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내가 어르신을 이해하기까지
나에게는 알레르기가 있다. 신체적인 알레르기가 아니라 정신적 알레르기라고 해야 할까. 나는 유독 명령조의 말투에 민감하다. 구체적으로는 남이 나에게 내가 해야 할 것을 정해주는 것이 싫다. 나의 자율성이 박탈당하는 것,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기는 것이 나는 너무나도 싫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지난 어버이날을 기념해서 엄마가 외할아버지를 뵈러 가자고 했다. 예정에 없게 갑자기 물어보셨지만, 그것까지는 할아버지를 뵈러 가는 게 어떻냐고 물어봐주셨기에 괜찮았다. 그런데, 할아버지와 식당에서 식사하고 점심값은 동생과 나에게 내라고 하시는 거였다. ‘어버이날 선물’로 말이다. 좋은 생각이었고, 응당 밥 값을 낼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정해주는 게 싫었다. 선물이라는 건 주는 사람이 정하는 것 아니던가. 엄마의 그 말에 알레르기 반응이 올라왔다. (하지만 나는 당연히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심지어 나는 남편과 함께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중에 남편이 나에게 “밥 차리게 식탁 좀 정리해 줘요~”라고 하는 것에도 약간의 알레르기 반응을 느꼈다. 왜지? 왜 기분이 나빴지? 말투만 나긋하고 존댓말일 뿐이지 나에게 무언가를 시키는 말이기 때문이었나 보다. “식탁 좀 정리해 줄 수 있어요? “라고 물어봤으면 기분이 안 나빴으려나? 모르겠다. 물론 나는 이번에도 기분이 나빴다는 표현은 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식탁을 정리했을 뿐. 내가 알레르기 반응을 느낀다고 다 기분이 나빴음을 드러내진 않지만, 아무튼 나는 존댓말이든 아니든, 말투가 다정했든 아니든 누군가 나에게 해야 할 일을 정해주는 게 이토록 싫은 것이다. (이쯤 되면 그냥 내 문젠가?)
그런데 얼마 전 나는 정말 오랜만에 아주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시아버지의 카카오톡 메시지 때문이었다. 우리는 어버이날 기념으로 어머님댁에서 모이기로 약속을 이미 한 상태였다. (어머님이 손목이 아프셔서 나와 형님이 요리를 한 가지씩 해가기로 했었다.) 그런데 아버님께로부터 “(공지)”라고 시작하는 긴 메시지가 왔다.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가족모임 장소를 어머님댁에서 국립과천과학관으로 바꾸기로 함. 주차는 어디에 할 것. 만나는 시간 오전 9시. 가져올 것과 대략적인 일정까지.
함께 정한 약속을 바꾸는데 일언반구 전혀 상대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모든 일정과 장소, 활동까지 ’정해서‘ ’공지‘를 하신다는 것에 나는 사실 알레르기를 넘어 좀 충격을 받았다. 너무나도 낯선 이 소통방식에 놀란 것도 잠시, 나에게 강력한 알레르기반응을 일으키는 이런 ’ 명령‘들을 1,2,3,4 번호까지 붙여서 친절하게도 작성해 주셨다는 사실에 나는 잠시 뇌가 정지되었다. ’이게 뭐지???’
그러나 어쩌겠는가. “네 좋아요^^”하고 나는 일등으로 답장을 보냈다. 며느리로서의 정답(정해진 답변)이었다.
