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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새미 Aug 23. 2020

아이의 우는 얼굴에서 내 우는 얼굴을 보았다.

내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든 아이

나는 화가 나있었다. 오전부터 남편과 사소한 말다툼이 이어졌고 스트레스와 분노 그 어디쯤을 헤매며 하루 종일 차가웠다 뜨거웠다를 반복하던 나는 결국 남편에게 폭발하고 말았다. 아이를 재우려고 함께 방에 앉아있는 상황이었다. 내 감정을 그때그때 다 표현하는 타입인 나는, 뜨겁게 달아오른 분노를 그대로 분출했다. 내 자신조차 그 분노에 휩싸여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아픈 말들을 남편에게 던지고서 나가라고 소리쳤다.
“나가라고!!!!!!!”

남편이 나간 뒤에도 나는 쉽사리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했고, 아이가 빨리 잠들어 ‘육퇴(육아퇴근)’를 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내 맘도 모르고 아이는 조만간 거실에 나가겠다고 때를 썼다. 이미 평소 자던 때 보다 더 늦은 시간이었고, 내 ‘육퇴’가 더 늦어지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날카롭게 얘기했다. “나가는 건 안돼! 빨리 자!”

그러자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거의 잘 그러지 않는데 유독 그 말에 아이는 격하게 울었다. 약간의 당황스러움과 함께 목놓아 꺼이꺼이 우는 아이를 안았다. 하지만 아이는 짜증과 분노를 담아 계속 울어댔다. 내 품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내려다보는데, 왠지 아이는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해서 우는게 아닌 것 같았다. 마치 내 안의 짜증과 화가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된 것 같달까...


순간, 심장이 저 밑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기분이었다. 등 뒤로 커다란 망치가 달려들어 쿵하고 부딪혔다. 아프다 못해 무서웠다. 아이의 우는 모습이 나와 너무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화나고 짜증날 때 감정이 격해져 어쩔 줄 모르며 우는 모습과 아이의 우는 모습이 소름끼칠만큼 똑같았다. 내가 나를 안은채 내려다보는 기분이었다.

그건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내가 그렇게 울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아이가 나대신 울고 있었다.

나의 그 무거운 감정이 아이를 짖눌러 힘들게 한다는걸 눈으로 보니 처참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은데, 돌이킬 수 없었다. 그저 우는 아이를 안고 있을 뿐이었다.

나의 솔직한 감정표현은 아주 가까운 가족들에게로 한정되어있었고 내 화가 나만 힘들게 하는게 아니라, 우리 엄마도 내 남편도 힘들게 한다는 걸 알았지만 미안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 생각했다. 내가 그런 사람인걸 어쩌겠나. 아이에게도 부드러운 엄마가 되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는 아이도 내가 그런 사람인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제법 받아들였다고 느꼈었다. 내가 큰소리를 내도 별로 동요하지 않았고, 예민하지도 않고 무던한 아이였다.

하지만 아니었나보다. 아이는 내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고 있었던 거였다. 기쁘면 기쁜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나는 그날 내 분노와 슬픔이 내 아이를 힘들게 하는 걸 너무나 선명하게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아팠다. 그리고 무서웠다. 나조차 내 자신이 무서웠다. 내가 내 화를 다스리지 못해 불이 붙었는데, 그 불이 내 아이에게 옮겨 붙어 아이가 울부 짖는다.

아이를 더 꽉 끌어안았다. 어찌할 바를몰라 계속 계속 미안하다고 했다. 큰 소리 쳐서 미안하다고, 너에게 화를 낸게 아니었다고,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주문을 외듯 중얼거리며 우는 아이 귀에 대고 말하고 또 말했다. 아이는 울다 지친듯 겨우겨우 진정이 되었지만 내 심장은 여전히 묵직하고 쓰라렸다. 숨을 헐떡이는 아이를 계속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내 자신도 위로받고 싶었다. 아니, 용서 받고 싶었다.


진정된 아이를 눕혀놓고, 나도 그 옆에 누웠다.
“가을아, 엄마가 화내서 울었어?”
“응”
“엄마가 가을이한테 화낸거 아니야~ 

엄마가 큰소리 내서 미안해~”

정말 그 “응”이 그 “응”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에 대답에 난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이불속에 얼굴을 묻었다. 잠이 쏟아지는 아이를 깨우지 않으려고,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었다. 내 자신이 싫고, 이 상황도 원망스러웠다.  동안 아이가 받았을  수많은 감정들에 죄책감이 몰려왔다. 아이 앞에서 분출 됬던 ‘화’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다.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럼 엄마는 아이를 위해 모든 걸 참아야만 할까?아니다. 참으면 병된다. 엄마도 사람인데 그렇게는 힘들다. 하지만, 아이를  그렇게 울게 해야 한다면 적어도 아이 앞에서는 참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이었다. 남편과 엄마에게는 미안하기는 했어도 나의 그런 부분까지 받아주기를 내심 바랐다. 참을 수 있는거라면 참았겠지 안되는걸 어쩌겠나 그렇게 배짱을 부렸는데, 아이가 우는 모습에 무너졌다. 안되는거라도 애써봐야겠다 맘먹게 되는 것이었다.

그동안 아이의 우는 모습을 수도없이 많이 봐왔는데, 오늘의 그 우는 얼굴은 잊기가 힘들 것 같다. 아이의 우는 얼굴에서 내 우는 얼굴을  봤다는게... 이렇게 아프다. 네가 더 아픈건지 내가 더 아픈건지 모르게 아파서 자진해서 내 본성을 거슬러 보자고 무모한 다짐도 해본다. 안되도 해봐야지... 네가 그렇게 우는 얼굴을 또 볼 자신이 나는 없다.

오늘따라 엄마라는 이름이 무겁다. 아니, 무섭다.
이런 내가 엄마라니. 미칠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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