고마움과 미안함은 나에게서 배운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게 되니 한편으로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사실 나는 그 말을 습관처럼 뱉어내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말 내가 고마워해야하는 사람, 내가 미안해해야 하는 사람에게 그 짧은 두 마디를 뱉어내지 못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내가 진짜로 해야 할 때 하지 못한 그 말을, 그 말을 안 해도 되는 아이에게 돌려받았을 때 오는 그 아린 마음은 진동의 폭이 컸다. 아이가 주는 감동처럼 내가 누군가에게 그 두 마디로 ‘감동’을 전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마음’만은 전했어야 했다. 그랬어야했다.


“미안해.” “고마워.” 이렇게 흔한 말이, 거창하지도 길지도 않은 이 두 마디가 사실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흔하지 않은 말이었다. 참 거창한 말이었다. 입술 밖으로 내뱉어 상대에게 당도하기 까지 참 긴 시간이 필요한 말이었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분명히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말은 하루에도 수십 번 씩 습관처럼 뱉어내야 할 흔한 말이어야 하는 것이다. 어려운 말이 아니라 쉬운 말이어야 하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살짝 부딪혀도 “미안합니다.” 편의점을 나서며 아르바이트생에게 “고맙습니다.”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내 아이를 봐준 친정엄마에게 “고마워요.” 육아가 힘들다는 이유로 나의 까칠함을 받아냈던 남편에게 “미안해요.”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가르쳐 준 건 나인 것 같아도, 나는 또 아이에게서 배운다. 어른은 결국 또 아이에게서 배운다. 자꾸자꾸 습관처럼 말해야겠다. 고맙다고...미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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