그러고는 며칠 뒤 아버님께로부터 또 한 번 장문의 메시지가 왔다. 이번에는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었다. 아버님은 첫째에게 인라인스케이트를 사주셨고, 그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까지 자신의 역할이라 생각하시는 듯했다. (형님댁 조카들도 포함이었다.) “스케이트를 맨 처음 탈 때는 무릎 구부리고, 자세 낮추고선 V자로 서선 --> 앞으로 걷다가 --> V자로 조금씩 앞으로 밀다가 ---> V자로 앞으로 밀면서 탐. 이것이 처음 타는 초급 방법임. “으로 시작해서 자세한 스케이트 타는 방법들이 장문의 메시지로 이어졌다. 이런 메시지들과 함께 아버님은 여러 가지 동영상도 함께 보내주셨다. 마찬가지로 알레르기반응이 왔다. 메시지를 읽기만 하는데도 숨이 턱 막혔다. 그냥 재밌게 타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반감이 올라오지만, “네 참고하겠습니다^^” 하고 재깍 대답을 한다. 하지만 나는 결국 남편에게 아버님의 메시지가 일으킨 나의 알레르기 반응에 대해 하소연을 했다. 누군가에게라도 말을 해야 했다. 으악!!! 힘들다구!!!!
그러다 나는 영화 한 편을 봤다. 여느 때처럼 넷플릭스에서 ’영화‘ 그리고 ’SF’를 클릭해서 우연히 골라본 영화였다. (그렇다 나는 SF영화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외계인이 나온다는 사실 말고는 SF영화적 요소가 없는 영화였다. 내용은 대충 이랬다. 작은 마을에서 틀에 박힌 하루하루를 보내는 외로운 노인이 있었다. 그는 시의회 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해 주민의견 발표시간에 매번 같은 의견을 제시한다. 동네표어를 바꿀 것과 특정구역에 건널목을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의회는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지만, (들어는 주지만 시행해주지는 않는다.) 그는 성실하게 계속 주민의견을 발표한다. 그러다 어느 날 그의 뒷마당에 UFO가 추락하고 그 안에서 외계인이 나와 쓰러진다. 그는 신고도 해보고 자녀들에게 연락도 해보지만 소방서는 그의 말을 장난 전화로 여기고 자녀들의 음성메세지함은 꽉 차서 그의 메시지가 가닿지 않는다. 결국 그는 외계인을 집으로 들이게 되고, 그와 친구가 된다. 말도 통하지 않는 외계인이 노인과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영화에서 외계인은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는 노인 주변의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의 말을 ‘들어준다 ‘는 것이었다. 외계인은 가만히 옆에 앉아 그의 말을 그저 들어주었다. 그 사실 만으로도 그는 그 낯선 외계인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기에 이른다. 그렇게 외계인으로부터 크나큰 위로를 얻은 노인은 그가 다시 우주선을 고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다.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아버님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나도 노인을 대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아버님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저렇게 말하시지? 왜 저렇게 인라인스케이트에 열과 성을 다하시는 거지? 그런데 영화 속 노인을 보면서 조금은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나에게 익숙한 방식을 선택하는 것.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계속하는 것. 남들이 보기엔 중요하지 않은 일일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 하지만 사실은 그 안에서 노인은 외로웠다. 그래서 그저 자기의 말을 들어주는 외계인에게 그렇게나 깊은 우정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아버님도 국립과천과학관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헤어질 때 만족의 미소를 보이셨던 것일 것이다.
그래! 그렇다면 나도 그 외계인처럼 그저 아버님의 말을 들어드리면 되는 것이다. 내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이해를 하든 못하든 그저 그냥 들어드리는 것. 그리고 아버님의 말을 내가 듣고 있다는 뜻으로 “네~”라고 대답하는 것. 그래 나는 그러면 되는 것이다. 아버님의 방식이 내가 좋아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그래서 자꾸만 알레르기 반응이 올라와 힘들지만 그래도 나는 그 영화를 본 후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정신적으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손가락으로는 ”네~“라고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으악!!!!” 비명을 지르던 나였지만 이제 나는 그저 그 외계인처럼 하면 된 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외계인도 노인의 말을 이해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받아준 것이다. 그냥 옆에 있어준 것이다. 나도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간 내가 내 별로 돌아갈 수 있도록 아버님도 도와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 그냥 나도 그런 노인이 되려나. 모르긴 해도, “네~“라는 대답은 정답이 맞았던 것 같다.